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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자본 8권 1~3장 발제 2022.09.29

김 혜 영

자본의 꿈, 기계의 꿈 : 은하철도999와 파우스트

 

나는 심지어 경제적 세부사항들 – 예를 들면 혁명 이후에 나타난 부동산과 사유재산의 재편성-에 대해서조차 당대의 모든 전문 역사학자, 경제학자, 통계학자들에게서 배우는 것보다 더 그(발자크)로부터 배웠다.  엥겔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시와 문학을 사랑했다.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인용되는 천재 문호들의 문구들은 그 시대의 비참함을 더욱 생생히 배가시키기도 하는 가 하면 불현듯 낭만적 세계로 상상을  전환시키기도 한다.

북클럽자본 8월 [자본의 꿈, 기계의 꿈] 3장에서도 엥겔스가 인용한 시가 소개된다. <증기왕> 이다.

매뉴팩처 공장에서 기계화 공장으로의 전환에 중추적 역할을 한 증기동력을 무자비한 왕에 빗대고 있다. 기계화된 절망공장의 인간재료가 된 노동자 처지를 신이 된 증기왕에 대한 분노로 표현하는 시를 읽자니 문득 <은하철도999>가 떠올랐다.

은철3.jpg

나에게 자본주의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열어준 첫 이야기는 <은하철도999> 였다.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인지, 자본론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하는 만화영화는 다른 여느 만화처럼 꿈과 희망으로 시작했으나 상상하지 못한 충격적 결말을 맞아 (테리길리엄의 영화 <브라질>과 더불어) 순진한 어린이가 시니컬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 1할 이상의 지분을 갖게 되었다.

<은하철도999>는 과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먼 미래에 우주를 횡단하는 증기기관차를 타고 여행하는 철이(테츠로) 라는 소년의 성장기 이다. 철이의 꿈은 기계몸을 갖는 것이다. 미래의 지구(메갈로폴리스)는 기계인간들과 그렇지 못한 보통인간으로 계급이 나뉘어 있다. 부자들은 정신(메모리)를 새로운 기계몸에 이식하며 2천년 이상의 수명을 누리며 살고, 보통인간은 도시의 빈민과 부랑아로 기계인간들의 척결 및 사냥대상이 되었다. 기계인간 백작에게 어머니를 잃은 철이는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대로 무료로 기계몸으로 교체해준다는 먼 행성에 다다르고자 은하철도999에 탑승한다.

자본의꿈은 전 인류의 기계화 일까?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떤 기계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자본주의 과학기술의 발전을 디스토피아적으로 보는 시선은 순수예술은 물론 대중문화에서도 자연스럽게 멋있으며 있어보이는 코드가 되었다. 어떤 것을 무조건 찬양하는 것보다는 경계하고 비판하는 태도가 더 신중해 보여서 일지도 모르겠다. 과학기술, 기계의 발전이 노동 해방을 일으킬 것이라는 가속주의자들의 낙천적 미래에도 인간 존재 의미는 늘 고민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은하철도999>의 철이는 조력자 메텔과 함께 드디어 공짜로 기계몸으로 바꿔준다는 여왕 프로메슘의 행성에 도착한다. 그러나 기계인간들은 술과 노름에 빠져 흥청망청한 삶을 살고 있었다. 철이는 ‘저들은 언제쯤 공부를 하고 노동을 하냐’라고 묻는다. 노동에서 해방된 미래에서 영생을 사는 인간들에게 유적존재로서의 인간 사명을 꼬집는다. 기계인간의 신분상승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철이의 믿음은 한 기계인간의 투신자살을 목격한 뒤 산산히 깨어진다. 그리고 철이는 기계인간이 되길 포기하고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여왕 프로메슘에 맞서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은하철도999>의 극장판 2기에 나오는 한 캐릭터이다. 우주의 전 인류를 기계인간으로 바꾸려는 야심을 가진 천재 여과학자 프로메슘의 심복 흑기사 파우스트 이다. 파우스트는 본래 인간이었으나 프로메슘 기계제국의 뜻에 공감해 기계인간된 캐릭터이다.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를 하여 자신의 영혼을 판 괴테의 파우스트는 이 만화영화에서 기계인간으로 변신하였다.

마르크스 또한 [자본]에서 파우스트의 구절을 자주 인용한다. 마르크스는 셰익스피어와 괴테의 열렬한 팬으로 자신의 저작뿐만이 아니라 평소에 가족들과도 파우스트의 대사를 빌어 연극놀이를 할 정도의 문학 매니아 였단다. 엥겔스 또한 괴테나 발자크가 쓴 글의 작품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의 글에서 이들의 대한 많은 자취를 찾을 수 있다.

