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후기 [Capter3. 1장. 과학에 나타나는 권력의지]
1. 연구방법
#466 19세기의 두드러진 특징은 과학의 승리가 아니라, 과학적인 방법이 과학을 누르고 승리를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방법론적인 과학의 접근법, 그 근원은 “도덕에 의해 배양된 힘들 중에 정직성”에서 기원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3. 자아에 대한 믿음. 주체
#481 “인식”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 한에서만, 세상은 인식 가능한 것이 된다. 그러나 그때도 세상은 달리 해석될 수 있다. … “원근법주의”라고 부를 만 하다. 세상을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필요이다. 우리의 본능들과 이 본능들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곧 해석인 것이다. 모든 본능은 일종의 권력 욕망이다.
#490 단 하나의 주체를 가정하는 것은 아마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복수의 주체를 가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허용가능하다. 전반적인 우리의 의식과 사고의 바닥에서 이 주체들의 상호작용과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종의 지배력을 가진 “세포들”의 귀족정치라고나 할까?
#507 “나는 이것과 저것이 그러하다고 믿는다.”는 식의 가치평가가 “진리”의 본질이다. 모든 가치 평가에는 보존과 성장의 조건이 표현되고 있다. 우리의 모든 인식 기관과 감강들은 보존과 성장의 조건에 유리한 쪽으로만 발달해왔다. 이성과 이성의 범주에 대한 믿음, 변증법에 대한 믿음, …. 살아 있는 모든 것들과 그들의 생명의 전제 조건은 바로 이것이다. 상당히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사물들에 대해 판단을 명확히 내릴 줄 알아야 하고, 모든 근본적인 가치들에 대한 의문이 전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무엇인가가 반드시 진리일 필요는 없지만 진리로 여겨질 필요는 있는 것이다. … “진정한 세계와 현상의 세계” 나는 이 같은 대조의 기원을 가치들의 관계에서 찾는다. (진정한 세계라는 선험적인 세계관, 그리고 칸트가 말하는 물자체의 세계관. 한국인들도 조상들로부터 논어 맹자에서 그려오던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살면서 세상을 배워서 세계관을 세울 수 있을까?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이미 익숙해져 버린 진리체계와 세상에 대한 믿음을 바꿀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AI와 같이 계속 학습을 통해서 변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상의 세계를 사는 인간들은 진정한 세계를 바꾸는 그러한 변화를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8. 인과론에 대한 반대
#545 …시간은 영원하다. 그러나 공간과 시간은 “물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는 겉모습(또는 단순히 우리의 감각작용)일 뿐이다.
#550 모든 판단에는 주체와 속성 또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깊은 믿음이 담겨 있다. (모든 결과는 하나의 작용이고, 모든 활동은 행위자를 전제한다는 단정이 그런 믿음이다.) 모든 활동은 행위자를 전제한다는 믿음은 모든 결과는 하나의 작용이라는 믿음의 특별한 예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주체 같은 것이 있고,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주체와 속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근본적인 믿음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나는 무엇인가를 주목하게 되면 그것의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왜?” 라는 질문은 언제나 목적인에 관한, 사물들의 일반적인 “목적”에 관한 물음이다. 우리는 작용인에 대한 감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551 ….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코로나19가 경제위기를 불러왔는가? 아니면 실제 경제가 위기 상태로 위태하게 존재하였는데, 코로나19가 미약하나마 추가적인 위기를 불러왔는가? 선후의 관계를 연결하는 하나의 선이 아니라 다자와 다자간의 이어지는 관계, 질병이 확산하면서 통행을 통제하고, 그로 인해 수축하고 팽창하는 기업들, 그리고 급격한 경제 수축을 막기 위한 정부의 보조금과 무제한적인 양적완화. 어떤 인과 관계나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 주식격언 “투자는 예측이 아니라 대응의 문제이다.”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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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책중에도 참 어려운 강의입니다. 내용의 30%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등장인물과 단어들을 스치듯이 계속 넘긴다는.....ㅎㅎ
하지만 즐겁습니다. 참석자들의 멘트들도 재미있고, 새로운 상상력도 키우고 있습니다. 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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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0년 전에 니체가 무어라 했건, 지금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이해하든, 그것이 뭐 대수겠습니까? 현욱샘 ㅎㅎ ^.^
니체철학 중에 한 가지를 내 삶의 기술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래서 삶이 보다 건강해진다면, 그것이 모두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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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신현욱 선생님 후기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신선한 형식이 참 좋네요.
