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미나자료 :: 기획세미나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권력 의지(힘에의 의지): 모든 가치들의 가치전환 실험(모든 가치들을 재평가하려는 시도)

 

제1권. 유럽의 니힐리즘: 1장. 니힐리즘

 

[ 머리말 ] 니힐리즘(허무주의)의 도래: 왜 니힐리즘의 도래가 불가피한가?

-니힐리즘이 우리가 지금까지 위대하게 여겨왔던 가치들과 이상들의 논리적 결론.

-“가치들”이 진정으로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니힐리즘을 반드시 경험해야 함.

-우리는 조만간 ‘새로운 가치들’을 필요로 할 것임.

 

1. 니힐리즘의 의미: 그것은 지금까지 세상을 지배해 온, 존재에 대한 평가와 해석의 산물 

-최고의 가치들이 스스로 평가 절하하는 것. 거기엔 목표가 없음. “왜?”라는 물음이 전혀 아무런 대답을 얻지 못하기 때문임.

-근본적인 니힐리즘, 사람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가치들이 존재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함을 확신함. 더불어 내세(來世)나 물 자체(物 自體)같은 것을 가정할 권리가 인간에게 전혀 없다는 깨달음. 이 깨달음은 도덕을 믿어온 결과임
→ 도덕에 의해 배양된 정직성이 도덕에 반기를 들고 도덕의 목적과 편향적인 관점을 발견함. 사람들이 탈피하기를 단념했던 뿌리 깊은 허위를 인식함.

-(기독교) 도덕은 실천적 및 이론적 니힐리즘에 맞서는 중요한 방어 수단이었음.

→ 페시미즘은 예비적 형식의 니힐리즘. 페시미즘의 논리가 최종적으로 니힐리즘까지 이어짐.
→ 도덕적 가치 평가는 유죄 판결이고 부정(否定)이며, 도덕은 생존 의지의 포기임.

*우주론적 가치들의 쇠퇴: 심리적 상태로서의 니힐리즘은 여러 가지 형식

-1) 우리가 모든 사건에서 있지도 않은 “의미”를 추구했을 때, 그래서 우리가 결과적으로 낙담하게 될 때, 니힐리즘의 상태에 이름. 생성(生成)은 아무것도 목표로 잡지 않으며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음.

-2) 인간은 무한히 소중한 것으로 여겨지는 전체성이 개인에게 전혀 작동하지 않을 경우, 정말 엉뚱하게도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 됨.

-3) 어떠한 목표도, 장엄한 전체성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생성의 전체 세계를 기만이라고 판결하고 그 세계 너머에 진정한 어떤 세계를 발명하고자 시도함. 그 세계가 순전히 인간의 심리적 필요에 의해서 위조되었다는 것과 인간이 그 세계에 어떠한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음.

→ 형이상학적 세계, 진정한 세계에 대한 불신. 이 같은 관점을 갖기에 이르면, 사람은 생성의 현실을 유일한 현실로 인정하고, 자기 자신에게 사후 세계와 거짓 신에 대한 어떠한 은밀한 접근도 허용하지 않음. 그러나 사람은 이 생성의 세상을 거부하려 하지 않는데도 그 세상을 견뎌내지 못함.

* 근본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존재의 전반적인 성격이 “목표” 개념이나 “전체성” 개념, 혹은 “진리” 개념으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일어나면서 무가치의 감정이 생겨남. → 우리는 어떤 가치를 세상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용했던 목표나 전체성, 존재 같은 범주들을 다시 배제시키므로 세상이 무가치하게 보임.

이 세 가지 범주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그 원천은?

-우리가 이 세 가지 범주들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면 그것들을 우주에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이상 우주를 평가 절하하는 원인이 될 수 없음.

-이성의 범주들에 대한 믿음이 니힐리즘의 원인. 우리는 세상의 가치를 그야말로 허구적인 세상을 표현하고 있는 범주들에 따라 측정해왔음.

-순수하게 도덕적인 가치 체계는 예외 없이 니힐리즘으로 끝남. → 신을 포기한 사람은 도덕에 대한 믿음에 그만큼 더 강하게 집착함.

* 니힐리즘의 원인

-“무엇을 위해서?”라는, 니힐리즘이 제기하는 질문은 목표라는 것은 외부에서, 어떤 초인적인 권위가 제시하는 것이라고 전제해 온 오랜 습관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

-양심(도덕)이라는 권위가 인격을 갖췄던 권위(신학)의 상실을 보상하기 위해 전면으로 나섬.

