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미나자료 :: 기획세미나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북클럽자본_시즌1] 에세이 

의료는 항상 자본과 함께 작동한다
: 의료자본을 바라보는 어느 의료인의 퍼스펙티브

의사1.jpg

 

1. 들어가며: 의료라는 상품

의료라는 것이 좀 요상하다. 수학공식이 아니어서 종종 진단의 어려움이 있다. 딱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송 걸리지 않으려는 의사 입장에서는 이런 검사 저런 검사를 많이 하게 된다. 그런데 의료소비자, 환자의 입장이 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의료 앞에서 직면하는 현실은 어떤가. 불안해서 돈을 주고 검진을 받아야 하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공짜니까 기를 쓰고 ‘일단 검진 받고 보자’이다. 그러다 뭐라도 발견되면 그와 관련해서 소비해야 할 파생 의료상품은 오죽 많은가. 그것들 전부가 의료산업이 잉여가치를 짜낼 수 있는 블루오션이다. 소위 인간생명 산업. 행위 하나 하나가 다 돈이다.

3개월간 고병권의 『북클럽자본』 1~6권을 다함께 읽었다. 나는 의사이고 20년간 의료산업에 종사했다. 의료는 공공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이윤창출의 영역이기도 하다. 돈이 되지 않으면 의료산업은 유지될 수 없다. 무한정한 의료상품을 자발적으로 소비할 것인지, 아니면 자기만의 길을 갈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야에 잡히는 몇몇 의료상품들과 사례들을 가지고 나의 의견을 말하려고 한다.

 

2. 삶을 상품화하는 의료서비스

 

 코비드19 키트와 코로나 팬데믹  대량으로 검사되고 버려지는 무지막지한 Covid19 플라스틱 검사키트만 생각하면 나는 열불이 난다. 사람들은 그 신제품 검사키트 회사에 재빨리 주식투자를 할거냐 말거냐 고민을 한다. '코로나 검사종식이 코로나 종식'이라는 신념을 가진 어떤 의사를 알고 있다. 그는 그 신념으로 병원에서 해고당했다. 그냥 말로만 하고 끝냈으면 되는데, 자비로 그 주장을 담은 책을 출판하고 병원내 직원게시판에까지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일하는 종합병원도 코로나 팬데믹 기간 2년 동안 큰 흑자를 냈다. 정부를 통해 많은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민이 낸 세금들이다. 이때도 흑자라는 말이 크게 부각된다.

흑자냐 적자냐 혹은 본전이냐. 버려지는 그 수많은 플라스틱 키트 쓰레기 하며, 코로나 양성이라고 진단된다 한들 알다시피 결국 종합감기약 먹는거지, 팍스로비드나 라게브리오, 전문 항바이러스 정맥주사치료제를 처방해주진 않는다. 고령 혹은 기저질환자만 검사하고 잘 관리하면 되는데, 이게 무슨 세계적 난리인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키트생산, 마스크생산, 이래 저래 기타 등등 다 돈이 되기 때문에, 종식이 계속 유예되는 건 아닌지. 그냥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면 안되는지.

 

 증상도 없는데, 건강검진?  직장검진이다, 생애전환기 검진이다, 이런 저런 이름 붙여진 검진산업들이 있다 ‘증상이 없는데 왜 저리 기를 쓰고 검진을 받을까’ 나는 아직도 의문이다. 증상도 없는데 왜 혈안이 되어서 그 어떤 병이라도 찾고 말겠다고 이 의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심지어 그들은 내게 악다구니 친다. “니 말 듣고 가만히 살다가 나중에라도 덜컥 발견되면, 니가 책임질꺼야?”

증상은 없는데 국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건강검진 내시경을 받다가, 장에 천공(구멍)이 생겨 개복수술을 한 동료직원의 아버지 케이스가 있다. 그 동료직원은 본인이 일하고 있는 병원이라 따로 소송도 못했다. 물론 개복수술 이후 흔한 합병증인, 장유착으로 인한 잦은 장마비으로 돌아가실때까지 고생하셨다. 물론 이런 케이스는 드물다. 조기에 병을 발견하여 회복된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건강검진이 최고일까.

