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쪽 평행론
오르키데와 말벌과 같이 두 지층은 만나지 않지만 상응한다. 이런 의미에서 두 지층이 이루는 평행선은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반면 구조주의에서 말하는 구조적 동형성은 상이한 지층의 차이를 무시한다는 점, 기표적인 것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상응성을 동형성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평행론과는 다르다.
-> 1장에서 계속 등장하는 이분법 중에서 이것은 좀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분법을 이용해 이분법을 돌파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말이죠.
115쪽 동서양의 구분
-> 오리엔탈리즘이 떠오릅니다. 사실 오리엔탈리즘이 뭔지 잘 모르긴 하지만요. 물론 책에도 너무 단순화된 이분법이라고 언급되긴 합니다.
* 이분법과 우열의 대립이 1장 후반부로 갈수록 강해져서 불편하고 괴롭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읽을때마다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이분법의 함정과 우열/위계의 구도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며 읽었습니다. 저는 변화(혁명)를 위해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발전해야) 한다는 계몽적 관점을 매우 불편해하는 사람입니다. 쉽게 우열의 구도를 받아들이게 되고 나의 현실을 비루하거나 부족한것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긍정의 철학, 나의 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성공/실패의 구도를 받아들이는 할 수 있음이라면 그 외침은 다소 위험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계몽에 반대하는 제 입장이나 주장이 전체(배치)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는, 모두를 힘빠지게 하는 형식뿐인 다양성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계몽주의를 반대하면서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는, 다양체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노마디즘은 참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