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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 후기

둘기91 2013.04.11 14:05 조회 수 : 2074

누군가에게 종용을 받아 이렇게 후기를 씁니다.
실은 강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거의 휘발된 터라,
유의미한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음.
 
지난 토요일 이진경 선생님께서 언어학에 대해 강의하셨지요.
다행히도 저의 경우, 철굴 세미나에서 일주일 먼저 언어학 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터라,
강의에서의 맥락을 잡는 데에 어려움은 크게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전까지 철학사와 관련된 서적을 몇 권 읽어 보았을 따름인 제게
처음으로 접하는 '언어학'은 굉장한 흥미로 다가왔어요.
 
언어마다 사고를 제한하는 나름의 규칙이 내장되어 있고,
각각의 언어는 사용자가 세상을 파악하는 툴이라는 거지요.
그리하여 언어 혹은 사람들의 언어 사용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삶과 사고에 대해 알아내겠다는 입장입니다.
 
철굴 세미나 때에도 말하였지만, 신기하지 않나요?
우리의 사고가 우리의 언어에 의해 규정된다는 거예요!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하였는지 언어학자들의 머리를 한번 열어 보고 싶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외국어를 익힌다고 함은 다만
가용 언어에 하나를 추가하는 차원 이상의 무엇이라는 이야기 또한 새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혹은 문화권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게 된다는 거지요.
 
여하튼 최근에는 언어학에 대한 관심이 마구 증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외국어 습득 또한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시시콜콜한 잡담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지금부터는 휘발되어 버리고 남은 머릿속의 잔여물을
다이제스트 식으로 나름 정리하여 볼게요.
 
위의 언어학의 의의를 이론으로 처음 체계화한 훔볼트는
6강에서 비중이 크지 않았다고 기억하기에 건너뛰고,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으로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소쉬르는 기호와 지시체 –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 – 사이에
특정한 유사관계나 일치관계가 없다는 전제 하에 몇 가지 견해를 제시하는데요.
 
우선 언어활동을 파롤과 랑그로 구분합니다.
파롤은 성대를 울려 나오는 소리 자체인데, 화자나 시간에 따라 일회적 성격을 자연히 갖습니다.
랑그는 말하기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규칙 전체를 의미합니다. 문법이란 랑그의 일부라네요.
 
소쉬르는 ‘랑그’를 언어학이 다루는 대상이자,
모든 언어활동의 사회적 규범이며 하나의 사회적 제도로서 규정합니다.
 
또한 기호를 기표 – 표시하는 것 – 와 기의 – 표시되는 것 – 로 나누어,
기호와 지시체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기표와 기의의 관계 또한 자의적이라 말합니다.
시계가 ‘티계’나 ‘치계’라고 불리어서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거지요.
 
그밖에 기호를 사용하는 데에 동시적으로 갖춰야 하는 조건들을 연구하는 ‘공시언어학’과
언어의 역사적 변화를 연구하는 ‘통시언어학’을 제시하여 
전자야말로 언어학의 중심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문장에서의 결합관계와 계열관계를 구분하여 다루기도 하고,
기호의 가치가 다른 기호들과의 관계 – 차이 – 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위의 소쉬르 견해에 관해서는 다들 알고 계시리라 여겨지는 데에다가
‘철학과 굴뚝청소부’에 더욱 제대로 서술되어 있으니,
여기서는 길게 말하지 않을게요. 귀찮아요^^;
 
다만, 소쉬르 언어학이 지닌 아이러니한 면을 하나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겠어요.
 
개인들은 사회적 규칙으로서의 랑그에 귀속되어 말할 수밖에 없고
나아가 사고나 판단 또한 랑그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는 모든 언행에서 주체가 멀어짐을 의미하기에 ‘탈근대적’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단일한 언어구조 – 랑그 – 란,
다수의 주체로 하여금 동일한 사고와 판단을 하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하기에
칸트의 선험적 구조와 유사한 성격을 띱니다. 비록 주체의 외부에 있다는 점이 다르지만,
모든 이들이 공통된 판단을 하게 하는 통일적인 구조란 점에서
주체 외부의 선험적 구조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물론 ‘근대적’입니다.
 
이처럼 소쉬르의 언어학에는 ‘근대적’인 면과 ‘탈근대적’인 면이 공존하고 있는데,
제게는 소쉬르가 제시하는 하나하나의 이론보다도 위의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의 학자나 사상가에게 근대적이라는 그림자를 지워 내기는 그리도 어려웠던 모양이에요.
 
애당초 근대적 문제설정 - 확고한 주체에서 출발하여 확실한 진리에 닿으려는 방향성 – 자체가
쉬이 떼어 내기 어려운 매력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잡생각이에요 ^^;
 
 
이러한 소쉬르의 언어학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인물로서 강의 때에 야콥슨이 언급되었습니다.
소쉬르의 결합관계와 계열관계의 이론을 인간의 기호사용 능력으로 환원하여,
인접성 연관으로서의 ‘환유’와 유사성 연관으로서의 ‘은유’를 야콥슨은 말하지요.
 
위의 두 가지 가운데 ‘환유’에 대해서 짧게 언급할게요.
환유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철굴 세미나에서도 이야기가 나왔는데,
엄밀하게 파고 들어갈수록 애매하다는 거예요.
 
