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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권력의지』 제3권 제1장 과학에 나타나는 권력의지 (9-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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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물(物)자체와 현상

#555        

꾸며낸 이야기 중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것은 인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인식은 언제나 “무엇인가와 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바로 여기서 어떤 모순이 나타난다. 우선, 이처럼 알고자 하는 의지와 알려질 그것이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야 한다는 욕망 사이에 모순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안단 말인가?) 둘째로,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무언가는 존재하지도 않고 따라서 알려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인식한다는 것은 곧 “자기자신을 무엇인가와의 관계 속에 놓는 것”

#556        

물 자체”는 “감각 자체”나 “의미 자체” 만큼이나 터무니없다.

 “저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른 어떤 관점에서 의미를 확정하는 과정이다. ~ 기본적으로, 그 질문은 “저것은 나에게(혹은 우리에게,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묻지는 않는다. 권력의지의 한 형태로서, 해석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열정으로 (그리고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생성으로) 나타난다는 이유로, 그렇다면 누가 해석하고 있는가?” 라고는 묻지 않는 것이다.

#557    

어떤 사물의 특성들은 그 사물이 다른 “사물들”에 미치는 효과들이다.

만약에 사람이 다른 “사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한다면, 그 사물은 전혀 아무런 특성을 갖지 못한다.

#560        

혹은 거꾸로, 밖으로 나타나는 사물들의 객관성은 단순히 주체에 나타나는 지각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객관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존재로, “그 자체”인 것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561        

만약에 그 사물이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우리가 현재 거기 있거나 일시적으로 잠재상태에 있는 다른 모든 특성들을 단 한가지 특성이 출현하도록 하는 원인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562        

존재들을 더 이상 감각을 결여한 무엇인가에 근거하지 않는 감각들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563        

우리의 “인식”은 양을 확정하는 과정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우리는 양의 차이를 질의 차이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질을 단순히 상대적 진리일 뿐이며, 질은 “물 자체”가 아니다.

#564        

순수하게 양적인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죽어 있고 경직되어 있으며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특징을 양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다.[1]

 

#565        

반면에, 거꾸로 우리의 모든 가치평가(즉, 우리의 감각)는 질의 영역에만, 즉 우리와 우리의 관점에만 속하고 밖으로 절대로 “알려질” 수 없는 그런 “진리들”에만 국한된다.[2]

 

질은 인간의 본성에만 고유한 하나의 특이성이며, 우리 인간의 해석과 가치가 보편적이고 진정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유전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인간 자만심의 광기일 뿐이다.

#567        

현상 세계, 즉 가치를 근거로 본 세계는 가치에 따라 배열되고 선택된 세계이다. 말하자면 어떤 특별한 인간 종의 권력을 보존하고 증대시키는 측면에서 유용한지 여부에 따라 선택된 세계이다.

에너지의 모든 중심은 나머지 세상 전체를 대하는 어떤 관점을, 말하자면 자신만의 특별한 가치 평가와 행동 유형, 저항 유형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현상 세계”는 어떤 중심에서 나오고 있는, 세상에 대한 어떤 특별한 행동 유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세계’는 이 행동들의 집단적 작용을 나타내는 하나의 단어에 지나지 않는다.

#568        

“현상” 자체는 현실에 속한다. 그것이 현실이 존재하는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특별한 예(진정한 세계)도 충분히 흥미롭다. 우리가 어떤 세계에서 살 수 있기 위해서, 또 그 세계에서의 삶을 견뎌낼 수 있는 방향으로 지각하기 위해서 어떤 개념을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569        

3) 이 현상 세계의 반대는 “진정한 세계”가 아니고 감각들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여서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세계, 말하자면 우리에게 “인식 불가능한” 또 다른 종류의 현상 세계라는 점이다.

 “물성”은 우리가 창조한 많은 것들 중 하나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그런 현상세계를 창조하는 다른 방법도 많지 않은가? 이처럼 창조하고, 논리적으로 다듬고, 적응하고, 왜곡하는 것이 그 자체로 가장 안전한 현실이 아닌가?

주체만 증명 가능하며, 존재하는 것 전부는 주체이고, 객체는 주체가 주체에 가하는 행동의 한 형태라는, ··· 주체의 한 양식이라는 가설도 가능하다.

  

 

10. 형이상학적 욕구

#570        

그 사람(지금까지 등장했던 철학자들을 닮은)은 오직 지금 있는 것만을 볼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존재 같은 것은 절대로 없기 때문에 철학자들이 다뤄야 했던 것은 일단의 공상뿐이었다. 그것이 철학자들의 세계였다.

#571        

(칸트) 어떤 욕구, 주로 도덕과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일어난 욕구의 발작을 보여준다.

#572        

(플라톤) 가치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원인으로 고려되었다. 이거이 첫번째 통찰이었다.

