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에게 니체는 망치가 아닌가.
#516 요약하면, 논리학은 논리학 자체가 “진리자체”에 관해 무엇인가를 선언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는다.
요약하면 주체는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요. 진리는 그 목표점입니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데카르트中
‘권력의지’라는 책을 통해, 철학은 무엇을 하는, 무엇을 위한 학문이었는가를 배워가고 있다. 세미나에서 발언했듯, 나는 니체를 망치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못했다”하고 표현했듯, 나는, 내가 그 정도의 이해능력을 갖추지 못해서. 라고 여기고 있었다. 세미나에서의 발언 이후, 내 발언에 대해 되돌아보며, 내가 못한것인지, 안한것인지를 정리해 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니체는 망치”라는 표현은 근대 철학이 추구해온 ‘진리’ 자체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라고 정리하여 시작한다. (전제)
그렇다면, 나의 ‘진리’는 무엇일까? 나는 어떠한 ‘진리’를 추구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까? (some kind of truth), 나는 ‘진리’를 추구하고 싶어할까? (any truth)
1. 나에게 신학은 진리가 아니다. 나는 무신론자이기에.
그럼 ‘무신’이 나의 진리일까. ‘신’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나는 “신의 역할을 하는 것”은 존재한다고, 존재할 수 있다고, 어쩌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가 될 수도, 돌이 될 수도 나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본다. (이런 나를 무신론자로 분류해도 되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대중적 진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현실이 그렇지 않기에). 반면 ‘도덕’이 되었으면, 하는 욕망은 존재한다.
2. “truths와 Truth” 니체가 말하는 과학적 방법론은 이해하게 해준 개념이었다.
과학의 진리는 최선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더 설명이되는’ 진리가 나타나면, 기꺼이 물러나는 진리. 명왕성이 왜소행성으로 퇴출되어진 것에 큰 감정적 동요가 없는 것. ‘행성’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지는 기준의 재정비 쯤으로 나는 받아드렸다. 물리학과 뇌과학 또한, 현상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지. “Truth”가 되기를 추구하는 학문은 아니라 느껴진다.
3. ‘진리’가 ‘인간 존재가치’와 연결되어 생각되어져 왔다는 느낌이든다.
요즘엔 인간의 가치가 “우리가 이렇게 지구를 사용해도 되겠어?”, “우리가 동물을 착취하고 섭취해도 될까?” 그리고 “복제인간은 인간일까?” 들의 질문들로 생각되어 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질문들이 ‘진리’를 향한 질문은 아닌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515 “우리끼리 하는 말인데, 아무도 우리 인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라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에우클레이데스의 공간뿐만 아니라 이성도 단지 동물들 중 어느 특별한 한 종(種)의 특이성에, 그러니까 수없이 많은 특이성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가 재미있게 읽혔다.)
진리의 유무를 제쳐두고, 나는 별로 진리를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파악되어지는데, 나는 철학적 태도를 가지지 않은/못한 것일까?
‘진리’를 추구하던 니체 이전의 철학자들은 어떠한 이유가 있었을까.
철학은 무엇을 위한 학문일까.
내가 이러한 내용을 몰라 니체를 망치로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이글은 결론이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어쩌면 적어도 올해는 결론을 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에 대한 나의 지식이 부족한데 감히 그래도 될까. 라는 생각이 일차적 이유이며, ‘정돈된 결론’이라는게 무엇인지 모르겠는게 두번째 이유이다.
또 개인이 글을 쓰며 ‘능력부족’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 발생가능한 일일까. 라는 생각도 들며 시작부터 모순되지 않았는가. 생각해본다.
문외한임을 드러내는 것 같아 망설여지지만, 초보자이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라 생각되어 용기내어 덧붙여 본다.
#444를 읽고 문뜩, 철학과를 나와 떡볶이집을 창업하여 이름을 소크라테스 떡볶이로 지었다는 이야기, 무인도에 각 직업군의 사람들이 떨어진다면, 철학자를 가장 먼저 구워먹을 거란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철학의 영역에 들어오지 않아서, 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철학의 ‘발견’들 어떠한 이슈들은 크게 대중화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지금 뿐인 이야기인지, 아니면 데카르트, 니체가 살던 시기에도 이 책들은 소수에 의해서만 읽혀지고, 이야기 되었는지. 그것들이 얼마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든다.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공부해 보고 싶다.
