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이 아름답다.
헤쳐나가기 위해선 하나의 날로 합쳐지는 두개의 곡선이 필요하다. 그래서 칼과 배는 같은 것이다.
난 과잉 혹은 지랄이라는 하나의 아름다운 곡선을 가졌다. 하지만 그것을 팽팽하게 받혀서 앞으로 나아가게 할 대칭의 선을 가지지 못했다. 언젠가 찾을 수 있을까?
어쩜 하나 더 감춰져 있는 과잉을 찾아내 댓구를 맞춰야 하는 것일까? 아무튼 절제같은 쓰레기로 한쪽날을 벼리고 싶진 않다.
그래서 외날의 난 늘 한자리에서 맴맴돈다.
물을 가장 잘 헤쳐나갈 배를 만들고 싶은 것은 맴맴도는 자의 칼날같은 욕망이다. 바람을 자르는 비행기의 대단한 진동과 파도를 가르는 뱃머리의 떨림을 생각한다. 매일을 비스듬이 무디게 잘라내는 내 외날의 과잉도 그 떨림을 닮았다. 반듯하게 잘라내고 싶다. 하루의 척추를 딱 반으로 갈래내고 싶다.
그래도 모로가도 서울로 간다란 심정으로 다시 나선다. 전선에서 이탈한 바람들이 골목마다 험상궂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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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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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수
아 정말 이번주엔 시간이 없어요.. 주말도 엄청 바쁘고.. 아무래도 다음주 일주일 동안 써야할까봐요.. 한샘은 많이 쓰셨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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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란 쓰레기란 말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길...^^;
과잉, 무언가 주어진 한계를 흘러넘치며 변화를 만들어내는 건 좋은데\
흘러넘치기만 하고, 과잉이기만 하면, 가령 예술에서 확연하듯이, 보거나 듣기 힘듭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이나 바그너의 오페라처럼.
과잉한 에너지를 가득 하지만, 그들과 달리 피아니시모의 힘을, 절제의 미덕을 아는 말러는 다르지요.
간결함이 지나치면 들뢰즈처럼 어려워지지만
절제가 없다면 감성적인 것은 감상적인 것이 되기 십상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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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수
아.. 선생님.. 쓰레기같은 글을 맑은 댓글로 닦아주시니 감읍하옵니다. ^^
절제의 그 놀라운 미덕을 어찌 늙어가는 제가 모르겠습니까?
다만 그것을 여적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못난자의 심술이랍니다.
그리하여 마치 제 과잉이 대단한 감성이나 되는 것인양 치장하고 있는 것이죠.
진솔하려는 고백이나 동시에 오만하기 짝이없는 짓거리.. 선생님께 들켜 얼굴 붉어집니다.
하지만 한날이 힘들다면 이대로 가야겠다. 사시미칼의 외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선생님도 잘 아시지만 끌처럼 말입니다.
한쪽날은 평면인 이 칼도 쓰기에 따라선 무척 편리한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평면도 하나의 날이며 반대편 날을 받히고 있는 것이니 그 평면은 무었이냐? 라는 것은 여전히 남는 것이겠죠?
결국 제 말은 말장난이고 장난말이 되는거죠..
모두가 다 아는 것을 정색하시고 실현하시고 실천하시는 선생님 앞에서 고개 숙이고 반성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쓰시겠다는 건지 안 쓰시겠다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