그때 그간 소설을 쓴다며 감히 떠들고 다닌 탓에 이즈음 쪽팔림을 느끼고 있는 저와
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창희님이 함께 환유를 이해하기 위한 매개로서 ‘개연성’을 이야기하였지요.
서사 예술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개연성의 의미는 애매하기는 하지만,
야콥슨의 환유를 이해하는 데에 유용하지 않나 생각했던 터이지요.
 
이를테면 ‘철학과 굴뚝청소부’에도 나오듯이
‘칼’이라는 단어에서 ‘죽음’이나 ‘공포’나 ‘강도’를 떠올릴 때에 우리는
칼과 나머지 죽음, 공포, 강도 사이에 임의의 서사를 상정하고 있지 아니한가 싶은 겁니다.
위의 과정은 필연적이라 할 수 없겠지만 충분히 개연적인 듯이 보입니다.
(이에 대한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지금까지의 구조언어학은 새로운 사고영역을 개척하여 주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커다란 난점을 드러내게 되는데,
아시다시피 외국어를 새로이 배울 때의 문제라고 합니다.
 
기호를 배우기 위해서는 언어사용 규칙과 다른 기호들을 이미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호는 물론이고 어떠한 기호의 체계도 익힐 수가 없습니다.
실증주의자들의 ‘지시적 정의’는 명사조차 제대로 밝혀 주지 못합니다.
‘토끼’를 가리키며 ‘rabbit’이라 외쳐 보았자 영어를 모르는 사람에겐
‘하얗다’ 혹은 ‘뛰다’라고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여기에서 비트겐슈타인의 화용론이 등장합니다.
 
 
그에 앞서,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세 가지 다른 종류의 텍스트에서
위와 비슷한 사례가 신기하게도 나란히 등장하였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지난주 니체의 ‘선악의 저편’ 1장에서 니체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나 쇼펜하우어의 ‘나는 의지한다’와 같은 직접적 확실성을 비판하는데,
‘나는 생각한다’라는 진술은 내가 아는 다른 상태들과 현재의 나를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상태를 확정하기 때문에
직접적 확실성을 입증하지 못한다고 말하지요.
 
또한 ‘현대의 과학철학’에서 차머스는 소박한 귀납주의자들이 
과학적 지식의 확고한 토대로 여기는 관찰언명이 언제나 이론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이는 다양한 조건 하에서 하나의 모순되는 사례도 없이 관찰되는 수많은 단칭적인 언명이 자명한 과학적 토대의 구실을 하며
이로부터 보편적 언명을 귀납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소박한 귀납주의자들의 주장과 상충함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붉음’이라는 단순 개념의 획득은 다만 관찰을 통하여서는 가능하지 않고,
‘붉음’이라는 개념과 이런 개념이 설명하려고 하는 무엇에 대한 지식의 습득을 전제하고 있다는 거지요.
 
위의 세 가지 사례에서 어떠한 공통점을 찾아 굳이 엮어 보자면,
확고부동하다 여겼던 인식의 기초가 실은 선행하는 무엇에 의해 제약을 받아 구성됨을 드러내어
앞선 기초를 뒤흔들어 버린다는 점이겠네요.
 
이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저 우연이려나요.
 
 
화용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의미가 용법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하여,
구조언어학과 실증주의가 극복하지 못하였던 문제를 쉬이 건너갑니다.
그리고 언어적 실천과 비언어적 실천이 교차되는 영역으로서
‘언어게임’이란 개념을 제시합니다.
 
언어게임 사이의 싸움에 관해 이진경 선생님께서 십대들의 속어와 은어의 사례를 드셨는데,
저는 인터넷 용어와 관련한 측면에서 보아도 이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실은 십대들의 언어와 인터넷 상에서의 언어는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지요.
 
얼마 전에 연구실 주방에서 지훈 길잡이 선생님과 나물을 다듬던 와중에 튀어나온 이야기인데요.
이른바 ‘리즈 시절’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현재 ‘전성-기’, ‘화려했던 과거’, ‘그리고 쇠락해 버린 지금’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본래는 영국 축구팀 리즈 유나이티드의 화려했던 시절을 해외축구 커뮤니티에서 지칭하였던 말이었지요.
지금 리즈 유나이티드는 잉글랜드 2부 리-그에서 분투 중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리즈’라는 단어는 본래의 의미에서 멀어져 ‘전성-기’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위와 같은 예는 무수히 많지요.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즈음을 일상에서의 언어게임과 인터넷 상에서의 언어게임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시기로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다만, 인터넷에서 의미를 획득하는 대부분의 언어는 생성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기능을 잃어버리고 사라지기도 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듯싶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즈마 히로키가 말하였던 ‘데이터베이스 소비’ 이론과
어떤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듯이 보이기도 하는데,
저의 깜냥이 거기에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지라
더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하지요!
 
 
여하튼 후기랍시고 여기까지 끼적인 글을 나름 요약하자면, 이러하겠습니다.
언어학은 비트겐슈타인이 짱이다.
그리고 구조언어학은 이후 구조주의 형성에 방법론으로서 영향을 준다.
 
 
이상입니다.
아, 후기 쓰기 힘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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