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관한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바이러스 확산이 진정되는 국면에 접어든 것 같지만, 중국의 경우 어느 전문가도 앞으로의 상황을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불확실합니다. 매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중국의 상황은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을 넘어 패닉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거짓 정보를 퍼뜨려 주목을 받으려 하고, 철없고 미성숙한 인간은 장난을 쳐 사람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마스크와 손 세정제 같은 물품을 사재기해서 한 몫 챙길 기회를 엿봅니다. 가끔은 무엇을 더 두려워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치료제 없는 바이러스로 이미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또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지만, 이 바이러스 자체가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바이러스를 겪은 사람은 이전의 신체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바이러스에 의해 신체를 잠식당해 다른 물질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고, 나머지는 회복되어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가진 신체가 될 것입니다. 이 항체는 치료제로 개발되어 인류가 바이러스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그들은 달라지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차이’는 주변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것을 생성하는 것 같습니다.
비개체적인 관점에서 바이러스 또한 생명입니다. 바이러스가 인체를 지배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지만, 바이러스로서는 생명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질병이라는 하나의 사건 속에는 사실 인간의 죽음뿐만이 아니라 바이러스의 성장이 공존하지만, 우리는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바이러스를 감히 생명으로 인식하기 꺼립니다. 이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라 생각하고, 고정된 하나의 개체 입장에서 사고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참 바이러스 확산이 심각해져 가던 지난주, 무심코 뉴스를 보던 중에 귀 기울이게 하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뉴스 속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기부하고 이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생활 속 공간을 스스로 소독하는 사람도 있었고, 구하기 힘든 손소독제를 스스로 만들어 쓸 수 있게 안내해주는 약사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돈과 명예,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 주변의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으로 조직을 만들어 거창한 담론을 형성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 몇몇이 모여 지역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나갔습니다. 저는 이러한 활동이 니체가 말한 소수정치학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은 어떻게 해야 제각각인 생명이 공존 가능한지를 알게 해주는 듯했습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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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김희곤님의 흥미로운 후기를 잘 읽었습니다. ^^
코로나 바이러스와 니체의 철학을 연결해서 다양한 생각을 표현해주신 걸 보니 저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니체 철학, 그리고 그 철학을 활용한 사유의 확장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1. 먼저 '비개체적'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와 그로 인한 죽음(소멸)이 공포의 대상이 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을까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렇게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 건 결국 그 바이러스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하지만 니체의 비개체적 영원회귀 사상의 관점을 적용한다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 사람, 즉 한 개체의 죽음은 소멸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또다른 변화와 생성의 큰 흐름과 과정일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무섭고 두렵습니다. 우선은 제 자신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까봐, 그래서 회복하지 못할까봐 무섭고 가족들이 친구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릴까봐 무섭습니다. 동시에 그 바이러스로 인해 중국사람뿐만 아니라 그 어떤 사람도 생명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아직도 지극히 개체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갈길이 멀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합니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는 것과 사유하는 것, 그리고 그 철학의 지혜를 토대로 삶을 사는 건 정말 다른 문제구나. 생각합니다.
2. 인간중심적 사고에 대해서.코로나 바이러스도 하나의 '생명'이라고 볼 수 있는가? 참 어렵고 동시에 매력적인 질문이고 사유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어떤 드라마에서 "암세포도 생명이다."라는 대사가 나와서 엄청난 이슈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악'으로, 무찔러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건 '인간'입니다. 그 바이러스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관점을 바꿔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적'이고 무찔러야 할 '악' 또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활동을 방해하고 막으려고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다시 한 번 니체의 '관점주의'가 주는 시사점에 대해 고민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선과 악, 적과 동지는 늘 달라질 수 있을테니까요.
재미있는 후기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로나바이러스'라는 한가지 사건으로 우리가 공부한 여러개념들을 적용하고 있어서 정!말! 흥미롭습니다. 후기를 쓰는 희곤님이나 후기를 읽는 모두에게 즐거운 공부가 될 거 같습니다. ㅎㅎ
1. 코로나바이러스를 차이를 생성하는 사건으로 본것! ...... "이 바이러스 자체가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차이’는 주변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것을 생성하는 것 같습니다."
2. 코로나바이러스를 비개체적 생명체로 본것! ...... "질병이라는 하나의 사건 속에는 사실 인간의 죽음뿐만이 아니라 바이러스의 성장이 공존하지만, 우리는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바이러스를 감히 생명으로 인식하기 꺼립니다. 이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라 생각하고, 고정된 하나의 개체 입장에서 사고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3. 코로나비이러스에 대처하는 소수정치학! ...... "이러한 활동이 니체가 말한 소수정치학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은 어떻게 해야 제각각인 생명이 공존 가능한지를 알게 해주는!"
이렇게 임펙트있는 후기를 보자니 욕심이 나는데요. ㅎㅎ 논의를 좀더 밀고나가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중국혐오증'까지 다루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우리는 차이에 대한 3가지 퍼스펙티브를 보았습니다. 차이의 부정(적대) / 차이의 인정(승인) / 차이의 생성(긍정) '중국포비아'는 다른 것을 배제하고 적대시하는 '차이를 타자화'하는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차이를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생성의 사건으로 취급하는 '차이를 긍정'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러한 타자화 속에서는, 중국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중국인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우한시를 타자화함으로써, 나머지지역을 정상지역으로 선포하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 등 중국 외부에서는 중국인 뿐 아니라, 아시아권 인종모두가 타자(배제와 적대의 대상)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타자화는 중국포비아뿐아니라, 우리의 주변에도 풍부하게 널려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공부했던, 성소수자, 장애인, 난민, 외국인(동남아, 흑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타자를 만들어내고 있지요. 문제는 중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을 비위생적인 존재로보는 우리의 시선이 타자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차이를 타자화'시키는 시선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지금도 타자(유럽인의 시선에서)이고 언제든지 타자(다른 사건에서)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