무엇보다 간식 너무 재미있게 잘 먹었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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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wkshin
감사 감사. 쫑파티때 간식 또 추진합니다. ㅎㅎ
ㅎㅎㅎ 새로운 방식의 후기입니다. 내가 꽂혔던 텍스트를 전제하고, 거기에 코멘트를 다는! 그리고 지난 세미나의 중요주제를 놓치지 않고 요약하고 있는 것이 이 후기이 또다른 미덕입니다. 그래서 다른 참가자들로 하여금 지난 세미나를 복습하게 하는 효과를 제공하는! (그동안 현욱샘이 회사일 등으로 세미나에 빠지는 일들이 많아서 [권력의지] 이 텍스트를 얼마나 장악하고 있는지에 은근 마음이 쓰였는데,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겠어요. 이것은 튜터로서의 반가움입니다! ㅎㅎ)
현욱샘이 코멘트를 달고 있는 이 주제들이 3권 1장 '인식으로서의 권력의지'의 핵심주제들입니다. 그리고 다음시간에는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삶이,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게 되나?(이런 방식의 인식의 변화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나?)"를 중심으로 얘기하고 싶습니다.
1. 과학적 연구방법에 대하여
["방법론적인 과학의 접근법, 그 근원은 “도덕에 의해 배양된 힘들 중에 정직성”에서 기원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_신현욱
① 먼저, 니체는 과학적 방법으로서 '인식론이 신학적 세계관, 신적 정직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71) 사물은 도덕적으로 되어있으므로, 인간의 이성이야말로 올바르다는 전제는, 신은 만물의 창조자라는 생각이다. 이것은 ......신의 정직성에 대한 믿음의 흔적이다. 이들 개념(*사물_도덕적, 인간의 이성_올바름, 신_창조자)은 일찍이 피안에서 생존하고 있던 이전 세계로부터의 유산이다. ② 한편, 과학적 인식론은 니체의 인식론과 다른 퍼스펙티브에 자리하고 있지요. 즉 니체는 인식론의 출발을 새로운 것으로부터 자극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과학적 인식론은 이미 확립된 총체적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다는 거지요!! (#470, 471) 인식론의 출발은 ‘하나의 총체적 세계관’에 안주하지 않고, ‘미지의 것들의 자극’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인식론은 총체적 세계관의 전형인 신학적 세계관(사물은 도덕적으로 전개되고, 인간의 이성은 올바르고, 신은 만물의 창조자라는)을 전제하고 있다.
2. 진리세계, 소위 '참의 세계, 진정한 세계'에 대하여
[진정한 세계라는 선험적인 세계관, 그리고 칸트가 말하는 물자체의 세계관. 한국인들도 조상들로부터 논어 맹자에서 그려오던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살면서 세상을 배워서 세계관을 세울 수 있을까?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이미 익숙해져 버린 진리체계와 세상에 대한 믿음을 바꿀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AI와 같이 계속 학습을 통해서 변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상의 세계를 사는 인간들은 진정한 세계를 바꾸는 그러한 변화를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_신현욱
니체는 진리란, 생존을 위한 믿음이자 오류라고 했습니다. (#507 “나는 이것과 저것이 그러하다고 믿는다.”는 식의 가치평가가 “진리”의 본질이다. 모든 가치평가에는 보존과 성장의 조건이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는 통념처럼 영원불변한 실체가 아니라, 시대성을 지니지요. 시대에 따라 진리가 변한다는 말씀! ('지동설'은 중세철학에서는 불가능한 진리였지요!) 그런 의미에서 그 시대의 진리세계란 그 시대의 지배가치일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는 철학적 사유ㆍ도덕적 가치ㆍ정치적 이념에서, 이것의 일상 버전인 데시데라타(바람직한 이미지들)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진리세계는 재연샘이 후기에 언급한 것처럼, 때로 가족ㆍ친구ㆍ사회의 의견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때로 선입견이나 선지식같은 형태로 우리 의식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현욱샘의 의문이 이 진리세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능동적인 니힐리즘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으로서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세계관이 있지 않을까? ...... 성인이 되어 이미 익숙해져버린 진리세계와 세상에 대한 믿음을 바꿀 수 있을까?" 그리고 현욱샘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시작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배워서 세계관을 세울 수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전과 다르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아닐까요? ^.^
3. 인과론에 대하여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코로나19가 경제위기를 불러왔는가? 아니면 실제 경제가 위기상태로 위태하게 존재하였는데, 코로나19가 미약하나마 추가적인 위기를 불러왔는가? 선후의 관계를 연결하는 하나의 선이 아니라, 다자와 다자간의 이어지는 관계, 질병이 확산하면서 통행을 통제하고, 그로 인해 수축하고 팽창하는 기업들, 그리고 급격한 경제수축을 막기 위한 정부의 보조금과 무제한적인 양적완화. 어떤 인과관계나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 주식격언 “투자는 예측이 아니라 대응의 문제이다.”] _신현욱
인과론에 대한 아주 적절한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과론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우리는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원인을 찾는 대신, 예측불가능한 현재의 역동성을 즐기면서 그것에 대한 대응력을 기르게 될 것입니다. 현욱샘의 말대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