‘파급력’의 면에서, ‘발견’에서의 역할이 철학자에서 과학자로 옮겨왔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파급력을 이루는 다수는 Truth가 아닌 truths를 ‘믿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문장의 시작을 질문이라 해놓고 맺음을 질문으로 하지 못하였다. 세미나를 하면서도 항상 ‘물음표로 끝나는 질문’을 만드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아는것과 모르는것 그리고 알고 싶은 것의 구분이 어렵고, 내가 듣고자 하는 것이 지식인지, 의견인지에 대한 판단도 어렵다. 이 또한 그동안 해주셨듯, 넓은 아량으로 받아주시기를 기대하며, 제 생각의 틀을 건들여주시길 부탁드린다.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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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결과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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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신 말씀에 용기얻어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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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와!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읽었습니다.
축하해요 지수님!
무구한 영혼이 보호되고 있음을요... (망치 불 필요함^^)
감사해요~ -
'무구한 영혼'이라는 표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네요 :)
(칭찬인것 같은데 이해하지 못하는.. ㅎㅎ)
제가 종교에 대해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라,
종교에 대해 차분히 공부하고 이야기 하고 싶은데 어디서 해야 될지를 못찾고 있었어요.
앞으로 많이 도움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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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네, 지수님 , 종교는 필연적으로 극단을 가지고 있지요^^
고맙습니다^^
(무구한 영혼=니체의 "어린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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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56.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하나의 의미정립이다. '본질'은 무언가 퍼스펙티브적인 것이며, 다수성을 이미 전제하고 있다. 이 질문은 “이것은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모든 생명체에게) 무엇인가?” 라고 묻는 것이다.]
니체는 본질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퍼스펙티브적인 것'이며, 하나가 아니라 다수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철학이란 혹은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철학 혹은 진리란 나에게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퍼스펙티브적)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 역시 하나가 아니라 다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본질이란 '절대적인' 어떤 것이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수님이 어떤 것의 본질이 '퍼스펙티브적적'이며 '다수'라고 생각했다면, 니체는 지수샘에게 망치가 아닐 것입니다!)
2.
우리는 철학이나 진리에 관해서도 최소한 2가지 이상의 퍼스펙티브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진리에 대한 사랑이다.' (철학=인식론) / '철학은 삶의 기술이다.' (철학=삶의 가치)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란 참된 인식ㆍ절대적 올바름이다.' (진리=Truth) / '진리는 참이 아니라 믿음이다.' (진리=truths)특히 니체적 관점(후자)으로 진리를 바라볼 경우, 진리는 이런 것입니다. [#507. “나는 이것과 저것이 그러하다고 믿는다”는 식의 가치평가가 '진리'의 본질이다. 모든 가치평가에는 보존과 성장의 조건이 표현되고 있다.] 즉 진리란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이고 이것은 생명의 조건만큼이나 다수적일 것입니다. 특히 진리 같은 이성의 범주는 우리가 세상을 파악하기 위해, 세상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가치(#12)입니다.
3.
진리는 추상적인 무엇이나, 단지 철학이나 인식론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철학적 사유ㆍ도덕적 가치ㆍ정치적 이념에서, 이것의 일상 버전인 데시데라타(바람직한 이미지들)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것입니다. [#15. 모든 믿음은 무엇인가를 진리로 여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학공부란 무엇인가?" 철학공부에 대한 가치와 본질에 대해서도 다양한 믿음(곧 진리)이 있습니다.
A관점_"철학공부는 우리 삶을 건강하게 하는 것"
B관점_"철학공부는 교양을 쌓는 것"
C관점_"철학공부는 철학자의 가치와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때 아담이 A관점만이 철학공부의 올바른 본질이고 나머지는 잘못이라고 비판한다면, 그는 진리=Truth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이 진리라고 믿는 A관점이 가장 건강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절대진리로 주장한다면, 아담은 독단적인 진리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와가 자신은 B관점에 동의하지만, A나 C의 관점도 특정조건에서 진리임을 긍정한다면, 그는 진리=truths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와가 믿는 B관점이 다소 진부하더라도, 하와가 진리의 다수성을 긍정한다면, 그는 퍼스펙티브적 진리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니체라면, 여기서 A/B/C 관점의 차이와 위계를 말할 것입니다.)
