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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 제 7장 발제

고니 2021.03.13 14:25 조회 수 : 115

214
우리의 덕이란? 감미로움이 첨가된 잔인함을 지니고 있는 우리가 덕을 가져야만 한다면, 아마 우리의 가장 은밀하고 진실한 경향이나 강렬한 요구에 가장 잘 부합하는 덕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미궁 속에서 그러한 덕들을 찾아보자!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어가고 있거나 완전히 길을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덕을 찾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이것은 이미 자기 자신의 덕을 믿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근본적으로 전에 ‘훌륭한 양심’이라고 불린 것과 같은 것.

215
별들의 세계에는 가끔 두 개의 태양이 있고, 그것이 한 행성의 궤도를 규정한다. 어떤 경우에는 각기 다른 빛깔의 태양들이 단 하나의 행성을 비춘다. 현대인들도 ‘별 가득한 하늘’의 역학 덕분에 서로 다른 도덕으로 규정되고있다. 우리가 다채로운 행위를 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216
우리는 우리가 사랑할 때, 특히 진정으로 사랑할 때, 경멸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무의식적으로 소란스럽지 않게 가식도 없이 그리고 격식을 차린 말이나 도덕의 형식을 입에 담지 못하게 하는 저 선의의 부끄러움이나 감춤으로 행해지고 있다. 태도로서의 도덕은 오늘날 우리의 취향에 거슬린다. 마치 종교에 대한 적대감과 볼테르식의 산랄함을 포함하여 결국 태도로서의 종교가 취향에 거슬렸다는 사실이 우리 선조에게는 진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217
자신에게는 도덕적인 분별심이나 도덕적 식별의 섬세함이 있다고 믿게 하는데 높은 가치를 두는 사람들을 경계하라!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 번이라도 우리 앞에서 잘못된 일을 하면 우리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여전히 친구로 남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우리를 비방하는 자나 방해하는 자들이 된다. 망각하는 인간들에게는 축복이 있다 : 왜냐하면 자신의 어리석은 짓도 ‘끝내버리기’ 때문이다.

220
무관심한 사람이 대중의 칭찬을 받게 된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본래 대중이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일반인이 철저하고도 깊이 우려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무엇인지 알아야만 한다. (일반인에는 교양인, 학자, 거의 철학자도 포함된다) 그 때 명백해지는 것은 더욱 섬세하고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나 좀더 높은 본성을 지닌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매력 있어 하는 것은 대부분 보통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221
도덕주의자인 척하는 고루한 사람이나 사소한 것이나 뒤지는 사람이 자신은 사심이 없는 인간을 존경하고 우대한다고 말하는 일이 생긴다.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이며 다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명령하도록 정해져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 부정이나 겸손한 후퇴는 덕이 아니라, 오히려 덕을 낭비하는 것이다 : 스스로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모든 사람에게 이를 적용하는 온갖 비이기주의적인 도덕은 취향에 죄를 범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 이는 태만의 죄를 범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며 오히려 박애의 가면을 쓰고 더 많이 유혹하는 것이다.(더 높은, 비범한, 특권을 부여받은 자들을 유혹하고 손상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위계질서 앞에서 몸을 굽히도록 많은 도덕을 강요해야만 한다. 마침내 “한 사람에게 옳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올바르다”고 말하는 것이 부도덕함을 이들 도덕이 서로 명료하게 인식할 때까지 말이다.

