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1~2장)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 발제
저자의 말 – 거인과 난쟁이
자본가는 개인 노동력의 가치에 대해서만 지불하고 결합된 노동력의 가치에 대해서는 지불하지 않는다.
착취의 진보
절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일 연장을 통해서 생산된다.
상대적 이용가치는 노동일 중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의 비율을 바꾸어 생산된다.
특별 잉여가치(추가 잉여가치)는 생산방식의 혁신을 통해 사회적 평균보다 훨씬 높은 노동생산성을 달성할 경우 그는 다른 자본가들은 누리지 못하는 별도의 이익을 말한다.
생산력이 높은 노동을 ‘강화된 노동’이라 부른다는 것은 노동의 추가 투입이 있는 것이다. 즉 노동강도를 높이면 노동시간이 같아도 실제로는 더 많은 노동을 한 셈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노동자가 더 많은 가치를 창출했음에도 자본가는 노동력의 가치를 종전대로 지불한다. 이는 자본가가 얻은 추가 잉여가치가 단지 생산성 낮은 다른 기업의 자본가만이 아니라 자기 공장의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 착취에서도 온 것임을 말해준다.
우리가 자본주의에 산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노동생산력의 증대는 ‘과로’가 아닌 다른 것을의미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복리가 아니라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체제이다. 생산의 필요노동시간을 줄이는 이유는 잉여노동시간을 늘리기 위해서지 노동시간 자체를 줄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성 향상과 노동일 단축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 새로운 기계를 가지고 더 빨리 더 많이 일하면 생산성은 더더욱 높아질 테니, 결국 착취 사회에서는 진보도 ‘착취의 진보’가 되고 만다.
‘함께’의 착취
‘결합노동’은 ‘개별노동’의 합계가 아니다. ‘함께’는 개인들의 산술적 합이 아니다. ‘함께’에는 개인으로 분해하고 나면 사라지는 어떤 잉여의 것이 있다. 어떤 ‘초과’가 존재한다. 결합노동은 개별노동이 가질 수 없는 힘을 창출한다.
거인 노동자의 임금은 어디로 갔을까. 자본가의 차지가 된다. 거인 노동자의 생산력은 기본적으로 자본의 생산력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협업을 전제한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협업의 발전에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협업은 전통적 협업의 발전된 형태가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 협업을 가능케 한 사회질서가 해체되면서 자본주의와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협업이 나타났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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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신정수)
1. 자본주의도 또한 발전/진화하는 경향을 띠는데.... 그 전화의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잉여가치의 증대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구동력도 있지만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물리적 구동력도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과연 어떤 논리에 복무하는 지는 자본의 힘과 인간의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생각됩니다. 가령, 상대성원리를 발견한 아인슈타인의 연구 동기가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어 나온 것은 아니죠.... 그냥 알고자 하는 호기심. 그런 욕망들이 모여 과학기술의 발전을 추동하는 면도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성원리와 같은 위대한 발견이 아직까지는 자본의 논리에 복무하는 것은 아니기도 합니다. 상대성 원리를 이용해서 돈 번 사람은 과학 교육계 말고는 없지요... 물론, 사후적으로는 이런 과학 기술의 발전중 돈되는 것들을 자본의 궤도로 편입시키는 능력이 자본주의 힘이라 생각되는데... 이런 면에서 과연 산 노동시간만으로 잉여가치의 크기를 측정하는 노동가치론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엄밀히 말해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들이 과거에 한 노동 - 인류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각종 정보와 과학기술의 발견은 사실 죽은 노동의 결집체이자 공동체의 유산입니다. -을 모두가 공유하는 기반으로 발전하는 것인데... 이런 공동체의 유산에 대한 가치 크기가 측정되는 경우는 전무하기도 합니다. 맑스도 산노동은 과거노동을 부활시키는 힘을 가진다라고 언급했지만 과거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는 측정한 경우는 없긴 했지요. 이번 발제와 관련해 생각해보면 절대적/상대적/특별 잉여가치의 탄생 중 현대 자본주의는 '특별잉여가치에 더 중점을 두고 발전하는 경향을 띠고 이는 사실은 '총자본의 힘'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토론주제] 7권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 (1~2장)
7-1-1. 절대적 잉여가치의 한계, 상대적 잉여가치의 모색
[북클럽자본] 6권 ‘공포의 집’에서 우리는 자본이 맞닥뜨린 잉여가치 증대의 한계를 보았다.