#574        

모든 형이상학이 터무니없다는 사실은 무조건적인 것부터 조건적인 것을 끌어낸다는 데에 있다.

조건적인 것에다가 무조건적인 것을 더하고, 무조건적인 것을 날조하는 것은 사고의 본질에 속한다. ~ “자아”라는 것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그런 예이다.

만약에 사고가 먼저 자체 형상에 따라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사물들”로 재창조하지 않았다면, 인식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비(非)진리가 있는 것은 순전히 사고가 있기 때문이다.

#576    

형이상학의 심리학에 관하여. 그것은 곧 공포의 영향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즉 가장 심각한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권력욕망, 육욕적 쾌락 등)은 인간에 의해 대단히 적대적으로 다뤄졌으며, “진정한” 세상으로부터 제거되었다.

절대적인 존재를 절대적 “합리성”과 “합목적성”으로 해석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변화와 파멸 가능성을 무서워했으며, 이 공포에 의해서 불신과 고통스런 경험으로 가득한, 억눌린 어떤 영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스피노자가 이에 해당한다)

#579    

형이상학의 심리학. 이 세상은 겉모습일 뿐이다. 따라서 진정한 세계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 이런 결론을 고무하고 있는 것은 고통이다.

현실에 대한 형이상학자들의 분노가 창의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일련의 질문이 일어난다. 무엇을 위해 고통 당하는가?

현상과 생성과 모순과 고통의 세계가 의도되고 있다. 무슨 목적으로?

이 기원은 실용적인 영역으로부터, 공리주의적인 영역으로부터, 따라서 그것이 고무하는 강력한 믿음의 힘에서 나온다.

형이상학자들이 고통에 몰두하는 것은 꽤 순진하다. "영원한 축복받음"! 심리학적으로 보면, 그건 허튼 소리에 불과하다. 용감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은 절대로 쾌락과 고통을 종국적인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쾌락과 고통은 부수적인 조건일 뿐이다.

#581     

존재”는 “생명”(숨결)과 “생기를 띠다” “의도하다” “행동하다” “되다” 같은 개념을 일반화 한것이다. 그 반대는 “생기를 잃다” “되지 않다” “의도하지 않다” 등이다. 따라서 “존재”는 “비(非)존재”나 “현상”(現像)의 반대도 아니고 죽음의 반대도 아니다. (왜냐하면 살아갈 수 있는 것만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583        

오늘날 과학이 현상세계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실을 나는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제 “진리 의지”를 심리학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584        

동물의 종에겐 자기 보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에, 여기서 “진리”에 대해 논하는 것은 충분히 허용될 수 있다

그 목적은 사람이 유익한 방향으로 자신을 기만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수단은 형태와 신호의 발명이었다. 그러면 삶의 혼란스런 다양성은 이 형태와 신호의 도움을 받아 삶에 유익한 도식으로 단순화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쩌나! 도덕의 카테고리까지 이 문제에 끼어들고 말았으니.

#585        

소름끼치는 자기 검증. 자기 자신을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인류로 자각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뒤를 돌아보며 깊이 생각해보도록 하자. 그리고 대로와 샛길을 따라가 보자.

인간은 “진리”를 추구한다. 자체적으로 모순을 일으키지 않고, 속이지 않고, 변화하지 않고, 진정한 그런 세계를 말이다.

이 대목에서 인간은 현실개념을 어디서 끌어내는가?

사라지고 변화하고 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경멸과 혐오. 그렇다면 안정에 대한 이런 높은 평가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존재에 대한 이런 믿음은 결과로서만 나타난다. 진정한 제1 원동력이 모든 생성에 대한 불신과 경멸이기 때문이다. ···

같은 종(種)이면서도 덜 성숙한 탓에 해석하거나 허구를 창조하는 능력을 소유하지 않은 인간들 사이에서 니힐리스트들이 나온다.

존재의 세계를 괴멸시킴으로써 철학자들을 압도한다. 그것이 곧 니힐리즘의 중간 단계이다. 가치들을 다시 평가하고 생성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를 유일하게 신성하고 선한 세계로 만들 힘을 충분히 갖출 때까지.

하나의 정상적인 현상으로서 니힐리즘은 힘의 증대를 보여주는 징후일 수도 있고 힘의 약화를 보여주는 징후일 수도 있다.

1) 과학은 힘과 자제력의 신호이다. 과학은 치료와 위로의 효과를 발휘하는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능력을 보여준다.

2) 과학은 또 손상시키고, 분석하고, 낙담시키고, 약화시킬 수 있다.

#586

진정한 세계”와 “현상 세계” 이 개념에서 비롯된 엉터리 개념들은 3가지 종류로 나뉜다.

 

미지의세계

또 다른 세계

진정한 세계

~암시한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유익하게 돌아가지 않는 세계임

~방법으로 도피한다.

