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정리형식의 후기를 남기지 못해 죄송합니다. 당시 필기를 거의 하지 못한데다가 시간이 지나다보니 개인적으로 느꼈던 점을 위주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What's the matter ? - 뭐가 문제니 ?
Never mind ! - 신경쓰지마 !
철학책을 읽는 것은 늘 쉽지 않았다. 각 단어에 대한 단일한 정의를 쌓아올려 일관된 결론(이론)을 도출하는 책. 그러므로 그 누가 읽더라도 마지막에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책.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책 속에서 자주 길을 잃곤 했다. 실체라든가 양태, 표상 등 명징하다는 단어들은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이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발제를 하기 위해 좀 더 면밀한 독해를 하고자 2차 서적까지 열심히 뒤적였으나 좌절감만 더 커졌다. 그 기간 내 나는 내가 발제를 맡았던 스피노자는커녕 데카르트조차 벗어나질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굴’에서 내가 이해한 바를 이야기하자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참된 인식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보증인(데카르트) 혹은 스스로의 확신(스피노자)이다.
나는 인식의 이러한 두 가지 방식이 당시 우리의 세미나 속에서도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그 때 누군가는 자신이 이해한 바가 맞는지를 확인받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질문하고 답변을 받았다. (데카르트적 방식) 그러나 어떤 누군가는 자신이 이해한 바가 맞는지를 확인받기 위해 굳이 질문하지 않았다. (스피노자적 방식)
이처럼 우리는 데카르트적이거나 스피노자적인 방식으로 인식을 수행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덧붙이고 싶다.
참된 인식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보증인도, 스스로의 확신도 아닌, 그 사이(혹은 그 외부)를 끊임없이 오가는 무엇이다.
사실 내가 위에서 든 예시는 편협했다.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우리의 인식작용을 어떻게 한가지로 고정시킬 수 있을까. 그러므로 그 날, 우리는 아마도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를 오갔을 것이다. 보증을 통해 확인하고 안심했다가도 의심이 들어 좌절하는, 그러나 다시 확신에 이르기 위해(이 비록 잠정적인 확신에 불과할지라도) 연속된 과정을 멈추지 않는. 그렇게 우리의 인식작용은 확장되고 축소되었다가 고정되고 다시 움직이기를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쳐 (비록 잠정적일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인식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굳이 수유너머에 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를 만났던 우리에게 맨 위의 문구를 다시 적어 보인다.
What's the matter ? - 물질이 뭐니 ?
Never mind ! - 정신이 아닌 것 !
지금 위 문구를 읽는 당신에게는 무엇이 인식 되는가 ?
덧1)
세미나 이후 강의는 매우 유익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강의가 그렇듯, 지금의 나에게는 불행히도 강의 내용보다 선생님께서 중간 중간 던지신 농담과 프로젝트 속 이미지만 또렷하다.(ㅜㅜ) 데카르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를 밟고 있는 모습은 한동안 잊기 어려울 것 같다.
덧1-1)
데카르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를 밟으며 당당히 서있는 그림을 보며 연상된 이미지. (1,2,3,4)
덧2)
특강이 끝난 후, Q&A 시간에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 연상된 이미지 (5)
덧3)
세미나 당시, 스피노자에 대한 이야기(무엇보다 신은 양태의 총합인가 아닌가라는 질문들)를 나눌 때 연상된 이미지 (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