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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페미니즘 1장 발제

이재훈 2022.03.25 22:43 조회 수 : 95

몸페미니즘 1장 발제입니다.

저자는 "서구의 주류 철학 사상과 현대 페미니즘, 이 양대 이론에서 몸은 개념적인 맹점으로 남아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책을 시작한다(29). 저자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기존의 여성혐오적인 사상들을 충분히 비판하지 않고 수용했는데, 이는 몸 대 마음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에서 잘 나타난다. 서구 철학의 전통에서 몸은 마음과의 대립 관계 속에서 마음에 종속되는 혹은 마음보다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어왔다. 몸에 대한 비하는 이미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부터 발견된다. 마음에 특권을 부여하는 고대의 사상은 이후 기독교 신학으로 계승되는데, 이 흐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근대로까지 이어져 데카르트와 그의 후예들에게서 근대적인 모습을 부여받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지 몸에 대한 마음의 우월성을 내포하는 몸과 마음의 이분법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지점은 마음과 몸의 이분법이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이분법와 강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마음은 남성과, 몸은 여성과 연결되면서 남성은 마음이 이분법적 구도에서 누리는 우월성을 공유하게 된다. 그렇게 철학이라는 학문의 역사는 "여성성과 궁극적으로는 여성 자체를 암묵적으로 몸과 연관되어 있는 비이성적인 것으로 코드화함으로써 철학적인 실천으로부터 여성과 몸을 배제해"온 역사가 되었다(32). 이 역사 속에서 중심의 위치를 차지한 것은 마음/남성이었고 몸/여성은 주변화되어 다루어졌다.

(여성에 대한 이론적인 비하는 현실의 여성혐오와 연관성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 철학을 지배해온 몸에 대한 무시는 어떻게 현실과 연관될까? 몸에 대한 철학적인 등한시가 몸에 대한 현실적인 억압이나 통제의 실천과 연결고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가설일까? 비슷한 맥락에서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저자는 철학이 몸을 열등한 위치에 놓는 과정에서 특히 남성의 몸이 부인되었다고 하는데, 이에 상응하는 남성에 대한 현실적인 실천이 존재했을까? 이를 테면, 남성에게 있어 신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합리성을 강조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과정에서 데카르트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그는 몸과 마음의 이원론을 제도화했는데, 그의 “이원론은 몸과 마음을 상호 배타적이며 서로 철저히 다른 실체로서, 그리고 나름대로 자족적인 각각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으로 구분하려는 가설이다.”(38) 이러한 주장은 “마음과 물질 사이에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심연을 설정”하는데(39),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만 생각해보아도 이런 입장이 가지는 난점은 금방 드러난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마음을 물질만으로 설명하거나 몸과 물질을 마음이나 관념을 통해 설명하는 환원론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그저 무시할 뿐이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현대사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저자는 페미니즘이 이들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데카르트주의를 따르는 세 가지 노선을 지적하는데, 그 중 두 번째에 주목해보자. 이는 “몸을 의식이 장악한 도구, 연장, 기계나 아니면 활기차게 움직이는 의지적 주체성이 점령한 그릇으로 이해함으로써, 몸을 주로 은유적인 관점에서 파악한다.”(42~43) 이러한 관점은 자유주의 정치학 전통에서 자주 발견되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면서, 또한 몇몇 페미니즘 이론에서도 전제로 갖는 관점이기도 하다.

(페미니즘 이론이나 실천 중에서 인권과 같은 ‘보편적 권리’를 내세우는 입장도 이 두 번째 노선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몸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입장은 보편적 권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페미니즘과 상충되는 것일까? 그럼 권리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페미니즘의 그간의 성과는 저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다르게 이해될 수 있을까?)