호기심에서

복종으로

: 마치 지금까지 복종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이세상은 종국적 필연이 아닌 것처럼

공감과 존경으로

: 마치 이 세상은 공감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처럼

제정신을  찾는 첫걸음

오히려 “이 세상”이 더 즐거운 곳일 수도 있다

여기서 실현되지 않은 우리의 욕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있다

 

“또 다른” 세계도 좋고, “미지”의 세계도 좋다! 하지만 “진정한 세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 세계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x세계를 가정하는 것과 정반대이다.

 

 

 

 

 

 

 

 

 

 

 

>>> ‘진정한 세계’를 ‘미지의 세계’, ‘또 다른 세계’와 동일선 혹은 그 아래에 둠

 

11. 인식의 생물학적 가치

#587        

나는 인간들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측정에 사용했던 도량형(度量衡)을 테스트하고 또 확실성이라는 문제는 그 자체로 부차적인 문제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길 바랐다.

#591        

확립된 사실들”에 대한 욕망. 바로 그것이 인식론이다. 인식론엔 페시미즘이 얼마나 스며들어 있는가!

#592        

페시미즘이 묘사하는 “진정한 세계”와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세계 사이의 대립.

따라서 대립은 “진리”가 생명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 종류의 삶이 다른 종류의 삶과 맞서는 형국이다. 그러나 병들고 절망적인 삶이 감히 보다 놓은 종류의 삶이 되려고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종류의 위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또 가장 중요한 문제가 삶의 종류들 사이에 위계를 구축하는 것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12. 과학

#594        

과학에서만 일관성이 발견되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이 생명을 보존하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과학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조정해야 한다. 이것이 인식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우리의 존재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숙고를 하도록 만들고 있다.

#597        

훗날 사용하기 위해 에너지와 힘을 저장하는 축적의 시기. 과학은 여관 같은 곳이다. 평범하고, 다방면에 관심이 있고, 보다 까다로운 존재들이 거기서 자신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표현 수단을 발견하고 만족을 얻는다. 모두가 행동을 피하는 것이 타당해 보이는 그런 사람들이다.

#602        

훨씬 더 민감한 감각 장치에 맞춰져 있을 때조차도, 이 상대적인 세계는, 즉 눈과 촉각, 귀를 위한 세계는 매우 허위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감각을 세련되게 가꾸면, 이 세계의 이해 가능성과 명확성, 실용성, 아름다움이 종말을 고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거짓이야! 모든 것이 허용되고 있어!”

#603        

망상을 파괴한다고 해서 반드시 어떤 진리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무지를 한 조각 더 낳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망상을 파괴하는 것은 우리의 “빈 공간”을 넓히는 것이고 우리의 황무지를 늘리는 것이다.

#605        

이보다 더 높은 과제는 ~ 단순히 개념들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606        

종국적으로, 인간은 사물들에서 자신이 불어넣은 그 이상의 것을 절대로 발견하지 못한다. 다시 발견하는 이 과정이 곧 과학이며, 사물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실질적인 과정은 예술과 종교, 사랑, 긍지이다.

#608        

과학의 발달은 “알려진” 것을 미지의 것으로 바꿔놓는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

한마디로 말해, 과학은 최고의 무지로 가는 길을, 더 나아가 인간은 인식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분류할 개념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감정을 품게 할 길을 닦고 있다.

#609        

인간과 야수가 지금 어떤 무지의 상태에 살고 있는지를 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신도 무지에 대한 욕구를 가져야 하고 그런 욕구를 배워야 한다.[3]

 

#611        

삶의 모든 단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또 가장 일관되게 실행되고 있는 기능이 바로 사고 기능이다.

종국적으로, 사고가 “열정 자체”가 되어버릴 것이다.

#612      

연구원들을 위해서 위대한 열정에 대한 권리가 다시 주장되어야 한다.

#616        

세상은 “흐르고” 있다. 세상은 진화하는 무엇이고, 지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리에는 조금도 더 다가서지 않는, 거대하고 회전하는 어떤 거짓말 같은 것이다.

#617

생성에 존재의 성격을 불어넣으려 하는 것, 그것이 가장 높은 권력의지이다.

이상들의 근절, 그로 인해 생기는 새로운 황무지. 우리가 그 황무지를 견뎌내도록 도와줄 새로운 예술들. 우리 양서류 동물들![4]

 

 


[1]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 손목을 그어서 사망했다.

[2] 인식-기억 #501

[3] 그때 이후 수용소란 아주 예외적인 것, 놀랄 만한 것도 아닌 뭔가가 주어진 조건, 뭔가 근본적인 것,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있으며 온 힘을 다해 극도로 긴장했을 때만 벗어날 수 있는 그 어떤 것임을 그녀는 알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4부 영혼과 육체 中

[4] 어려서는 아가미로 수중호흡을 하면서 물어서 살고, 자라면 폐와 피부로 호흡하며 땅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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