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인지14-발제] 제1부 1,2 데카르트
22.09.23 [청인지14 : 철학을 타고 현대를 달리다] - 2주차 발제:임창삼(싸미)
29P 철학에 관한 책을 통해 배워야 할 핵심은 바로 이것 '철학하기'다. 이런 점에서 보면, 쉬운 책은 결코 좋은 책이 아니다. 쉽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런 책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 따라서 아무 생각 없이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머물러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어렵다는 것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틀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어려운 것이다. 어려운 것,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써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들과 대결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머리는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한다.
...
첫 발제를 하게 되었으나, 어떤 포인트를 잡고 써야, 저를 포함한 모두에게 좋은 발제를 쓸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 나에게 '어려웠던 점' 그러니까 나에게 철학함을 거치게 하는 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써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려운 점은 모두 각자마다 다를 뿐더러, 그게 굳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라는게 중요한 것 같아서요. 제 자신도 조금은 과도한 부담감은 좀 내려놓기 위해... 제가 이해력이 낮아서 어떤 점은 '어려운지 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부분도 있을거라는 생각에서 과감히 내 수준 폭에서만을 두고, 발제와 후기를 남기려고 합니다.
...
애석하게도 SF영화의 복제인간 로이에게서 연민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물론 영화를 보기 전이어서 그런지 '나는 인간이니, 복제인간의 입장은, 복제인간인 것이고, 그러니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라는 편견이 작용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로이를 좀 더 이해해보고자 중세 시대의 신도들의 입장이 꼭 로이와 같다는 것에서 겨우 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한 때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요.
복제인간을 창조하는 인간, 타이렐은 마치 중세의 종교지도자와 다를 바 없는 위치였어요. 로이는 자신의 창조자에게 수명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죠. 허나 타이렐은 못하겠다고 합니다. 애써서 모든 난관을 뚫고 찾아왔더니 자신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는 신은, 이젠 로이에게는 전능하지 못한 신. 로이의 '신'이 될 수 없었죠. 그래서 죽였습니다. 복제인간을 '도구'로만 소비시킨 그에게서 어떤 애정도 느낄 수 없으니까요.
저는 이 이야기에서, 중세시대의 인간의 신앙이, '사유'로 번진 발단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인간은, 무지를 '신앙'에 맡길 수 없었던 것이죠. 복제인간의 창조자를 죽인 로이에 대하여, 데카르트는 무엇을 느꼈을지에 대한 것을 상상해보자면, 그는 막 신앙을 죽인, 의심의 사유자, 인간의 이성이 로이에게도 번득였다는 것에 대하여, 자신과의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앎을 넘어서는, 무지를 늘 '완전함'에 의지했던 신앙인의 관습을 대체시키기 위해서라도, 인간 이성의 '완전함'을 변명해주려고 애쓴 느낌이 듭니다. 신앙의 사고방식과, 사유의 사고방식은 다름에도, 사유는 의심될 수 없으니, 사유만큼은 믿으라고 전도했던 셈이죠. 다만, '완전함'의 변호는, 일종의 플라시보(위약)으로서의 역할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로이는 이미 '인간'에 대한 불신이 큰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신에게서 벗어나고자 이성을 주장한 '인간-타이렐'이 곧 '자신-복제인간-피조물'을 창조한 '신'의 자리 를 하였으니, 로이의 이성은 '인간'에 대한 의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건 당연하였다고 봅니다. 데카르트가 수학적 사고를 통한 본유관념으로, 보편적이고 완전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지만, 그 이성의 한계는 딱 인간중심의 한계가 있었구요. 그럼에도 복제인간 로이는, 자신이 복제'인간'이자, '인간'으로의 이성을,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의심을 하기에, 이제 그곳에서부터 로이의 '철학함'이 시작되었음을, 이 또한도 데카르트가 말한 '인간'의 사유의 시작이 그에게도 출발되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생각하는 나에 대한 사유를 의심에서 시작한 것은 '의심을 이겨내기 위한 것'일세. '나는 의심한다'에 머물지 않고 얼른 '나는 생각한다'로 확장해 거기서 '나는 존재한다'를 이끌어냈다는 것 기억해주게. 극단적인 의심마저 견뎌낸 정신이야말로 어떤 의심한 적 없는 권위에도 기대지 않고 정말 자신이 확신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하는 정신이지. 그래서 다들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걸세. 신학이 지배하던 시대에 신학적 권위를 빌리지 않고 사유하려 했단 점에서." P71~72
우리의 철학함은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발제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