괴테는 ‘신’에 관심을 갖는 것을 싫어햇다. 그 단어는 그를 불편하게 했으며, 단지 인간적 문제에서만 평안함을 느꼈다. 이 인간성은 즉 종교의 질곡으로부터 이 예술의 해방이 바로 괴테의 위대함을 이루고 있다. 고대인들이나 셰익스피어도 이런 점에서 괴테에게 비견될 수 없다.    겔스, [토마스 칼라일의 ‘영국의 과거와 현재의 상태’]

괴테의 파우스트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끼친 영향은 책을 “읽어보면 쉽게 짐작이 된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한 뒤 전생애에 걸쳐 하는 여정 곳곳에는 부르주아 탄생의 실체가 폭로되어 있다.

재상

“알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고하노라.

여기 이 지폐는 일천 크로네로 통용한다.

제국의 영토 내에 매장되어 있는 무진장한 보화를,

그 확실한 담보로 제공할 것임을 보증한다.

이 풍부한 보물을 곧 발굴하여,

태환용(兌換用)으로 사용하도록 조치하였다.” /

 

메피스토펠레스

황금이나 진주를 대신하는 이런 지폐는,

아주 편리하고, 자기가 얼마를 갖고 있는지도 알 수 있소이다. /

사람들이 지폐에 익숙해지면, 다른 것은 원치 않을 겁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황제의 영토를 어디를 가나,

보석과 황금과 지폐가 얼마든지 넘쳐날 것이옵니다.

황제

충성스런 그대들에게 넓고 비옥한 봉토와 더불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귀속, 매입, 교환 등을 통해

그것을 확장시킬 수 있는 최고의 권리를 부여하겠소./

그리고 세금, 이자와 헌납물, 소작료와 통행세와 관세, 게다가 채광권, 제염권(製鹽權), 화폐주조권도 경들에게 부여하노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中

북클럽자본에서 지난 권에서 보았던 화폐와 은행의 탄생의 과정이 파우스트에 세밀히 묘사되어 있다. 파우스트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쾌락과 욕망을 쫓아 모험을 한다. 청년이 되어 순수한 첫사랑의 여인을 잃고 그리스 여신 헬라나라는 욕망을 쫓다 재상이 되어 백성을 다스리기까지 한다. 괴테가 그린 19세기 문학, 과학, 철학적 존재의 모든 것을 응축한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격변의 시대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파우스트가 던진 인간 실존의 의미에 더더욱 공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본래 50세에 이르러 세상의 지식을 모두 흡수한 뒤 매너리즘에 빠진 박사였다. 그가 삶의 의지를 잃고 죽음을 선택하기에 이르렀을 때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하게 되었다. <은하철도999>의 파우스트는 인간의 유한성을 초월하기 위해 스스로 기계인간이 되길 선택하였다. 악마가 아닌 과학자 프로메슘과의 거래를 한 것이다. 그러나 괴테의 파우스트가 유적 인간의 진정한 깨닮음 뒤 천상의 구원을 받는 것에 비해 <은하철도999>의 파우스트는 인간의 붉은피를 선택한 친아들 철이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다.

마르크스 당대에 [자본]이란 책은 노동자들에게 컬쳐쇼크 였을 것이다.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마르크스 처럼 과학적 논리적으로 집대성한 이가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학작품에 대한 인용과 감성적 문체 또한 2022년 현재까지 [자본]이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북클럽자본 또한 마르크스의 감정을 더 내밀히 이해하고자 저자 고병권 자신의 감상을 슬쩍 비춰내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기계화된 사회의 관절이 된 인간들 처럼 오늘도 출근해 충실한 재료로 쓰여지고 있는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감상을 적고 있다. [자본의 꿈, 기계의 꿈]을 읽으면 다양한 소설과 영화의 한장면들이 스쳐지나간다. <멋진신세계>,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공각기동대>, <매트릭스> 의 이야기들을 마르크스는 미리 예견하고 있었단 말인가.

수 많은 기억 중 불현듯 <은하철도999>의 철이와 메텔이 떠올랐으니 재개봉관을 찾아가 봐야 겠다.

 

[참고문헌 및 자료]

북클럽자본8 - 자본의꿈, 기계의꿈 / 고병권 / 천년의 상상

파우스트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문학동네

마르크스 엥겔스 문학예술론 / 마르스크, 엥겔스저 김대웅 편역 / 미다스북스

은하철도 999 - 나무위키 https://naver.me/5bX84x0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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