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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다들 너네 아빠 보고 병신이라 그랬어.”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억장은 고요하고 먹먹하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고요히 무너져버린 억장 위에 나는 겨우 섰다.

삐- 하는 이명이 들렸다. 

먹먹한 가슴을 지나 축축한 목구멍에

너무나도 뱉어버리고 싶은 말이 턱 걸렸다. 

‘맞아 아빠는 병신이야'

 

아빠는 서울 아파트 서너 채를 팔고 시골에 집을 지으셨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자식들이 아직 어릴 때 양질의 추억 씨앗을 심어주기 위해서.

아빠는 삶이 죽음으로 향할수록 추억 나무는 오히려 무럭무럭 자라 

더 큰 추억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추억 열매를 따먹고 살아온 사람.

우리 삼 남매는 생을 향한 그의 순수함 덕분에

그곳에서 놀랍도록 많이 웃었고, 각양각색 꿈을 꾸며 자랐다. 

 

그런데 우리가 커가면서 불행히도 많은 안 좋은 일이 겹쳤다.

설상가상 집에 돈도 많이 없어졌다. 

삶의 갖은 색이 빠른 속도로 바래기 시작했다.

우리 시골집에 드나들며 20첩 반찬을 얻어먹던 사람들도

그때부터는 수군거렸다고 하던데.

"아니라 처음에도 아파트 팔고 시골에 집 지을 때부터

그때 다들 너네 아빠 보고 병신이라 그랬어." 

집에 빚은 많은데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어 힘들어하던 대학생 때의 어느 날,

고민을 들어주던 사촌 언니가 말했다.

언니는 마침 독립문역 인근 재건축으로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동시에 거머쥐게 된 참이었다.

 

가족이 무심코 뱉은 진실 같은 진심.

그 끝에 멈춰 서니 무너진 억장 위였다. 

무너진 것들 사이사이로 아빠가 보였다.

상주 어떤 금색 벌판에 서서 어린 시절 얼마나 땀나게 뛰어놀았는지, 하늘에 그림 그리듯 얘기하던 아빠,

시골집 뒷산 무덤가에서 자식들과 죙일 눈썰매를 타던 아빠,

밤하늘 빼곡히 박힌 별을 무대 삼아 기타를 치며 김민기의 노래를 부르던 아빠.

뒤이어 코를 찌르는 음식 냄새.

굽은 등, 기미 낀 얼굴, 기름 자국 투성의 팔.

지하 한 켠 주방 연기에 파묻힌 우리 엄마도 보였다.

가장의 고된 노동, 그 노동의 기쁨과 감사함.

가장의 성스러운 노동, 그 노동의 피치 못함과 억울함. 

 

‘맞아 아빠는 병신이야'

문득 나는 내가 아빠가 해온 선택들을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런 스스로가 너무 역겹고 인간 같지가 않아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런 마음이 내내 들게 했던.. 너무 천박한 모양의 20대를 보냈다.

 

그러다 서른이 된 올해 우연히 마르크스를 만났다.

마르크스 덕분에 내 삶의 시대 배경을 비로소 마주 보게 될 것 같다.

내 속에 무너져버린 것들에 대한 시대 배경 말이다.

자본주의를 알고자 해본 적도 없고 무엇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솔직히 아는 것이 일면 두렵다.

하지만 이 기회에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알면 뚜렷해지고, 뚜렷해지면 어떤 용기가 샘솟겠지.

그 용기로 나의 무너진 것들을 재건하고싶다 라는 바램이 든다.

정말 그럴 수 있기를 바래본다.

 

 

후기를 쓰겠다고 했지만 까먹고 못쓰고 있었어요.ㅠㅠ

재림님이 연락을 주셔서 부랴부랴 썼습니다. ㅜㅜ 부족한 글에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책 꼭 읽어갈게요!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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