지금의 건강검진 산업은 너무 과도하다. 병원 수익의 큰 부분이 거기에서 나온다. 검진산업에 종사하며 생계유지하는 노동자도 많다. 부가가치(잉여가치)가 검진산업을 통해 창출된다. 뭐든 잉여가치만 남으면 그것은 상품이 된다고 우리는 배웠다. 생명도 죽음도 건강도 삶도 이제는 자본의 재료가 된다.

자본은 스스로 증식하는 가치라고 정의된다. 생명력 빨려가며, 쉬는 시간에 핸드폰으로 주식 투자해가며, 하루 24시간 동안 잠자는 시간 말고는 모든 게 노동/이윤창출/자본의 욕망으로 점철된 일상을 살아가는 작은 자본가들인 우리들은 걱정이 된다. 우리 몸이라는 상품, 즉 ‘노동력 상품’에 하자가 생길까봐. 가진 유일한 몸뚱아리 하나가 유일한 생계수단이니까.

그냥 모르고 살았으면 노화로 혹은 지병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죽어갔을 텐데 굳이 돈을 들여 선별검사를 하고 수술을 받고 이후 추적관리라는 이름으로 평생 약을 달고 산다. 각종 비싼 추적검사는 덤이다. 부작용이라도 생기면 또 그에 대응하는 상품이 대기하고 있고 또다시 이윤은 창출된다. 인간이 벌이는 모든 사건/일들의 심급에는 도사리고 있다. “이윤을 낳느냐, 낳지 못하느냐”.

 

 건강 불평등과 요양도시  건강 불평등이라는 개념은 이제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안 보인다 뿐이지 개념은 개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최근에 읽었던 『권력의 병리학』에서도 제 3세계 곳곳의 현장에서 일했던 미국의 감염내과 의사가 절절하게 세계의 비참한 의료현실을 소개했다. 여전히 ‘소득의 수준’에 따라 ‘건강할 수 있는 수준’도 비례한다. 취약지역 취약계층에 의료서비스, 사회복지제도를 더 늘려 소위 사각지대라는 것을 차츰 없애는 것이 현재의 의료복지정책이고 정말로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구조적 폭력이 근본원인임을 안다면, 땜질식의 정책 넘어 사회경제구조 즉 체제에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즉, 의료와 자본이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병원을 둘러싼 도시의 인구집단은 예전에 일했던 서울지역과 좀 다르다. 한부모 가정, 저소득 가정, 부모가 형무소에 가서 방치된 손자를 돌보는 조부모 가정, 평생 날품팔이 하다가 혼자가 된 독거노인, 많은 이주노동자들, 장애등급을 받아 점점이 집에 박혀있는 사람들. 나도 이 병원에 취업을 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이 지역은 서울 위성도시 중에서 인구 대비 제일 많은 요양원, 요양병원을 가진 도시라고 한다. 땅값이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생산적인 쓸모없는 인구(노인 혹은 장애인 등)는 시설이나 가정에 격리된다. 죽일 순 없어서 ‘저렴하게’ 살려두는 인간처리 방법 중 하나로 요양(병)원 입소가 선택될 수 있음을 우리는 부정하기 힘들다.

 

3. 죽음을 지연시키는 의료산업

 