-사람은 의지를, 어떤 목표를 의도하는 것을, 스스로 어떤 목표를 설정하는 위험을 피하기를 원하며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함.

* 니힐리즘의 두 가지 뜻: 능동적 니힐리즘 vs 수동적 니힐리즘

-1)증대된 정신의 힘을 보여주는 신호로서의 니힐리즘 → 능동적인 니힐리즘

-2)정신적 힘의 후퇴와 쇠퇴를 보여주는 신호로서의 니힐리즘 → 지친, 수동적인 니힐리즘.

→ 정상적인 상태로서의 니힐리즘은 힘의 신호일 수 있음. 정신이 너무 강하게 성장하여 이전의 목표들이 부적절해짐.
반대로 수동적 니힐리즘은 자기 스스로 어떤 목표나 이유, 신앙을 생산적으로 설정하는 힘을 결여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음.

 

2. 니힐리즘의 추가 원인들​

-높은 유형들의 쇠퇴와 불안. 천재들을 상대로 한 투쟁. 낮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이 그만 영혼의 높이를 재는 척도가 되어버림. → 우리는 불완전한 니힐리즘 속에서 살고 있음.

-자기 마취: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깊이 침잠하는 것. 공허감을 극복하려는 시도의 결과 의지가 약해짐.

-공동체의 가치 본능들(공동체의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이 신격화되고 높은 인간들과 저급한 인간들을 분리하고 차이를 만들어 내려는 욕망들이 중상에 시달리고 있음. 그 결과, 인간의 왜소화, 고통에 대한 민감성, 불안, 경솔, 부정 수단 동원 등이 심화됨. → 현대의 페시미즘은 현대 세계의 무용성(無用性)을 표현하고 있을 뿐, 존재와 세상의 무용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님.

- 건강한 부류의 인간은 모두 삶의 가치를 고통이나 쾌락이라는 사소한 것들을 기준으로 측정하지 않음. → “감상적이어서 지루한 인간보다는 즐거운 괴물이 월등히 낫다.”

페시미즘에서 니힐리즘으로: 페시미즘, 가치들에서 자연스러운 특성을 제거하는 것임. → 지배하고 이끄는 행동 대신에, 초연하고 이상주의적인 가치들이 행동에 반대하고 행동을 비판함.

 

3. 쇠퇴의 한 표현으로서의 니힐리즘 운동​

* 쇠퇴: 니힐리즘은 절대로 원인이 아니며 단순히 쇠퇴의 논리적 결과

-쓰레기와 부패, 폐지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의 성장에 따른 당연한 결과임.

-쇠퇴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고 있음.

-맹렬히 맞서 싸워야 할 것은 유기체의 건강한 부분까지 전염시키는 현상. 이런 전염을 막을 조치가 취해지고 있지 못함. → ‘인간애’라는 이름으로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

- 쇠퇴의 일반적인 유형들: 치료책을 선택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실제로는 소진을 재촉할 것을 선택, 자극에 저항할 힘을 상실하고, 사건들에 휘둘림,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는 그런 상태를 갈망함.

* 소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는 모든 것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망쳐놓음

-소진한 사람들은 가치를 축소시키는 해로운 존재임. 생명력이 빈약한 사람들, 즉 약자들은 생명을 약화시키고, 생명력이 풍부한 사람들, 즉 강한 사람들은 생명을 풍요롭게 함. 그런데 이 두 부류를 혼동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 부패의 상태: 모든 형태의 부패의 상호 관계를 이해하기

-기독교 형태의 부패, 사회주의자 및 공산주의자의 부패, 생성의 세계(실제의 세계) 그 밖에 또 다른 존재의 세계가 있다고 여기는 초경험적인 세계라는 부패 등이 있음. 어떠한 타협도 허용되지 않으며 온갖 가면을 쓰고 있는 기독교 가치들과 맞서 싸워야 함.

* 인간이 도덕적으로나 생리적으로 타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주권자가 된 권력인 군집 본능은 귀족 사회의 본능과 완전히 다른 그 무엇임. 군집에서는 모든 제로가 “평등권”을 누리며, 제로가 되는 것이 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짐.

-전쟁보다 평화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가치 평가는 반(反) 생물학이며, 그 자체로 생명이 쇠퇴한 결과임. → 생명은 전쟁의 결과이며, 사회 자체는 전쟁을 치르는 수단임.

