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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자본_에세이] 비-자본주의적 활동

카나 2022.08.17 23:11 조회 수 : 142

비-자본주의적 활동

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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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노동(활동)은 각 시대에 따라 고유한 성격을 가지며, 현재의 임금노동은 자본주의에 국한된 노동형태이다. 임금을 대가로 받는 노동은 교환가치가 있는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 따라서 생산자의 욕구보다 구매자의 요구를 충족하는 상품을 생산해야 하며,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가치는 생산자 개인의 노력이 아닌 ‘화폐의 크기’에 의해 평가받는다. 노동의 목적은 생산자의 자기실현이 아닌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는 것에 있고, 양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활동이 노동이 된다. 결국 생산적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의 형태를 가지게 된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판단하려고 한다. 업무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정성평가와 정량평가 기준안을 따로 두지만, 실제로는 정성평가를 할 때조차도 자동적으로 정량적 기준이 떠오른다. 프로그램의 성과를 평가할 때 내용이나 방향성보다 프로그램 운영시간의 합과 예산의 크기가 기준이 된다. 하루 노동일이 끝났음에도 전문성 향상을 목적으로 연구시간을 갖는 것보다, 초과근무 시간의 양으로 업무의 중요도와 성과를 평가한다.

이러한 사회풍토는 업무의 질적인 향상이 아닌 어떻게든 시간만을 채우면 된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모든 직업은 철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직업윤리에 대한 사유없이 월급날만을 기다리게 한다. ‘어떻게 하면 일을 적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월급 루팡’ 이라는 자조적인 농담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이렇게 노동현장이 임금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이 들면 하루라도 빨리 일을 그만두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된다.

하지만 GDP가 3만이 넘어가며 경제적 수준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자본주의가 가져온 노동의 소비적 태도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의 애사심과 경제적 가치를 강조하는 방법은 더이상 사람들의 깊은 곳까지 닿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안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삶의 목적과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단순한 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새로운 사람이 아닌 기존에 함께 일하던 사람을 우선 채용하는 것이나 경력자를 선호하는 것은, 업무의 효과성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업무에 책임감, 윤리의식을 가지고 임하는 사람들을 채용하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복지제도를 다양화하고 사람의 여러 면을 볼 수 있도록 많은 채용절차를 거쳐 선발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오래 근무하고 싶은 곳은 단순히 신체적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노동자에게 자율성과 신뢰로움을 주는 곳이다. 노동자 개개인의 자기실현을 가치있게 여기는 조직과 관리자여야하고, 정량적 결과로 평가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과 성장가능성을 믿고 그 사람의 속도와 방향을 기다려주는 태도는 여실히 드러난다. 금융치료라고 하지만 이는 부가적이고, 개인이 결국 마음을 더하고 싶은 곳은 사람을 긍정하고 소중히 여기는 곳이다. 이런 회사에는 노동자들도 애쓰고 오래 머무르며 결국에는 자본의 축적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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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해본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스스로 자율성과 자기감을 실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노력할 수 있는 범위는 있다. 상황에 대한 비판은 쉽지만, 성장을 위한 대안을 생각해내는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을 생각하지 않으면, 무력해지고 수동적이 된다. 어쨌든 내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하고 싶은 역할과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 고민을 바탕으로 실천하는 노력들은 다양한 길을 만든다. 체제가 개인을 믿고 맡겨주는 자율성을 바라지만 그런 상황이 어렵다면,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일상을 관리하는 것은 나를 좀 더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임금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컨베이어 벨트 같은 삶에서 숨쉴 수 있는 방법은 소비적 형태의 활동이라고 여긴다면, 나의 노동은 생명력을 좀먹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러한 자본가적인 삶에서는 하루 동안 일한 시간과 만난 학생수, 지친 몸의 상태로 나의 성과를 평가한다.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내’가 새로 알아차린 것이나 소통의 폭이 넓어지는 것에 주목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기대나 관심이 아니라 타인의 피드백과 익숙함이 기준이 되어, 나의 삶이지만 외부의 반응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나의 감정에 집중하지 않아 ‘지금-여기’에 머무르지 못한다.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이 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아까워하고, 내일을 걱정하느라 온전히 현재를 경험하지 못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닌 과거의 나에 매여, 내일이 괜찮을 수 있는 선택지를 바란다. 스스로 많은 것을 하고 있음에도, 오늘의 선택 또한 내일의 나를 위한 선택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기가 어렵다.

내 삶의 비-자본적인 활동은 똑같은 일상이더라도 호기심을 갖고 과정을 즐기는 것, 새로운 시도를 통해 경험할 것들을 기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내가 만나는 학생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한 걸음 더 알아가는 것, 스스로 성장의 방향을 찾도록 과정에서 함께 하는 것,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내가 해보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것이 그렇다.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하는 것, 친구와의 만남에서 어떤 새로운 기억을 남길까 기대하는 것,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 세미나에 참여하고 에세이를 쓰는 것도 그렇다. 나아가 세상의 쟁점들에 관심을 갖고 다른 입장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며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당장 개인의 편리함을 추구하기보다 비-효율적이더라도 사람들과 연대감을 갖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장애인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불편함보다,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생각해보는 것, 산업재해를 안타까운 사고가 아닌 사회문제로 보고 목소리에 힘을 더하는 것,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경제적 측면이 아닌 교육철학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비-자본주의적 활동들은 나의 삶의 태도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건 자유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으니, 과거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가지기를 희망한다. 삶을 두려움이 아니라 기회의 시선으로 보며, 그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해낼 수 있을까를 기대하기를 바란다. 스스로의 능동성과 적극성을 존중하며, 세상에 대한 애정이 결국 나의 삶에 충만함을 가져올 것을 의심하지 않고 나아가길 바란다. 나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것들은 내가 알고 있다는 것, 그렇지만 나만 옳다는 자만심이 아닌 겸손의 마음으로 실천의 방법을 고민해나가는 태도를 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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