 심폐소생술과 종합병원  얼마 전 천식을 가진 52세 여자환자 케이스가 있었다. 호흡곤란으로 다니던 동네 내과의원을 혼자 걸어서 갔고, 의원 안에서 호흡성 심정지(respiratory arrest)가 발생했다. 119에 의해 심장압박술을 받으며 응급실로 이송된 환자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대략 20분간의 심폐소생술 후 환자의 심장은 다시 돌아왔고 신속히 인근 대학병원으로 전원되었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이 환자는 뇌사판정을 받았고 결국 두번째 죽음을 맞이했다고 들었다. 심장이 정지될 정도로 숨이 찼던 사람이, 인구 25만 지역에 ‘유일한’ 종합병원 응급실(내가 일하는 병원응급실)로 바로 달려올 것이지, 왜 응급상황 대처에 힘든 동네의원으로 갔을까. 물론 계속 천식약을 처방을 받던 익숙한 곳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종합병원이라는 문턱이 높아서는 아닐까라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실상은 모른다. 심정지가 되면 당연히 뇌로 산소가 가지 않는다.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다 한들, 심정지 시간이 길어진 만큼 저산소성 뇌손상의 가능성은 올라간다. 살아난다 하더라도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 장애에 대해 아무리 복지가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고스란히 남은 가족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곧 돈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떤 연령이냐에 따라 분명 다르지만, '심장이 멈추었는데 왜 애써 되돌려야 하는가' 나는 혼자 가만히 생각하곤 한다. 심장이 멈춘 건 죽은 것이다. 그냥 그대로 죽으면 안되는가. 그런 상태에 이른 사람을 왜 애써 되돌려야 하나. 나의 경험상 대부분은 심폐소생에 반응이 없어 마무리된다. 간혹 가다가 심장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많은 경우 후유증을 안고 나머지 생을 의료서비스 상품에 의탁하여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요즘 많은 사람들이 DNR(Do Not Resuscitate)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아 달라'는 문신을 가슴에 새기거나 유언에 남기기도 한다. 분명 거창하게 생명윤리를 들먹이지만, 분명 어떤 지점에서 의료는 돈 문제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돈과 무관하지 않은 안락사  십 수년 전 ‘보라매 병원 사건’이라 불리는 일이 있었다. 보호자의 요청으로 안락사를 도왔던 젊은 의사가 법정형 그리고 의사면허정지가 되었다. 돈이 많았으면 삼성의 이건희처럼 비싼 에크모(Ecmo 체외막 산소화장치)를 통해 죽음을 유예하는 쪽으로, 돈이 아무리 지출되더라도 방치의 방식으로 살려둘 수 있다. 남은 가족들에게 가해질 도덕적 비난도 돈의 힘으로 회피 가능하다. 돈만 쓰고 내버려두면 되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많은 비용이 든다.

사회복지제도가 예전에 비해서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개인의 그리고 가족의 몫으로 돌아가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안락사 같은 논의도 현재 의료윤리학 쪽에서는 이야기되고 있다. 물론 안락사 논의의 시작은 경제적 요인과 상관없는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 말고 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남은 가족들의 피폐함, 존속살인사건, 회복 불가능해서 생명을 종결시키고 싶은 그런 마음들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안락사 논쟁도 분명 돈과 관련된다.

 

 죽음산업, 장례산업 그리고 사보험  죽음산업이라고 불리는 장례산업도, 미래의 불안을 조장해서 이윤창출하는 사보험도 마찬가지로 돈의 논리가 작동하고, 또 우리들이 지녀야 할 상식을 주입시켜준다. 왜 돈을 내고 꼭 병원에 와서 죽어야만 하나. 집에서 죽으면 안되나. ‘염’을 왜 살아 생전 알지도 못하는 사람손에 맡겨져서 죽음이 보이지 않게 처리되어야 하나. 다가오지도 않은 노후 걱정과 건강불안조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험에 돈을 쏟아붓게 만든다. 그 회사들의 이익은 다 어디로 가나.

평생 먹고 살기 위해 그리고 두려워서 노동하고 저축하고 보험들고 집장만 하다가, 병원 지하 장례식장에서 돈 지불하고 남의 손에 맡겨져 육체가 정리되는 똑같은 수순을 우리는 밟는다. ‘나는 나야’라고 개성을 강조하지만 우리는 똑같은 삶을 산다. 돈과 함께 시작한 된 삶이, 돈과 함께 살아가다, 돈과 함께 끝난다

 

4. 나가며: 의료 대신 '의존'

모든 의료산업이 이제는 없어서는 안되게 되어버렸지만, 그것들을 들여다보면 이윤창출이라는 대의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판을 깔면, 어김없이 자본이 출동한다. 그것은 순환구조이다. 뭐가 먼저였는지 말하기 힘들다. 모든 것은 의료상품이 되고, 그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재생산의 작은 톱니바퀴가 된다. 의료소비에 대한 상식을 우리 스스로 판단했다고 믿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위에 나열한 사례들 모두가 자본(돈)과 연결된다는 것을 이번 에세이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 에세이 제목을 ‘자본을 바라보는 어느 의료인의 퍼스펙티브’라고 정한 이유는 그래서이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도 강제하지 않는 의료상품 소비, 그러나 그것은 ‘자발적 소비’라는 동력에 의해 의료시장은 오늘도 거대하게 커지고 있다.

