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미나자료 :: 기획세미나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마지막 에세이에는 "변화된 나"에 대해 쓰고 싶다고 생각을 했지만 몇 글자를 써보니... 그런 글이 써질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드네요. 지난 주까지만 해도 차이와 생성이라는 말들이 저를 사로 잡았었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생각을 하다보니 다시 "생각하는 나"로 회귀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의 수업에서 근대적 주체와 진리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개념들을 넘어서려고 했던 시도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공부했습니다. (저에게 미친) 효과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그러한 철학적 시도들은 크게 두 가지의 양상으로 읽히더군요. 

먼저, 내가 처한 조건들을 진단해주는 철학들이 있었습니다. 칸트나 구조주의자들 그리고 푸코와 라캉 같은 철학자들이 (저의 기준에서는) 첫번째 흐름에 속할 수 있겠습니다. 칸트는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인식구조라는 조건을 밝혔고 그것의 한계를 또한 분명히 했죠. 신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인간이 알 수 없다 라는 식으로요. 구조주의자들은 언어라는 통로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칸트의 기획과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인간의 의식적 구조를, 더 나아가서 무의식적 구조라는 조건을 밝히려고 하였다고 저는 보았고요. 푸코는 에피스테메라는 시대의 사고방식이나 우리를 둘러싼 권력의 작동방식 등을 밝힘으로써 내가 관계하고 있는 조건들을 진단해주는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진단의 효과가 두드러진 철학들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 세상의 비밀을 안 것 같은 개운함이 있지만 그래서 앞으로 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걸까 라는 질문 앞에서는 시원한 답을 얻을 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저에게 있어서 조건의 진단보다는 "지향"의 효과를 더 크게 안겨주었던 철학들도 있었습니다. 지향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저에게 제안해준다는 의미로 이해하시면 되겠고... 사실 저는 윤리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은데 이야기가 복잡해질 것 같아서 말을 고르다보니 "지향"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 책에서는 들뢰즈의 철학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들뢰즈의 철학을 저는 이번 청인지를 통해서 처음 접했는데요. 들뢰즈 철학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개인적 차원에서 다른 시도를 할 수 있게 유인해주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배치가 달라지면 나도 달라진다는 것. 나 역시 배치의 한 항이기 때문에 내가 달라지면 다른 관계들도 변화된다는 것이 거시적 차원에서 구조라던지 집단의 무의식을 다루던 철학들과의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조망 밑에 있는 개구멍... 같은 느낌이랄까요. 좁은 탈출구가 마련된 철학이라는 것이 차이의 철학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서 고백했던 것처럼 저는 차이와 생성을 아직 제 삶에 녹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차이를 통해 다름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가진 능력으로서의 조건이 아니라, 어떤 지향을 보여주는 철학으로 저에게는 읽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내는 것은 모두가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하는 의문도 들고요. 이런 의문은 니체의 철학을 접했을 때도 들었는데.. 누구나 초인(übermensch- 넘어서는 사람)이 될 수 있나? 하.. 일단 난 아닌 것 같은데...(넝무룩) 능력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하는 의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 철학이 가진 매력과는 별개로요...

그리고 차이라는 것은 이전의 조건이나 이전의 나에 대한 연속성 없이 포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개념이 흄이 말했던 습관이거나 바보 같은 뇌가 만들어낸 잔상, 환상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차이라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포기하기가 어려운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이라던가 증가하는 co2의 양이라던가 기차 바퀴의 소음이 만들어내는 차이에 주목하지 않고 오로지 이 글을 완성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생각하는 나"를 붙잡고 있습니다. 지금 저의 세포 하나하나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저를 시시각각 변하는 존재로 보신다면 뭐 어쩔 수 없겠지만은 "생각하고 있는 나"라는 이 존재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만큼은 하나의 고정점으로서의 "나"를 생성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나"를 어떻게 읽어야할까요? 탈영토화의 운동 속에서의 영토화, 잠정적인 고정점이라고 볼 수도 있을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속에는 여전히 잔상 혹은 환영으로서의 "나 자신"이 존재하나요? 아니면 여러분은 그저 매순간 변화하는 무엇에 불과한가요? 

저는 아직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를 설득 시켜줄 대화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직 받아들이지를 못해서 오늘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았으면 좋았을텐데 마지막 기회를 놓쳐서 아쉽네요. 

이제 글을 마쳐야할 것 같습니다. 오늘 제 글을 누가 읽어주셨으려나 궁금하네요! 헤헤. 그 동안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다른 기회에 또 뵐 수 있길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2북클럽자본 :: 자유의 파토스,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1] oracle 2022.12.22 211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0니체세미나 :: 비극의 파토스, 디오니소스 찬가 [2] oracle 2020.12.21 383
공지 [에세이자료집] 2019니체세미나 :: 더 아름답게! 거리의 파토스 [2] oracle 2019.12.19 690
998 [청인지16] 3주차 6, 7장 발제 후기 [1] 정추기 2023.05.26 57
997 [청인지16] 5주차 발제_『선악의 저편』 제 2장 노은석 2023.05.19 74
996 [청인지16] 5주차 발제_『선악의 저편』 제 1장 file 이희옥 2023.05.17 66
995 [청인지16] 4주차 발제 8, 9장 file 수형 2023.05.12 51
994 [청인지16] 2주차 후기 삶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법 ~ 도덕의 ‘유물론’ 진세 2023.05.01 98
993 [청인지16] 3주차 발제 6, 7장 file 정추기 2023.04.27 74
992 [청인지16] 2주차 발제 3,4,5장 file 진세 2023.04.21 71
991 [청인지 15 에세이] 일상을 여행하기 file 바라 2023.02.24 118
990 [청인지 15 에세이] 이혜미 리뷰 file 영원 2023.02.24 84
989 [청인지 15 에세이] 역량이란 무엇인가? file 네오 2023.02.24 85
988 정신장애인의 소수자-되기: 당사자운동을 통한 탈주의 가능성 file 진영 2023.02.24 83
987 [청인지15 에세이] [설국]의 인물상을 통해 주체를 말하다 file 알렌 2023.02.24 43
986 [청인지 15 에세이] 라깡의 무의식 개념 변화에 따른 주체의 변화 홍지연 file 홍지연 2023.02.24 63
985 [청인지 15 에세이] 편지는 항상 그 목적지에 도달한다 file 소형 2023.02.24 55
984 [청인지 15 에세이] 담론으로부터의 탈주 file 김구름 2023.02.24 63
983 [청인지 15 에세이] "나는야 춤을 출거야, 우리는 투명한 가방끈!" file 김정래 2023.02.24 91
982 한국 퀴어 담론 내부의 새로운 담론 형성에 관한 비판적 고찰 file 두뷰 2023.02.24 63
981 [청인지 15 에세이 프로포절] 혁명의 순간 모습을 보이는 실존에 대하여 알렌 2023.02.17 58
980 [청인지15 에세이 프로포절]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을 통한 탈주의 가능성 진영 2023.02.17 64
979 푸코와 퀴어담론 두뷰 2023.02.15 80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