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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자본가의 통제 아래서  

 

노동과정은 노동과정이다. 그런데…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일상에서 노동생산물을 사용했고, 면사는 언제 어디서나 면사였고 어떤 조건에서는 상품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일터는 다른 시대의 일터와 다르다. 똑같은 동작으로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내더라도 생산활동과 생산물의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통제 vs. 자본가의 통제

노동과정이 자본가가 구매한 노동력의 소비과정이 되면 노동자의 노동이 자본가의 통제 아래서 이뤄지며, 노동생산물이 직접 생산자인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의 소유물이 된다.

자본주의를 전제하지 않았을 때 ‘노동력의 사용’이라는 말은 인간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전제하면 자본가가 자신이 구매한 상품을, 즉 타인의 노동력을 소비하는 과정이 된다.

자본주의에서는 통제권을 가진 사람이 자본가이다. 노동자가 노동력 사용권을 자본가에게 넘겼다.그런데 노동자가 전달하는 명령을 수행해야 할 존재가 노동자 자신의 정신과 신체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정신과 신체기관들은 당혹스러워하며, 계속해서 목표를 완수하라는 명령으로 인해 고통에 빠지고 슬퍼진다.  

 

노동자는 어떻게 에일리언이 되는가

그래서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노동의 소외가 발생한다.

소외- alienation

노동력을 판매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노동력 사용에 대한 자신의 통제권, 다시 말해 활동의 자유를 상실하는 것이고, 자신의 능력을 처분 가능한 사물처럼 외화해서 타인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권한을 잃은 상태 :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자본가의 통제’라는 첫 번째 현상에 상응

자신의 것을 외적 사물로 만들어 넘기는 것 :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타인에게 넘기는 현상에 상응

자본주의에서는 노동과정이 노동자의 생산활동으로서가 아니라 자본가의 상품소비과정으로 나타난다. 인간에서 떨어져 나온 ‘노동력’이라는 상품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노동자는 왜 동물로 돌아갔을 때 행복한가

자본가에게 ‘목적에 부합’한다는 말은 단지 생산물의 형태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얼마나 많은 양을 생산하느냐도 중요하다. 자본가의 목적에 부합하려면 노동과정은 최대한 합리적이어야 한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효율성’을 의미한다. 자본가의 통제 아래서 노동한다는 것은 ‘노동자의 노동과정으로부터의 소외‘이며, 노동자의 생산물이 자본가의 소유물이 되는 것은 ‘노동자의 노동생산물로부터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그 생산물은 노동자의 것이 아니라 자본가의 것이 되기 때문에, 노동자는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낼수록, 더 많은 노동을 할수록 생명을 잃어간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인간(노동자)은 동물적 기능들을 수행할 때 가까스로 자신이 자유롭게 활동한다고 느끼고, (노동과 같은)그의 인간적인 기능들에서는 자신을 동물로서 느낀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하였다.

 

소외는 [자본]에서도 중요한 주제

인간을 유적 존재로 볼 수 있는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왜 기계와 대립하는가, 그것은 노동수단과 노동과정 모두가 독립적이고 소외된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기계는 노동자의 노동을 효율적으로 빨아들이는 장치이기 때문에 노동자로서는 그것을 아끼고 사랑하기가 힘들다. 노동력 판매로 노동 자체가 소외되었기 때문에 노동생산물이 타인의 것이 되고, 생산과정 자체도 노동자의 창조력이 발휘되는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자본가의 상품소비과정으로 나타난다.

자본의 축적이란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중에서 노동자에게 지불된 것이 아닌 부분, 즉 ‘잉여가치’로 구성된 것이므로, 과거 노동자의 땀방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적 노동의 성과인 과학이 노동 과정에 들어올수록 노동자는 지적으로 더 무능해지는 존재가 되며 이것을 “소외”라고 했다.

 

 4장 요술의 성공, 마침내 탄생한 괴물 – 가치를 늘리는 노동 

 

자본가의 관심은 인류 복지가 아니다

자본가가 원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이윤이다. 그가 마음을 쓰는 것은 인류 복지가 아니라 잉여가치이다. 자본가는 더 많은 물건이 아니라 더 많은 가치를 원하는 사람이다.

