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에 대한 강의가 시작되었죠~
사실 책의 분량으로는 그리 많지 않은데 선생님의 설명은 엄청나게 방대했던 것 같아요
중간중간에 그냥 넘어간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전 선생님의 강의를 그래도 어느 정도 들어본 거 같은데(아닌가요ㅋㅋ)
제가 들어본 중에서 가장 현란한! 강의였던 것 같습니다
생물학에서 음악까지, 스피노자에서 하이데거까지 훑으시면서도
맥을 잃지 않으시는 모습이 솔직히 감탄스러웠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는 와 잘한다 하면서 공연 보듯ㅋㅋ 강의를 들었던 것 같아요
쑥스럽지만 제 느낌은 그랬습니다~
강의는 공동체의 '불가능성'에 대한 것으로 시작합니다
저는 공동체의 불가능성을 말하는 사유들에 대해서
선생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런 점에서 '코뮨주의적 존재론'이라는 개념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강의를 들었어요
1.
무위의 공동체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도래할 공동체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공동체
이런 언급들은 모두 부정의 표현을 통해 공동체를 사유합니다
그리고 그 부정의 표현들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모두 '공동체의 불가능성'이 되겠죠
그럼 공동체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공동체의 포기를 뜻하는가?
바디우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철학적으로 공동체가 불가능하긴 하지만
철학과 정치는 분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공동체의 불가능성이 우리가 그것을 코뮤니즘이라고 명명하건 무어라 명명하건
해방적 정치의 명령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현실적인 공동체의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나 욕망은 여전히 긍정하죠
현실적인 공동체의 실패가 개인주의의 승리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문제를 현실적인 공동체로부터 '공동으로 있음'이라는 존재론적 공동성으로 옮겨옵니다
현실에서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실패하지만 우리는 어차피 항상-이미 함께 있는 존재다 라는 겁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런 식의 생각이 철학적 위안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시도를 저지하는 것이 된다고 하시죠
이건 제 생각에- 철학과 정치를 분리한다는 생각이 그럴 듯 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양자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항상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바디우의 주장은 실질적으로 철학-정치 어느 쪽에든
'공동체의 부정'으로 작동하게 된다고 생각하시는 게 아닌가 합니다
저는 코뮨주의에 대한 선생님의 글(혹은 강의)을
코뮨주의적 '존재론'이라는 것으로 시작하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존재론적으로 코뮨은 불가능해 그렇지만 실천적으로는 가능하지'
라는 말이 가지는 무력함을 넘어서
'코뮨이 존재론적으로도 가능하다'는 것
나아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코뮨이 실천적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고 계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존재론적으로 '코뮨'은 어떤 의미인가?
개체individual에 대한 고찰은 이 지점에서 힘을 가지는데
분할불가능한 최소 단위라고 여겨지는 '개체' 역시 분할가능(dividual)하고
그런 의미에서 그 개체들 역시 분할가능한 더 작은 요소들의 집합이며
그 요소들이 코뮨적으로 모여있는 것이다
즉 '개체 역시 공동체다'라는 것이죠.
이어진 스피노자의 singularity 개념은 개체/전체가 다르지 않다는 이런 식의 생각을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주더라구요ㅋ
복수의 요소들이 모여서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낼 때(하나처럼 움직일 때)
스피노자는 이를 singular하다고 말합니다
"개체성은 개체화의 결과다."
즉 개체를 개체로 만드는 것은
개체가 그 자체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요소들의 개체화를 통해서라는 것이죠
2.
