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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경험한공동체] 흙과 태양을 벗삼아_사이다

이다 2012.06.25 16:06 조회 수 : 2009

사이다입니다:)

게으름을 변명삼아 지난 네팔에 다녀온 글을 옮겨 적습니다

토박이 삶이 가능하지 않은 이 시대에 삶의 전환을 꿈꾸며 긁적이던 것이 생각나서...

 

그리고 한 가지 양해를 구해야 할 게 있어서 말입니다

어렵게 이 강좌를 신청했던 이유는 종종 일요일 세미나를 빠질 게 예상되어 망설였거든요

올 해 초부터 홍성 풀무 전공부를 졸업한 팀과 교사들과 함께 모여 협동조합 방식으로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거든요

생명과 관계한 일이라 일요일 세미나가 뒷전이 될 수 있을 듯 해서 이렇게 송구하지만 양해를 부탁드려요:)

하지만 이렇게 게시판을 통해서 그날 그날 에세이나 쪽글 등은 공유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에 발을 맞추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흙과 태양을 벗 삼아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베란다에 몇 달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스트로폼 박스와 흙 한 부대, 씨앗들을 보고 있다. 궁색하게도 핑계도 없다. 그냥 지치고 피곤할 뿐이다. 언제 할 것인가. 바로 지금이지 않은가. 때를 넘겼다고 그만 두겠는가. 그렇다. 내 삶은 너무나 빈곤하다. 생산이 없다. 피로만 존재한다. 삶을 전환해야 한다는 숙명은 여전히 숙제다. 내 몸은 내 의식을 따라가지 못함을 알았다. 네팔 여성들과 천 평 넘는 감자밭에서 일을 할 때 나는 인내할 줄 모르는, 일을 즐길 수 없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들은 맨발로 곡괭이 하나로 땅을 일구고 바닥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일을 쉬이 하는 것이다. 그들은 따로 쉬지 않는다고 했다. 일하는 게 노는 것이고 노는 게 일하는 것이라 따로 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나는 자꾸 따가운 흙바닥과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으려고 몇 번이고 두리번거릴 뿐이다. 그들은 흙과 태양의 문명을 일구며 뿌리내리고 살아가고 있구나.

토박이 삶

지난 해 성미산학교 고등 10대들은 도시를 읽어보는 작업을 통해 “도시는 죽었다”고 말을 했다. 고유한 장소성을 상실하고 획일화되어가는 도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 거대한 메뚜기 떼 같은 소비문명의 근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을’이 필요하다는 지점에 닿았다. 그런데 우리는 회복하고 복원해야 하는 그 ‘마을’이 무엇인지 모른 채 막연하게 공동체와 생태적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마을성에 대한 삶의 구체성이 우리에겐 없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렸기에 재생해야 할 마을성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마을성의 원형을 찾아 3월 20일부터 4월 30일 대략 40여 일 동안 네팔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처음 네팔 사람들에게 우리가 왜 왔는지를 설명했을 때 네팔 사람들은 너무 멀리 왔다고 했다. 우리는 그 무엇도 잃어버리지 않았으며 찾으려고 한 것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고 했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10시간 넘게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3박 4일 동안 해발 3,500m가 넘는 산을 넘고 흙길을 걸어 도착한 모이델 마을에서 우리는 잊었던 것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토박이 삶이었다. 모이델 마을은 60여 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대대로 그 땅에서 살아 왔다. 오래 농사를 짓고 젖을 짜고 물레를 돌리며 자급자족하고, 자연의 자원들, 나무, 흙, 돌, 물 등은 공공으로 소유하며 함께 집을 짓고 자연이 주는 대로 욕심내지 않으며 필요한 만큼 그때그때 사용하며 수력발전소를 만들어 전기를 나눠 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어떤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마을의 원로들과 함께 자치적으로 해결하고 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모여 삶의 맥락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홈스테이를 했던 집의 할아버지께서 “마을 사람이 되려면 오래 같이 살아야 한다. 오래 살아야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서로 알고 지내려면 일을 함께 해야 한다. 힘든 농사일을 같이 하다보면 그 사람의 존재감을 느끼고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상호의존성, 이것이 우리가 잊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우리 자신이 서로에 대해, 그리고 ‘세계’라 불리는 자연과 인간이 이웃들 하나하나에 대해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을 계속 잊지 않고 살아왔다면 우리도 저들처럼 살고 있지 않았을까.

환대하는 삶

한 아이가 네팔 사람들의 배려와 친절이 고마우나 부담스럽다고 고백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이유와 대가 없는 호의를 받아본 경험이 없어서 그들이 보여주는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난감하다고 했다. 손님을 혼자 내버려두면 안 된다 하여 일어나서 잠에 들기까지 모든 시간을 함께 해주고 배가 부르다 해도 두 세 네 번 밥그릇을 채워주고, 자신들은 귀해 먹지도 않은 음식들을 계속 내오며, 배탈이 나면 많이 아플까 걱정이 되어 화장실 앞에서 기다려주고, 같이 일을 할 때도 앞장서서 미리 해야 할 일들을 먼저 해버리고, 말이 안 통해도 계속 말을 걸고 못 알아채면 웃고, 먼 길 떠난다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는 그 진심들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지 혼란스러워 했다. 그 아이는 그 환대가 소화불량인 채로 남아 프라이버시와 충돌을 일으켰다고 했다. 어디 이 아이뿐이었겠는가. 나 또한 처음에는 이 즐거운 불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리둥절했는데 나도 모르는 순간부터 자연스러워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는 늘 외로움을 느끼며 정을 그리워하면서도 이런 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는 부담을 느끼게 된다. 이 존중받고 싶은 사생활 문화를 우리는 문명인의 예의라고 지키며 살아왔다.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며 다른 관계를 소외시켜왔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공경하는 마음은 세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감적으로 아이들도 점점 그들의 환대에 기꺼이 응하고 있었다. 사람을,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다시 촌스럽게 마을, 공동체, 상호의존성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있었던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도시에서는 혼자 살아가기가 힘들다.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119에 신고하고, 힘들거나 고민이 생기면 온라인 세계 속에서 익명으로 호소하며, 필요한 도움은 대출상담을 통해 해결하며 살 것인가. 그래서 서로 부빌 언덕이 필요하다. 마을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맥락 안에서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며 상관하는 일을 만들어가면서 풍요로운 이야기들을 나누길 기대하게 되었다. 아직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네팔에 다녀오고 나서 나는 뿌리내리는 삶에 대해 희망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마치면 베란다에 씨앗을 심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들에게 의존할 것이다. 같이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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