사용가치를 갖는 물건은 교환가치의 몸뚱이, 교환가치를 담는 그릇이다. 가치의 ‘물질적 토대’이자 ‘운반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본가가 생산한 물건에는 가치가 담기는데 이것이 상품이다. 상품은 사용가치와 가치라는 두 겹의 옷을 입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노동과정과 가치형성과정의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입물과 생산물의 가치 분석

상품가치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가 10킬로그램의 면화를 10킬로그램의 면사로 바꾸는데 6시간이 걸린다면

10킬로그램 면화의 가격 10만원(20시간) + 방추의 가격 2만원(4시간) + 노동력의 가격 3만원(6시간) = 10킬로그램 면사의 가격 15만원(30시간) --> 15만원(30시간)어치 면사 10킬로그램 산출

10 + 2 + 3 = 15 --> ‘투하된 자본의 가치’와 ‘생산물의 가치’ 동일

 

살아 있는 노동의 또 다른 마법

10킬로그램의 면사는 방적공의 6시간 노동을 흡수  --> 이 6시간 동안 노동자는 면화와 방추에 들어 있는 노동시간을 면사로 옮김 --> 자신의 6시간 노동을 더하고 면화 속에 들어 있던 20시간의 노동과 방추에 들어 있던 4시간의 노동을 손실 없이 면사로 옮김

‘사용가치의 생산과정(노동과정)과 ‘가치의 생산과정”(가치증식과정)은 하나의 동일한 과정

 

시제를 통합하면

면사를 산출한 노동 --> 방금 완료된 노동(현재 완료)

면화와 방추에 대상화된 노동 --> 그 이전의 노동(과거 완료)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추상노동)으로 보면, 서로 다른 물건 속에 들어 있는 노동들을 더할 수가 있다. 가치증식과정으로 보면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분리된 모든 특수한 노동과정은 하나의 동일한 노동과정의 연속된 각각의 단계로 간주될 수 있다. 상이한 노동에 대해 동일한 생산자를 전제한다면 각 노동에 발휘된 역량을 동질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생명을 짜서 가치를 더한다

방적공이 1시간을 일했다면 1노동시간의 가치가 더해진다. 이는 그가 ”방적이라는 특수한 노동”을 해서가 아니라 “[인간]노동력을 지출”했기 때문이다. “1노동시간 즉 1시간 동안’의 “방적공의 생명력의 지출”이다. 노동력을 사용한다는 건 ‘생명력’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가치증식과정이란 노동자가 자신의 생명을 상품에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떨어뜨리며 죽어가는 과정이다.

 

잉여가치

자본가가 투여한 가치와 생산한 가치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다. --> 화폐가 자본으로 변신

잉여가치는 폭력이 아니라 법칙의 산물이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 자본가는 어떻게 해야 잉여가치가 생기는지, 더 많이 생기는지 알고 있었다. 노동자는 자본가가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빨아들일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자본이라는 괴물은 계속해서 ‘살아 있는 노동’을 갈구한다. 살아 있는 노동을 갈구하는 이 괴물의 정체는 과거 노동자의 노동, 즉 ‘죽은 노동’이다. 자본의 영원한 생명은 노동의 영원한 죽음에서 나온다.

 

노동과정’ ‘가치형성과정’ ‘가치증식과정’

생산과정은 ‘노동과정’과 ‘가치형성과정’으로 나뉜다. ‘노동과정’은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이고 이 때의 노동은 구체적 유용 노동이다. ‘가치형성과정’은 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이때의 노동량은 추상노동의 양이다. ‘가치형성과정’이 ‘일정한 지점’, 자본가가 지불한 노동력의 가치가 보전되는 지점까지 이루어지면 ‘단순한 가치형성’이며, 거기를 넘어서면 ‘가치증식과정’에 들어선 것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는데 그 노동이 정상적 조건에서 행해져야 한다. 여기서 ‘정상적’이라는 것은 통계적인 것을 의미한다.

 

인간임을 확인하려는 노동자의 저항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파괴함으로써 자본가에게 은근히 저항한다. 생산수단에 대한 노동자의 자잘한 파괴 행위는 스스로 인간임을 확인하려는 저항의 한 양상이다.

 

단순노동과 고급노동

정상적 생산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노동력이 “평균 정도의 숙련과 기능, 속도”를 발휘한다는 뜻이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일정 속도로 계속 노동하도록 통제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기계의 속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고급노동의 경우에도 잉여가치가 생겨나는 지점은 고급노동이 노동력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지점을 넘어서는 순간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고급노동과 단순노동 사이의 구별 중 일부는 단순한 환상이거나 적어도 벌써 오래전부터 실질적 의미를 잃고 단지 전통적 관습으로만 존재하는 여러 차별에 기인한다. 또 일부는 노동자계급 가운데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를 관철하는 힘이 다른 계층보다 취약한 계층의 절망적 상태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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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이보그 노동자가 된다는 건, 노동의 소외를 극대화시키는 길이 될까요?

   아니면, ‘탈인간화’로 오히려 다양한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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