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증여와 포틀래치의 이중적 기능
고대사회에서 증여는 (교환분배) 재화의 교환/분배와 (소모파괴) 잉여재화의 소모/소비라는 이중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증여는 시장과 화폐가 없는 사회에서 재화를 교환하고 분배하는 기능을 수행하였고, 여기서 재화는 물건 뿐 아니라 사람도 포함(결혼제도, 수양제도)된다. 한편, 증여는 잉여재화를 소모하고 소비하여 필요 이상의 재화가 축적되지 않도록 저지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렇게 증여는 물건의 주고받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통한 인간의 관계맺음이다. 따라서 물건을 매개한 인간관계는 경제관계, 나아가 정치사회적 관계를 통해, 증여는 사회를 유지시키고 결속시키는 하나의 시스템, 고대사회의 운영원리가 된다.
고대사회의 포틀래치는 증여와 마찬가지로 (교환분배) 재화의 교환/분배의 시장기능과 (소모파괴) 잉여재화의 파괴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공동체의 축제, 의식인 포틀래치는 증여가 이루어지는 거대한 공간으로서 ‘전체적인 급부체계’로 표현되는데, 재화의 교환, 답례, 분배가 이루어지는 자본주의적 시장기능을 수행하였다. 한편, 포틀래치는 축적물을 파괴하여 축적을 저지하는 혁명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는데, 축적이 전쟁, 착취, 계급의 발생 등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을 저지하였다. (축적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티벳사회는 사원에 기부를, 이슬람사회는 전쟁을 선택하였다고 선생님께서 말씀!)
2. 증여 = 타인과 관계맺음 / 답례 = 증여의 선순환을 강제
고대사회의 증여는 ‘자발적 의무’라는 정의에서 이중적 성격이 잘 드러난다. 증여는 자발성에 기초하지만 도덕적 의무와 강제가 수반된다는 것이다. 증여는 주기, 받기, 답례라는 3중의 의무를 뜻하는 것으로 단순한 물건의 교환이 아니라 명예와 관련된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명예, 지위, 체면, 위신) 위해 증여를 하고, 증여를 하지 않으면 명예, 체면, 위신, 지위를 잃어버릴 수 있다.
특히, 받는 것보다 더 성대한 것으로 되돌려주는 ‘답례는 증여의 핵심’이다. 답례는 ‘재화의 거대한 교환/분배의 써클’이라는 증여의 선순환을 강제하는 고리이다. 누군가 받고 돌려주지 않는 순간 이 순환은 파괴될 것이며, 받고 더 적게 돌려주는 관계 속에서 선순환을 기대할 수 없다. 증여의 선순환을 강제하는 답례의 강제는 바로 ‘물건의 힘’에서 나오는데, 즉 교환되는 물건 속에 선물이 순환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효력이 있다. 사람들은 물건 자체가 인격과 영혼을 갖고 있다고 믿으며, 로마에서 물건은 가족의 일부로 여겨졌다. 교환되는 물건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주고받는 자의 영혼이 포함되어 있어, 물건과 더불어 자신의 일부인 영혼의 교환이 일어난다. 따라서 물건을 교환을 통해 ‘존경’을 주고받고, 물건의 영혼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구속’받는 자가 된다.
3. 증여의 동기 (증여의 이익과 유용성)
증여는 무사무욕이 아니라는 점에서 분명한 동기가 존재한다. 증여는 추장과 가신, 가신과 추종자 사이의 위계서열을 확립한다. 준다는 것은 자신이 보다 우월하다는 것, 더 위대하고 높은 주인이라는 것을 표현한다. 받는다는 것은 주는 사람의 위상을 인정하는 것이며, 답례하지 않거나 더 많이 답례하지 않으면 종속되거나 낮은 지위로 떨어진다.
그러나 증여의 이러한 동기는 ‘상인이나 은행가, 자본가의 냉정한 동기’와 다르며, 이들 문명도 이익을 추구하지만 현대사회와는 방식이 다르다. [재산은] 타인에게 지출하기 위해서, 의무를 부과하기 위해서, 충복을 얻기 위해 모으며, [교환은] 향연을 베풂으로써 이루어지며, [증여는] 처음 증여자나 교환자를 압도하기 위해서지 손실을 보충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4. 증여하는 사회 & 자본주의 사회
증여가 사회운영의 원리가 되는 ‘증여하는 사회’와 자본의 이윤과 개인의 소비가 운영원리인 ‘자본주의 사회’를 대비하면 다음과 같다(도식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차이의 핵심은 ‘증여하는 사회’는 (물건의 증여) 행위의 동기가 ‘타인을 위한 것’인데 반해,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의 판매/구매)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의 동기는 다른 결과를 낳게 되는데, ‘증여하는 사회’는 타인을 위한 동기가 공동체를 거쳐 다시 자신에게 ‘이익으로 돌아오는데 선순환’인데 반해, ‘자본주의 사회’는 자신을 위한 동기가 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하고 최종적으로 자신에게 ‘손실로 돌아오는 악순환’이라는데 있다. 타인을 위한 동기에서 출발했으나 자신에게 이익으로 돌아오고, 자신을 위한 동기에서 출발했으나 자신에게 손실로 돌아오는 역설, 증여론의 철학적 메시지가 아닐까?