225
그대들은 고통을 없애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는 그 고통을 지금까지 있었던 것보다도 오히려 더 높고 힘든 것으로 갖고자 하는 것 같다! 그대들이 이해하고 있는 안락함!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종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청난 고통의 훈련. 오직 이러한 훈련만이 지금까지 인간의 모든 향상을 이루어왔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알지 못하는가? 인간 안에는 피조물과 창조자가 일체가 되어 있다. 그대들의 동정이란 ‘인간 안에 있는 피조물’에 해당하며 반드시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고 고통스러워해야만 하는 사람에게 해당된다. 우리의 이 반대의 동정은 동정에 반항하는 동정인 것이다.
226
비도덕주의자인 우리! – 우리가 관계하며 그 안에서 우리가 두려워하고 사랑하기도 해야하는 이 세계, 미묘한 명력과 복종이 행해지는 이 세계 : 물론 이 세계는 우둔한 관람자나 은밀한 호기심 앞에 잘 방어되어 있다! 우리는 의무라는 엄격한 그물과 셔츠에 갇혀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이 점에서 우리는 ‘의무의 인간’이다. 때때로 자신의 사슬 안에서. 칼 사이에서 춤추고 있다. 또 때때로 우리는 그러한 상황 아래 이를 갈며 우리 운명의 모든 비밀스러운 가혹함에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도 대단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한다 : 우둔한 자나 외관만 보는 자는 우리를 향해 “이는 의무가 없는 인간이다”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항상 우둔한 자와 외관만을 보는 자가 우리에게 대항하는 자로서 있는 것이다.

231
배운다는 것을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우리의 근저에는, 훨씬 ‘그 밑바닥에는’ 물론 가르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으며 정신적 숙명의 화강암이 있고 미리 결정되고 선별된 물음에 대한 미리 결정된 결단과 대답의 화강암이 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에게 강한 믿음을 주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낸다. 우리는 그것을 자신의 ‘신념’이라고 부를 것이다. 우리는 그 신념 안에서 자기 인식에 대한 발자취를, 우리 자신이기도 한 문제에 이르는 이정표를 보게 될 뿐이며 가르칠 수 없는 것에 이르는 이정표가 완전히 ‘밑바닥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될 뿐이다.

232
여성은 자립하기를 원한다 : 그리고 그 때문에 ‘여성 자체’를 남성들은 계몽시키기 시작한다.
여성이 이와 같이 학문적으로 되려고 한다면, 이것은 가장 나쁜 취미가 아니겠는가? 지금까지는 다행스럽게도 계몽한다는 것은 남성의 일이었고 남성의 재능이었다.
그러나 여성은 진리를 바라지는 않는다 : 여성에게 진리가 무슨 중요한 일이란 말인가!
오늘날 “여성은 여성에 대해 침묵해야만 한다!”고 여성에게 소리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여성의 친구라고 나는 생각한다.

238
그는 여성을 소유물로서, 열쇠를 잠가둘 수 있는 사유 재산으로, 봉사하도록 미리 결정되어 있고 봉사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하는 존재로 파악할 수 밖에 없다.

239
어느 시대에서도 우리 시대만큼 나약한 성이 남성에게 이렇게 존경을 받은 적은 없다.
여성은 남성을 두려워하는 것을 잊고있다 : 그러나 ‘두려워하는 것을 잊는’ 여성은 자신의 가장 여성적인 본능을 포기하는 것이다.
전에는 예의 바르고 섬세하고 꽤 겸허함도 몸에 지니고 있었는데, 남성 앞에서 자제력을 잃고 아마 ‘책에까지’ 손대고 있다.
사람들은 여성들을 일반적으로 더욱 ‘교화’하려고 하며, 이른바 ‘나약한 성’을 문화를 통해 강하게 만들고자 한다.


다뤄보고 싶은 주제:
니체는 여성을 나약한 성이라고 표현하며 ‘여성은 이러이러한 역할을 수행해야하고 여성으로서의 일을 해야하며 남성의 일을 넘보는 것은 여성의 재능을 낭비하는 것이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이 이전과 달리 여성과 남성의 역할의 경계선이 허물어진 현재에도 대입 가능한 이야기인지, 니체가 여성이 진리라고 말을 하면서도 여성을 하찮은 듯이 생각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배운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한 니체는, ‘하지만 우리의 근저에는 가르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고 미리 결정되고 선별된 물음에 대한 미리 결정된 결단과 대답의 화강암이 있다’ 라고 했는데, 이는 사람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라는 뜻일까요? 누구나 배워서 뭔가를 할 수 없고 타고나야 한다는 뜻인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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