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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철학이 될 때

청인지_노마디즘_에세이

김민수

 

 '철학'이란 것을 공부하면서도 철학은, '철학'이라고, 따음표로 그것을 가둬내지 않으면 곤혹스러운 단어이다. 저것을 올바르게 가둬내지 않으면, 그런 상태에서 문장을 써내면, 그건 방주하는 잉여를 지게 될 테니까. 물론, 모든 문장은 잉여를 갖는다. 그리고 잉여는 총이요, 읽기/듣기는 방아쇠요, 명령어는 발포일테다.  

 '철학'은, 이것을 다루는 이들에게 발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학문이다. 항들이 얼마나 배치가 잘 되었는지, 내가 적절한 랑그에 올라타있는지 점검하는 학문을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최소한, 이런 정의는 '철학'에 확실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명제화된 정의는 따음표를 벗겨낼 수 있다.

 명령어의 발포가, 생명의 고귀함을 알고 있는 자에 의하여 사형수를 겨누는 상황은 철학적이다.  '철학'은, "단어들의 짜임새가 얼마나 장면/영상을 어긋남없이 보여주는가? 또한, 직조된 문장의 타이밍이 시대/공간적 문장들을 불편하게 하진 않나?"하고 자문하는 과정일 수 있다. 끊임없이 손가락질 되는 나와, 금지를 명령하는 목소리들에 얼마간의 교각을 철학과 놓아주기는, 철학이란 공역에 다 이어주진 못할지언정, 충분한 치역들에는 이어지리. 따음표는 가둬진 단어들의 주름이 온전히 펴졌을 때, 필요성을 상실하게 되어 더이상 떠올려지지 않는다.

 

 나는 <노마디즘>을 왜 공부했을까? 작가 김영하는 기행문인 <오래 준비해온 대답>에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여행이유, 그것들의 변천에 대해 썼다. 그는 처음 여행을 떠날 때의 인간은 대개 보편적인 이유를 떠올리며 여행지로 향하지만, 여행지에서야 인간은 자신이 진정 이곳으로 떠나오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고 한다. 노마디즘을 수강한 표면적인 이유, 무례할 수 있음에도 그것은 시간의 따분함이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나의 백수됨됨이를 비추는 거라 생각이 들때즈음 나는 노마디즘을 수강했었다. 

 청인지_<노마디즘>에서 언어를 배웠던 것 같다. 내 머릿속과, 관찰되는 길거리와 사람들을 표현하기에, 언어는 나에게 모호한 안개를 드리우며 문장과 문장사이사이에 블러(blur)처리를 하게끔 했다. 그렇지 않으면 문장이 완성되지 않거나, 문장은 엉뚱한 녀석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그 흐릿함에 명령어, 몰적인선분성, 분자적인 선분성, 그리고 탈주선이 들어설 수 있었다. 나는 기뻤다.

 몰적인 선분성과 분자적인 선분성, 그리고 탈주선. 이 글을 쓰는 도중에 우디쌤이 단톡방에서 몰적인 선분성으로, 소위 '고급진 드립'을 쓰셨다. 공명되는 단톡방. 뭐, 일상생활에서 '공명되는 단톡방'의 기억을 공명되는 단톡방이라 말하진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 아니, 항들과 그배치들에 대해 배움은 즐거웠다. 청인지는 청인지에서 새롭거나 낯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어휘들을 배워갔지 않았을까?

 

 사람은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낯선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피하려는 경향도 있다. 사유는 이것들 둘다 행하는, 어찌보면 굉장히 '피곤한' 행위이다. 그렇지만나는 생물학적 회의론에 매몰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한다. 사유는 힘들다. 피곤하고, 때로는 원만치 못한 인간관계 역시 사유자에게 부여한다. 그렇지만 사유는 인간에게 나무의 나이테를 부여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견뎌낸 나무들만이 촘촘한 나이테를 지닐 수 있다. 사계가 없는 곳의 나무들. 이것들의 나이테는 넓다. 사유자에게 좁혀지는 나이테의 간격이, 그를 견고하게 한다. 나이테가 촘촘할수록 나무가 튼튼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사실 내가 주목하고싶은 것은 강해지는 나무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꺾여지거나 베여진 나뭇고동의 나이테를 보며 한참 서있었던 적이 종종 있어왔다. 나이테를 보며 사유한 건아니였다. 그렇지만 울퉁불퉁 그려가진 촘촘한 간격들은, 어떤 사유의 행간들 보다 치열했다.

 사람은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사회에 비길 바는 못된다. 나는 사회의 전적인 압박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실이 나이테가 나를더욱 붙드는 이유이지 않나. 견뎌낼 수 없는 것들을 견뎌내다 결국 꺾여버린 것들은 종종 나를 뒤흔들기에. 따라서 나는 사계를 버텨낸 흔적 자체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감동을 받았고, 매혹되어왔다.

 

 사유가 '철학'이란 복잡도를 낮추는 과정이라 가정하자. '철학' 복잡도가 일상생활의 층위까지 떨어졌을 때, 그래서 서로 경험하지 못한, 좀더 낯선 것도 일상생활에서 '사유'를 통해 얘기해봄직하게 된다면, 우리는 좀더 안전한 사회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좀더 다양한 감정으로 불운에 맞설 수 있지 않을까. 또, 우리는 좀더 유대할 수 있을지도?

 '철학'이 철학이 될 때, 난 그 순간을 원한다. 이해받을 수 없을 정도로. 그럼에도 그 순간을 원하고, 또 당연히 그 순간으로 부단히 나를 옮겨대는 이유는, 이것이 삶의 양식이 될 가능성을 이미 봐버렸기 때문이다. 과정이 목표가 될 수 있는 삶의 양식. 그러면서도 과정 중간중간에 목표점들을 종종 느낄 수 있어, 무한속에서 비롯되는 갈증에 메마르지 않을 수 있는 삶의 양식. 그리고 좀 뜬금없긴 한데, 강의명도 <노마디즘>이니 유랑에 대해 한줄 적는 것도, 마무리로는나쁘지 않을 것 같다. 방랑이 유랑이 되는 순간은, 그 스스로가 방랑을 선언하는 순간이라, 책제목을 끌어들이며 에세이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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