/ 증여하는 사회 / / 자본주의 사회 /
[재화의 교환] 물건의 증여 (주기.받기.답례, 직접적) ...... 상품의 판매/구매 (화폐를 매개한)
[재화의 목적] 재화는 타인에게 주기 위해 모으며 ...... 재화는 자신이 소비하기 위해 모으며
[ 부의 과시 ] 타인에게 베푸는 재화의 양으로 과시 ...... 자신이 모은 재화의 양으로 부를 과시하며
[자신을 표현] 타인에 대한 증여로 자신을 표현한다 ...... 자신에 대한 소비로 자신을 표현한다.
[교환물 형태] 화폐형태가 아닌. 관계의 따뜻한 표현 ...... 상품형태, 화폐로 계산되는. 관계의 냉정한 표현
[물건의 성격] 물건의 인격화 (물건 : 인격과 영혼) ...... 물건의 객체화 (물건 : 소비의 대상)
[교환분배공간] 포틀래치 (축제/향연 : 베풂이 목적) ...... 시장 (시장논리 : 경쟁논리, 승리가 목적)
[사회운영원리] 타인에 대한 증여가 운영원리 ...... 자본의 이윤과 개인의 소비가 운영원리
5. [라다크]와 [증여론]의 현재적 의미
[라다크]가 생활방식, 삶의 총체적 방식에 대한 주제였다면(삶의 방식이 어떻게 물적 토대로부터 강제되는가), [증여론]은 재화의 교환/분배의 방식(재화의 교환/분배가 어떻게 인간관계, 경제체제, 사회의 운영체체로 확장되는가)을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전 사회의 공동체와 교환/분배방식을 공부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이 유토피아적 환상, 과거로의 회귀, 문명과 기술에 대한 냉소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그것의 현재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라다크 공동체와 같이 자본주의적 삶의 도구가 없이도 의식주와 삶이 가능하고, 고대사회와 같이 시장이나 화폐가 없이도 재화의 교환/분배가 가능할 뿐 아니라, 그것이 훨씬 인간의 본성이 가깝다는 것 ...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지배적인 방식(이윤과 소비 중심의)과 가치체계(시장논리, 경쟁논리)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은, 이것이 절대적이 아니며 다른 방식과 가치체계를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다음으로, 자본주의라는 현실적 조건 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라다크(공동체)'를 건설할 것이며 '증여하는 관계'를 형성할 것인가 ... 이것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 현실적 조건의 출발은 바로 내 안에 있는 자본의 속성과의 대립일 것이다. 자본주의적 방식과 가치체계 내부에 있는 나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적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 이것이 [라다크]와 [증여론]을 공부하는 현재적이고 실천적인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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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 질문!
(1) 증여와 포틀래치의 파괴적 기능과 관련하여
- 고대사회가 잉여재화가 축적될 만한 생산력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하구요, (광적으로 증여를 했다, 주려고 안달했다는 표현 등)
- 고대사회가 재화의 축적이 가져올 부정적 결과(관계와 공동체의 파괴, 전쟁, 착취, 계급의 발생)를 이해하고 재화의 파괴행위를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2) 물건의 인격화와 관련하여
- 고대사회는 ‘물건에도 인격과 영혼이 있다’고 믿었고, 이러한 물건의 힘을 매개로 답례와 증여의 순환을 강제했는데요,
- 지난 [코뮨주의] 강의에서 선생님이 인권은 생명권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인권(인간의 권리) < 동물권(인간 + 동물) < 생명권(인간.동물 + 식물) < 자연권(인간.동물.식물 + 사물)
그 영역을 사물에 대한 것으로까지 확장하셨는데요. 사물의 권리... 그것의 근거가 고대사회의 관점과 비슷한 건가요?
# 처음 쓰는 후기
수유너머에서 공부한 지 좀 되었는데 한번도 후기를 쓰지 않았다는 생각에서 처음 후기를 씁니다.
수유너머의 강의와 친구들이 나에게 선물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는 행위 뿐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서로에게 선물인 관계를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적 경쟁관계 속에서는, 존재 그 자체가 서로를 위협하는 적으로 만납니다.