# 자세한 것은 다음 세미나시간에 의견을 나누도록 해요, 지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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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정의 또한 퍼스펙티브적으로 접근하는것.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었어요.
덕분에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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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지수님을 세미나에서 보면 저는 성실함, 꼼꼼함이런 단어? 이미지?가 떠올라요!
이 글에서도 그런 이미지가 느껴져요. 저에게는.
그리고 (교육)철학을 공부하고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고 싶은 저에게 지수님의 마지막 질문은 너무 어려운 질문이면서도 마음이 아픈 질문이기도 하네요.
철학이 무엇이다!라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정의를 내릴 순 없겠지만 적어도 제 생각에 철학은 삶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철학을 공부하고 이야기하고 활용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저는 긍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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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것을 공부하는데에 있어, 해님이 세미나에서 말씀해 주시는 문장들이 저에게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
좋은 문장을 많이 듣고, 배우고 있어요 :)
같이 공부해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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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님! 생각하기를 즐기는 사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줄 아는 지수님은 이미 철학자라고 생각해요.
지수님의 생각하기를 응원합니다 :)
저는 코로나 시대 이후로 다시한번 비로소 철학이 자리잡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해요.
그동안은 신의 이름으로 스스로 생각하기가 금지되었거나 전쟁과 독재로 인한 먹고사니즘 시대, 근대-현대로 이어지는 시기에는 합리성과 효율성이 최고 가치였기에, 상대적으로 '본질탐구'는 극히 소수자들에게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혹은 '철학'이 도구적으로 여겨졌죠.
문화-예술을 위해 허용되는 범주 정도..
페미니즘 시대에는 계급투쟁을 위한 정책도구로도 쓰이고..
현대에는 4차 산업혁명으로 창의적인 사고를 위해 논술이 필요하다며 인간 줄세우기에... ㅎㅎ 등등
그래도 철학이 도구로라도 쓰이다니! 철학시대로 가는 과도기일테죠.
이제는 기술발전으로 효율성에 입각한 생산보다는 소비가 주된 시대가 도래하여, 대중에게도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역사적으로 보아도 인간이 '철학'에 가까이 할 수 있을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즉, '나'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소비'하는가? 모두가 소비자가 된 우리는 자연과 어떻게 관계맺을 것인가? '우주'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환경이요.
거기에 더해 지수님이 말씀하신 최선의 진리로 여겨지는 과학이 인간필요에 의한 과학적 사실보다(또는 인간중심 가치에 대한 허무성을 증명하는)
인간-자연-우주와의 본질을 좇는 과학적 이론과 실증적 자료들을 끊임없이 내뱉고 있고,
이는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대중들에게 거부감 없이 습득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최신의 과학 결과를 접하게 되는 대중들은
인간-자연-우주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환경들이 대중들에게 철학의 문을 열게 해주리라 감히 짐작해봅니다.
즉, 최선의 진리로 여겨지는 과학이 과학철학을 선도하고 있고, '철학'이 더욱 일상으로 다가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너무 흥분돼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철학을 하게 될 것인지. 모두가 철학자이기를 자처한 삶은 얼마나 다양한 삶일지.
이미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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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님이 철학을 대하는 활동적 태도를 배우고 싶어요ㅎㅎ
철학시대라.. 저는 아직 낮선 느낌이 들지만, 옆에서 한번 따라서 상상해 볼께요!
자기 삶에 수많은 의문부호가 생겨날 때, 비로소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나 자신'과 '나의 삶'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그것이 니체가 추구했던 단 하나의 진리, 나는 어떤 삶을 살고있는가? 과연 살아가고 있는가? 살아지고 있는것은 아닌가? 하는 '니체적 삶'을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점에서 이미 철학자이시라고 생각되어요.^^
뜬금없이 구경꾼이 댓글까지......주제넘었지만, 이또한 너그러이 봐주시길......^^
늘 관심있게 엿보고있는 한 사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