-약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소진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노’라고 말하고 강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힘을 축적시키는 모든 것에, 힘의 감정을 정당화하는 모든 것에 ‘예스’라고 말하라고 가르쳐야 함.

-동정은 모든 악덕보다 위험함. → 약한 자에게 “사라져!”라고 명령하는 숙명을 존중해야 함.

 

4. 위기: 니힐리즘과 회귀사상​

- 존재에 따른 고통이 이전보다 더 커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고통의 “의미”를, 존재의 “의미”를 불신하게 되었기 때문에 니힐리즘이 등장하게 됨. 한 가지 해석이 전복되었으나 그것이 유일한 해석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지금 마치 존재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모든 것이 헛된 것처럼 보임.

-끝이나 목표가 없는 “헛된” 지속이야말로 사람을 가장 무기력하게 만드는 개념임. → 존재 자체가 의미나 목적을 갖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非) 실재라는 최종적 결말 없이 불가피하게 다시 순환하는 것, “영원 회귀”. 이것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니힐리즘. 영원히, 영원히 무라니!

-삶 자체가 권력 의지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삶에는 권력의 크기를 제외하고는 가치를 지니는 것이 전혀 없음. 약한 자에게 위안을 주는 도덕에 대한 믿음이 파괴되었다고 가정하다면, 체질적으로 구성이 좋지 않은 자와 실패한 자들은 더 이상 위안을 얻지 못할 것이고 그러다 결국 사라질 것임.

-새롭게 확립된 질서 속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로 입증할 사람은 어떤 계급의 사람일까? 극단적인 형식의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아주 온건한 사람. 극도의 슬픔도 견뎌낼 수 있고, 따라서 슬픔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대단히 건강한 사람. 말하자면, 자신의 힘을 확신하고, 인간이 이룬 강한 상태를 의식적으로 긍지를 갖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임. 그런 사람은 영원회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2북클럽자본 :: 자유의 파토스,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1] oracle 2022.12.22 205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0니체세미나 :: 비극의 파토스, 디오니소스 찬가 [2] oracle 2020.12.21 377
공지 [에세이자료집] 2019니체세미나 :: 더 아름답게! 거리의 파토스 [2] oracle 2019.12.19 683
1021 기획세미나 <신유물론에서 사이버 네틱스까지> 제 2강 발제 file 초보(신정수) 2023.07.18 74
1020 [청인지16] 에세이 프로포절: 타이탄과 난민과 니체 부끄쟁이 2023.06.23 87
1019 [청인지16 에세이] 무관심을 옹호하는 문헌학과 후배의 편지 file 노은석 2023.06.23 73
1018 [청인지16 에세이]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file 진세. 2023.06.23 58
1017 가벼워진 아이의 눈으로 세상보기. antique623 2023.06.23 63
1016 [청인지 16 에세이] 내가 이해한 니체 file 네오 2023.06.23 88
1015 [청인지 16 에세이] 솔리스트를 꿈꾸며 file 정추기 2023.06.23 71
1014 [청인지16 에세이 프로포절] 힘의 방향전환: 강자의 사유 문성희 2023.06.18 60
1013 [청인지 16 에세이 프로포절] 정돈된 삶에 저항하기: 관성과 중력 앞에서 file 희옥 2023.06.17 68
1012 [청인지16] 에세이 프로포절-선악의 저편 로고스의 직조 2023.06.16 66
1011 [청인지 16 에세이 프로포절] 무심함을 옹호하는 문헌학과 후배의 편지 [1] file 노은석 2023.06.16 65
1010 [청인지 16] 에세이 프로포절 네오 2023.06.16 54
1009 [청인지16] 9주차 발제 『선악의 저편』9장 file 로고스의 직조 2023.06.16 37
1008 [청인지 16 에세이 프로포절] 가벼워진 아이의 눈으로 세상보기. 홍지연 2023.06.16 47
1007 [청인지 16 에세이 프로포절] 솔리스트를 꿈꾸며 file 정추기 2023.06.16 50
1006 [청인지16] 선악의 저편 후기 [1] 부끄쟁이 2023.06.09 81
1005 [청인지16] 8주차 발제 『선악의 저편』 8장 file 문성희 2023.06.09 52
1004 [청인지16] 8주차 발제 『선악의 저편』 7장 file 네오 2023.06.08 42
1003 [청인지16] 7주차 발제 『선악의 저편』 5장 file 기헌 2023.06.02 44
1002 [청인지16] 7주차 발제 『선악의 저편』 6장 file 낙타 2023.06.02 37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