성실함과 소박한 심성이 느껴지는 승곤님의 발제문도 고맙게 읽었고, 민환님의 수유너머와 포틀래치에 대한 언급은 마음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하는 길잡이라고 했지만, 너무 훌륭한 길잡이 지훈님도 홧팅! 일일이 언급하지 않은 친구들에게도 마음이 전달되기를......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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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숙
읽기 편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읽는 사람을 위한 몇가지 배려의 결과이지 말입니다. ^^*
(글의 체계, 글의 분량, 소제목, 글자크기, 줄간격, 밑줄과 강조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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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멋진 후기입니다ㅠㅠ 선생님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배운 걸로 생각해보자면
1. 노마디즘 2권에서 전쟁기계와 국가장치를 다룬 부분을 보면
생산력의 발전이 잉여를 낳는 것이 아니라, 스톡을 가능하게 하는 배치 속에서 잉여가 발생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렇게 본다면 잉여가 고대사회에서 발생하지 않은 것은 생산력의 발전하지 않아서라기보다
잉여를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한 스톡의 축적을 제지하는 메카니즘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2. 증여론에서 말하는 인간과 사물, 모두를 관통하는 '하우(영혼)'라는 단어는
선생님이 강의 시간에 스피노자를 언급하면서 얘기한 삼라만상 모든 만물은 산출하는 자연과 산출되는 자연으로 나뉘는
'자연'안에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 동식물, 무생물, 기계 할 것 없이 모두 자연이다는 맥락에서 등장한 '자연권'이라는 말과
어느정도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증여론에서 말하는 영혼(하우)는 점유의 개념과 연결된 점에서 스피노자식 명제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어떤 사물의 영혼은 그 사물의 고유성의 표현이라기 보다
그 사물을 점유하고 있는 주인의 영혼의 표현으로 나타나니 말이에요.
스피노자라면 사물이나 그 사물의 주인이나 자연 안에서 전혀 다른 두 양태로 표현되어다고 말하겠죠.
제가 답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이구요,
선생님 혹은 다른 학인분들께서 보다 상세하고 정확한 답변을 해주실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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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숙
너무 훌륭한 길잡이 지훈님! 선생님해도 되겠어요. 무슨 말인지 귀에 쏙쏙 들어오네요.
사유의 깊이와 학습량이 느껴지는 답변에 감사^^* 지훈이 배운 스승이 누구인지, 지훈은 타인을 빛나게 하는 사람이네요.
- 생산력의 발전이 잉여를 낳는 것이 아니라, 스톡을 가능하게 하는 배치 속에서 잉여가 발생한다.
- 스피노자의 자연 : 모든 만물은 '자연'안에 존재한다. 인간, 동식물, 무생물, 기계 할 것 없이 모두 자연이다.
[증여론]의 영혼 : 어떤 사물의 영혼은 그 사물의 고유성의 표현이라기 보다, 그 사물을 점유하고 있는 주인의 영혼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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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보곤, 너무 늦어서 낼 댓글 달아야쥐 했더니,
그새 길잡이 지훈이 적절한 답을 했네요.^^
지훈 말대로 생산력은 그냥 양적인 것이라 무조건 점증한다는 게 아니라
그 자체도 관계고, 관계 속에서 변화한다는 것이 중요하겠죠.
스톡, 잉여가 무의미한 배치에서, 잉여는 불필요하거나 나쁜 것이 되지요.
물론 계획적 통제를 하는 건 아니었을테니, 생산한 게 과잉인 게 있었을 수 있지만
포틀래치는 오히려 그걸 일부러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수 있을 듯 해요.
인류학자 클라스트르는 원시사회에서 국가의 발생을 예견하여
스톡이나 중심화 등 권력화되는 것을 저지했다고 주장하고
들뢰즈/가타리도 이 주장을 적극 받아들여 더 밀고 나갑니다(노마디즘,2권 참조하시길)
사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건, 한국의 민속신앙이나
일본의 신도(민속신앙이 '종교체계화'된 것) 등 어디서나 발견되지요.
하지만 선물의 영 하우는 이와 다르고, 선물 받은 데서 멈추지 않게 하는 기능을 했죠.
제가 사물에 대해 말한 것은, 꼭 이런 건 아니고
인간과 비인간, 생명과 비생명 등을 존재론적 평등성 속에서 보려는 관점과 결부된 것이었는데,
머 이와 연결해도 괜찮을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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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숙
- 생산력은 ... 그 자체도 관계고 관계 속에서 변화한다.
스톡, 잉여가 무의미한 배치에서, 잉여는 불필요하거나 나쁜 것이 된다.
- 원시사회에서 국가의 발생을 예견하여 스톡이나 중심화 등 권력화되는 것을 저지
- 사물은 ... 인간과 비인간, 생명과 비생명 등을 존재론적 평등성 속에서 보려는 관점과 결부
지훈도 선생님도 노마디즘을 언급하시니 언제 저 책을 읽어야 할텐데 생각합니다.
그리고 존재론적 평등성은 존재론적 공동성과 함께 [코뮨주의]의 주제이니 만큼,
철학교실, 이번 시즌의 화두로 삼고 공부해야 겠습니다.
오,, 거의 '후기의 정석'인데요. 읽어보기 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