사실 저는 공동체의 '불가능성'이라는 것은
그 말해지는 맥락을 통해 볼 때 크게 두 가지 의미라고 생각해요
첫째는 공동체의 '불완벽성'
둘째는 공동체의 '영원불가능성'
즉 '공동체가 불가능하다'고 할 때 그 '불가능'이란
완벽한 공동체가 있을 수 없다(어떤 공동체든 갈등과 불화가 있다)는 것과
어떤 공동체든 영원할 수 없다(역사상 수많은 공동체들이 시도되었지만 사라진 것에서 보듯)
는 것을 뜻하지 않나 생각해요
따라서 반대로 '공동체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동체가 아예 단일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더구나 '단일함' 또한 스피노자 말대로 요소들이 작용한 결과라면
요소들의 개체화가 완벽한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고
거기에 갈등과 불화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공동체의 불가능성이란 것이 공동체가 '완벽히 하나일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코뮨적 존재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합일이지 않다는 사실은
공동체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럼 '공동체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공동체의 불가능성'을 뜻하는가?
그래서 바디우처럼 철학적으로 공동체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아야 하나?
사실 바디우의 생각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존재론적으로 하등한 것으로 보는
전통 서양 존재론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데요
바디우가 공동체는 '철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도
'전통 서양 존재론의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렇지만 생명이 필연적으로 죽는다고 해서
'생명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생명은 한 세월 잘 사다가 죽는(요소들로 해체되는) 거죠.
개체를 코뮨으로 파악했을 때는
생명과 생명 아닌 것의 구분이 없어지고
그런 점에서 '존재'조차 요소들의 집합이고
개체조차 개체화의 결과라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두 공동체다"라는 사실은
변하는 것, 생멸하는 것을 존재론적으로 하위에 놓는 서양 존재론에 대해
'니네가 말하는 존재라는 건 원래 요소들의 개체화의 결과,
즉 생성으로서만 가능한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되고
이는 존재론을 근본에서부터 뒤집는 것,
존재론이라는 말로 표현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코뮨주의적으로 전복하는 것이 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코뮨주의적 존재론'이라는 개념으로 의도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3.
쓰다 보니 엄청 길어졌는데-_-
저는 사실 <코뮨주의> 1장의 내용과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개인적인 혼란을 느꼈습니다;;
부끄럽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저 역시 서양 존재론에 비판을 가하고 싶은데
그것은 그동안의 서양 존재론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존재와 생성을 구분해 온 것이
잘못됐다는 생각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언어적인ㅋ 접근이
그것을 파헤치는 무기가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해서
언어학 공부를 하고 있기도 하구요.
그런데 존재를 코뮨으로 설명하는
저 '코뮨주의적 존재론'은
너무나 명쾌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아요ㅜ
솔직히 '어떻게 이보다 더 나은 걸 만들어내지ㅜ'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뭐 당연히 앞으로 더 읽고 생각해봐야겠지만
아무튼 지금 심경은 착잡하다는 거ㅋ
푸념으로 끝나게 된 후기이긴 하지만
이번 주 강의에 대한 기대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코뮨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문제인데
개체화와 관련해서 시간에 대해
그리고 외부성과 관련해서 공간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들 주말에 봐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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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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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숙
지난 강의주제는 다음 3가지 였지요.
1부 > 1장 > 1. 공동체의 불가능성? 2. 개체의 자연학, 혹은 코뮨적 개체 3. 존재론적 공동성
이 가운데 나는 '존재론적 공동성'이라는 개념이 어렵고 모호했어요.
공동성의 문제는 앞으로 남은 1부 > 2장의 강의에서 본격적으로 언급될 것이지만...
후기를 쓴 사람으로 존재론적 공동성에 대한 한샘의 '산뜻한' 정의를 듣고 싶어요.
나는 한샘이 ...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는 말과 이리도 딱 맞을까 생각해요.
한샘이 가진 '감성의 색채'가 그런 것 같아요. 한샘... 이름부터가 그렇잖아요.
낯선 공간에서 내게 처음 말 걸어준 사람도 한샘이지요. ^^*
너부리 표정에 많은 의미가 담긴 듯...
그래도 언어학으로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을까?
코뮨주의적 존재론에서 언어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문제,
즉 코뮨에서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공동성을 이루게 하는지 등등
생각할 수 있는게 많지 않을까라고,
언어학 세미나를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한 명의 학인이 푸념을 추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