저자는 근대 이래로 서구 철학을 지배한 데카르트적인 전통에 맞서는 예외적인 인물로 스피노자를 제시한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식의 이원론이 아닌 일원론을 주장했다. 스피노자에게 실체는 (데카르트 철학에서와는 달리) 단 하나, 즉 신이다. “유한한 사물들은 실체들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의 변형이거나 변용이든지 아니면 실체의 양태들이거나 세분화이다.”(47) 이때 연장과 사유(또는 몸과 마음)는 유일한 실체를 표현하는 다른 속성이다. 데카르트에게 연장과 사유가 서로 다른 실체였기 때문에 그 둘의 상호작용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스피노자에게 연장과 사유는 하나의 실체의 상이한 속성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상호작용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스피노자에게 몸과 마음, 즉 몸의 운동과 의지의 행위는 단일한 사건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와 갈라서는 지점은 이원론을 일원론으로 대체한 데에만 있지 않다. 스피노자는 또한 데카르트적인 몸의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있다. 데카르트의 기계론적인 신체 모델에 따르면 몸은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하는 기계와도 같지만, 스피노자에게 몸은 신진대사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구성하는 유기체이다. 이런 맥락에서 “스피노자는 몸을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것으로 설명한다.”(49) 저자는 데카르트주의로부터 이탈하는 이러한 스피노자적인 사유의 흐름을 페미니즘 속에서 이어 가고자 한다.

저자는 여성혐오적인 사상들이 여성과 남성의 대립을 몸과 마음의 대립과 연결시키면서, “마음을 남성적인 것으로, 몸은 여성적인 것으로 등치”시켜왔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54) 남성의 몸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여성과 남성에게는 다른 육체성이 부여되는 방식으로 여성은 열등한 지위에 머물렀다. 이때 여성의 몸은 “남성의 몸에 비해 좀 더 허약하며 침범당하기 쉽고 (호르몬 분비가) 불규칙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가정된다.”(54) 이렇게 여성의 몸을 비하하는 사상들은 여성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동한다. 따라서 “여성의 몸을 만회하고 재현할 수 있는 여성의 육체성 개념을 여성들의 이해관계에 합당한 관점에서부터 재탐구하고 재검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55)

이를 위해 “여성의 몸과 주체성이 지닌 특수한 성격과 통일성(혹은 그런 통일성의 결여), 남성의 몸과 정체성과는 다른 차이점과 유사성을 명료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66) 이때 우리는 몸의 특수성을 몸 그 자체가 아닌 몸들의 구체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몸이란 그 자체로 주어진 실체도 아니고, 양극화된 선적인 연속체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실체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종류의 몸과 주체성, 차이의 장 속에서 다수의 반항적인 긍정”을 실천해냈을 때, 이상형으로 군림하고 있는 ‘하나의 몸’의 지배를 약화시킬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양성 사이의 권력 지배적인 상호작용의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기존 지식의 구조에 대변동을 초래할 수도 있다.”(68) 이는 곧 생물학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며, 그 도전을 통해 우리는 몸에 대한 생물학의 지배를 벗어던지고 생물학적 어휘가 아닌 다른 어휘를 통해 몸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의 몸’을 거부하고 몸들의 다양한 구체성에 주목하는 것이 과연 문화적인 차원을 넘어 법제도적인 변화에서도 유효할 것인가? 나는 일상적이거나 문화적인 수준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몸들의 차이에 집중하는 실천을 상상할 수 있겠으나, 법과 제도의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안적인 페미니즘 이론을 위한 구체적인 기준으로서 저자는 여섯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몸과 마음에 대한 상호 배타적인 이분법의 설명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체현된 주체성과 정신적인 육체성에 대한 해석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71) 둘째는 육체성을 하나의 성이나 인종으로 연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단일한 모델을 거부해야 한다. 네 번째로 이원론을 피하면서도 생물학적이거나 본질주의적인 설명에 빠져서는 안 된다. “몸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지리학적 각인의 장소이자 생산 혹은 구성의 장소로 간주되어야 한다.”(74) 다섯째로 마음을 두뇌로 환원하지 않아야 한다. “정신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 모두 몸과 마음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닌 필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으로서 재개념화”해야 한다.(75) 마지막은 몸을 “이분법적인 쌍의 중추적인 지점에서 비결정적으로, 위태롭게 배회하는 문지방이자 경계선 개념으로” 다루어 이분법을 문제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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