절대적 잉여가치는 어떻게 한계를 맞게 되나? 이 한계를 상대적 잉여가치는 어떻게 돌파하는가?
7-1-2. 절대적 잉여가치 vs 상대적 잉여가치
(1) 상대적 잉여가치는 왜 개별자본은 불가능하고, 사회 전반의 혁명적 변화를 전제하는가?
(2)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는 어떻게 다른가?
7-1-3. 경쟁의 강제법칙 vs 자본 일반의 법칙
개별자본의 ‘경쟁의 외적 강제법칙’과 ‘자본주의생산의 내적법칙’은 어떤 관계에 있나?
7-1-4. 특별(추가) 잉여가치 & 상대적 잉여가치
(1) 개별자본으로 하여금 노동생산력 증대에 나서게 하는 적극적 유인(이유)은 무엇일까?
(2) 특별(추가)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는 어떤 관계에 있나?
‣특별(추가) 잉여가치는 상대적 잉여가치와는 다르다!?
‣특별(추가) 잉여가치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일종이다!?
‣개별자본의 특별 잉여가치의 노력은 총자본의 상대적 잉여가치를 낳는다.
(3) 특별(추가) 잉여가치는 어디서 왔는가?
7-1-5. 자본의 그릇된 외관과 신비화
맑스는 노동력 가치와 생산수단 가치를 가정하고, 노동생산력 상승에 따른 잉여가치량 변동을 일일이 따진다. 왜 맑스는 일일이 예를 들어가며 계산하는 걸까? (참고. p70~71)
7-1-6. 자본의 퍼스펙티브, 노동의 퍼스펙티브
생산성 향상, 잉여가치의 생산, 새로운 기계의 도입에 대하여 자본과 노동의 퍼스펙티브는 어떻게 다른가?
7-2-1. ‘함께’의 효과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게 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함께’는 개인들의 산술적 합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효과가 나타난다.
‘함께’는 개인으로 분해하고 나면 사라지는 어떤 잉여의 것, 어떤 초과가 존재한다.
‘함께’의 효과(잉여, 초과)에는 어떤 것이 있나? ‘함께’와 협업(결합노동)는 같은가, 다른가?
7-2-2. 맑스의 방식, 배후의 의지
생산수단 절약을 통한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은 [자본]1권에서 다루고, 생산수단 절약을 통한 이윤율 상승은 [자본]3권에서 다룬다. 후자를 여기서 다루지 않는 것은 이유는 무엇인가?
7-2-3.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 vs 인간의 ‘유적 능력’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인간의 ‘유적 능력’은 무엇이고 서로 어떤 관계에 있나?
7-2-4. 오케스트라 지휘자 vs 자본가의 지휘
비자본주의 협업(단체 줄다리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자본주의 협업의 지휘자(자본가)는 어떻게 다른가?
7-2-5. 자본가 지휘의 이중성
(1) 생산과정에서 자본가의 지휘는 어떻게 이중적 면모를 나타내는가?
(2) 생산과정에서 자본가의 지휘는 필수요소인가? (공장에서 자본가는 꼭 필요한 존재일까?)
7-2-6. 자본가의 ‘함께’의 배신
(1) 자본주의기업은 ‘함께’의 배신이다!?
(2) 자본가의 ‘함께’의 무상취득이 당연하게 보이는 이유는?
(3) 자본가는 ‘함께’를 무상으로 가져간다. 얼마나, 어떻게?
7-2-7. 전통적 협업 vs 자본주의적 협업
자본주의적 협업은 전통적 협업의 발전형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