고병권선생님과 장애학세미나에 참가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 ‘의존’이라는 개념이다. ‘장애인이 과연 의존만 하는 존재인가’라고 세미나시간에 세미나원들에게 질문이 던져졌다. 장애 역시 어떤 프레임을 씌우냐에 따라 그 해석은 달라진다. 정상성 개념도 비정상이라는 대립개념을 통해 정의된다. 장애 관련 산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돌봄노동 산업, 의료재활 산업, 장애인에게 필요한 보조기구 기타 등등의 제조산업. 사실 상호 '의존’ 자체가 실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지 않냐고 세미나 책 『장애화의 정치』에서 말한다. 인간을 넘어서 만물은 서로가 서로에 기대어 살아간다.

 

#남은 이야기: 가치있는 노동, 가치없는 노동

병원미화부 여사님과 구내식당 여사님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의 노동강도가 나보다 약한가, 하찮은 일인가. 그렇지 않다. 백화점 면세점 입점한 외국명품을 수입하고 홍보해서 파는 외국계 럭셔리브랜드 회사에 종사하는 친구, 오락패션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는 미디어업계에 종사하는 친구가 왜 여사님들보다 월등히 많은 월급을 받아야 할까. ‘사회적 필요노동’이라는 척도로 쟀을 때, 그들의 노동력 재생산비용은 높다고 간주된다. 누가 더 받아라 마라 내 소관은 아니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왜 세상은 가치있는 노동을 하대하는 걸까.

생명(먹고/싸고/쉬고/자는)에 관계되는 식사/음식장만/청소/돌봄/잠자리 등등의 종사자들은 돈으로 환산되는 잉여가치를 적게 생산해내니, 우리 삶에서 그 일이 아무리 소중하고 필수적이고 가치 있다 한들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된다. 역사적으로 그것들은 오이코스의 영역, 즉 가정내에서 여성과 노예의 ‘불불노동’으로 즉 무임금으로 간단히 해결되어 왔다.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 지금의 삶은 피곤해진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2북클럽자본 :: 자유의 파토스,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1] oracle 2022.12.22 205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0니체세미나 :: 비극의 파토스, 디오니소스 찬가 [2] oracle 2020.12.21 377
공지 [에세이자료집] 2019니체세미나 :: 더 아름답게! 거리의 파토스 [2] oracle 2019.12.19 683
958 [청인지15-3주차 발제] 푸코의 담론이론: 표상으로부터의 탈주 file 진영 2022.12.30 94
957 [청인지15-2주차 후기] 상징계를 탈주하기 [2] 이희옥 2022.12.29 99
956 청인지 2강 발제 (무의식의 이중구조와 주체화) file 초보(신정수) 2022.12.23 72
955 [청인지15 - 1주차 후기] 라캉으로 시작! [2] 경덕 2022.12.20 186
954 [북클럽 자본_에세이] 포겔프라이(vogelfrei) file 손현숙 2022.12.19 82
953 [북클럽자본_에세이] SPC사건, 다시 보기 file 파도의 소리 2022.12.17 76
952 [북클럽자본_에세이] 인공지능의 침묵 file 사이 2022.12.16 90
951 [북클럽자본_ 에세이] 옥수수 연대기, 비누연습 file 용아 2022.12.15 70
950 [북클럽자본_에세이] 괴물 씨앗 file 에이허브 2022.12.15 127
949 [청인지 15] 1강 발제 file 감쟈 2022.12.14 172
948 [북클럽자본_에세이]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1] file 초보(신정수) 2022.12.12 177
947 [북클럽자본_에세이] 안티워크와 인정투쟁의 종말 드넓은 2022.12.08 166
946 [북클럽자본_토론] 12권(4~6장) 포겔프라이 oracle 2022.12.08 47
945 [북클럽자본_토론] 12권(1~3장)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oracle 2022.11.30 78
944 [북클럽자본_후기] 11권(5~7장) 우리들의 죽음 에이허브 2022.11.29 98
943 [청인지14] 에세이 file 이희옥 2022.11.28 64
942 [청인지14] 에세이는 아니고요... file 낙타 2022.11.25 61
941 [청인지14 에세이] 철학의 모험과 나의 모험 네오 2022.11.25 56
940 청인지 에세이_멍게는 멍게다_권경덕 [2] file 경덕 2022.11.25 7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