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미나자료 :: 기획세미나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하이데거와 블랑쇼 강의 후기입니다

erasmo 2013.05.18 21:57 조회 수 : 2180

저는 사실 필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필기를 해야만 기억에 남을 거라면 그것은 별로 와닿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학교에서는 선생님 눈치가 보여서 필기를 하기는 하지만요

 

이철교는 눈치 볼 게 없으니까요... 제 세상이니까요

 

 

그런데 하이데거 강의와 블랑쇼 강의는 필기가 하고 싶더군요

 

워낙 처음 듣는 얘기이기도 하고 그들만의 독특한 낱말들이 많아서 그랬을 것입니다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인 '무언가의 드러남', '연약한 표면의 문제' 등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말입니다

 

 

아, 특히 하이데거에서는 '죽음으로 미리 달려가 보는 결단'이라는 말이 참 멋있었습니다

 

이 문구가 좋다고 누군가에게 말했더니 "너에게 뭔가 전체주의적인 게 있는가보다" 라고 하더군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제 안에 파시즘의 씨앗이 있을지도...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꼼꼼히 읽어 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하늘과 땅과 귀신들과 죽을자들, 즉 사방세계의 합일'이라는 말은 오글거리기도 하면서 섬뜩하기도 합니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이라는 익숙한 구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내 옆에 귀신들이 나와 합일해야 한다니 해괴합니다.

 

그리고 선술집에서 퍼 마시는 포도주가 왜 나쁩니까?

 

맛있으면 좋은 것이고, 마셔서 즐거우면 좋은 것이지!

 

포도주를 '사물화'하기 위해서 제사까지 지낼 건 또 뭐람!

 

19세기 말 러시아의 유명한 상징주의 철학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천상의 여성적 원리인 소피아가 지상에 하강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그 소피아와 세 번이나 직접 만난 적이 있으며, 그 경험을 <세 번의 만남>이라는 시로 옮겨 적었습니다.)

 

"발정난 고양이의 울부짖음은 듣기 싫지만, 짝을 찾는 꾀꼬리의 노래소리는 예술이 된다."

 

하이데거의 얘기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지만

 

두 사람 모두 아름답고, 의미있고, 고결한 것, 신성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나는 포도주를 맛있게 마시면 안 되고  

 

샘물과, 햇빛과, 이슬과, 바람과, 농부의 손길과, 그의 땀에 하나하나 감사하면서만 마셔야 하는 걸까요?

 

포도주에 포함된 여러 물질들이 만들어내는 그 본연의 맛을 느끼기에도 포도주가 목 넘어가는 순간은 짧습니다.

 

포도주로 입을 훌렁이면서 사방에 절을 네 번 하는 거라면 몰라도...

 

 

그리고 블랑쇼...

 

사물의 구원, 사물과의 우정, 낮과 대립하지 않는 어둠 그 자체, 비인칭적 죽음, 무위의 독서 등등

 

그의 유일한 초상 사진 속 그의 눈빛처럼 아슬아슬한 단어들입니다

 

데자스트흐... 카오스라는 말보다 훨씬 더 살 떨리는 말입니다

 

집에 와서 <카오스의 글쓰기> 몇 쪽을 읽어보니 정말 아스트랄 하더군요

 

니체가 잠언 속에 들어 앉아 사자후를 토하고 있다면(그도 사자자세를 알런지...)

 

블랑쇼는 속삭이고, 말을 하다 말고,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해 주고 그런 거 같습니다. 얼마나 새침한지...

 

<문학의 공간>을 펼쳐보니 가장 눈에 띄는 말이

 

"나를 읽지 마세요(Noli me legere)!"

 

 

읽지 말라고 하니까 더 읽고 싶고

 

대답도 안 해 주니까 더 묻고 싶고

 

하도 속삭이니까 귀를 더 가까이 가져가게 됩니다.

 

 

블랑쇼를 한 번 파 보아야 하겠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2북클럽자본 :: 자유의 파토스,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1] oracle 2022.12.22 214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0니체세미나 :: 비극의 파토스, 디오니소스 찬가 [2] oracle 2020.12.21 385
공지 [에세이자료집] 2019니체세미나 :: 더 아름답게! 거리의 파토스 [2] oracle 2019.12.19 693
1005 변산공동체를 다녀와서 1. [19] 우성수 2012.08.26 2377
1004 [이철교 세미나] 한샘조 첫 세미나 후기 [2] 우준 2013.03.12 2370
1003 이진경의 철학교실 11.19 세미나 후에 생긴 생각 (지훈조) [1] 정우 2012.11.22 2310
1002 18일 발표글 올립니다.(2조 김영수) file 엠오디 2011.01.18 2302
1001 내 인생의 책 한권 <장외인간> [2] file LIDA 2011.01.09 2298
1000 감성틈입 혹은 감성 기대기? ㅎ [6] 우성수 2012.07.09 2296
999 내 인생의 책한권, 삶의 한가운데, 이상웅소개. [1] file 떳떳해야자 2011.01.10 2294
998 화요일 질문거리랑 토론거리~ LIDA 2011.03.07 2292
997 봄에, 시간되면, 봄 보러 오세요 [4] 어영 2012.03.13 2285
996 에..세이를 다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1] 먹구름 2011.03.26 2282
995 도덕의 계보 요약 file 유키진 2011.01.25 2271
994 도덕의 계보/이진경선생님 강의요약 [3] file 테리~ 2011.01.24 2265
993 이철교 제2강 후기 [1] 국희씨 2013.03.12 2263
992 11월 17일 토요일 이진경쌤 강의 후ㅋ기ㅋ입니다. (>_<) [5] file 종윤 2012.11.21 2259
991 <독일 이데올로기> 발제문 file 줄리 2012.07.15 2255
» 하이데거와 블랑쇼 강의 후기입니다 [4] erasmo 2013.05.18 2180
989 [니체_후기] 권력의지 2권 2장 도덕에 대한 비판② [4] 다비 2020.06.18 2159
988 '생산의 추상기계와 코뮨주의' 강의 후기입니다. [8] 승곤 2012.08.08 2157
987 내 인생의 책한권 _ 조유진 [1] file 유키진 2011.01.10 2155
986 책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1] file 김지혜 2011.01.09 2113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