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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계보] 제1논문 6-16절

정웅빈 2020.03.16 16:01 조회 수 : 27748

<도덕의 계보> 제1논문 6-17절. 20.3.16 정웅빈

*각 아포리즘에 대한 제목은, 핵심 내용을 이해한 바에 따라 임의로 작성하였습니다.

 

6. 성직자의 가치 평가 방식

성직자적 귀족주의에는 항상 행동을 기피하고 침울하며, 감정을 폭발하는 습관으로 인해 내장질환과 신경쇠약증이 나타난다. 이러한 질병에 대한 치료제로써 육식 금지, 단식, 성적 금욕, 감각에 적대적이고 나태하게 만드는 성직자들의 형이상학과 불교도의 허무(신과의 합일을 갈망)으로 인해 인류는 병들게 되었으며, 다른 짐승과는 구분되었다.

 

 

7. 성직자적 가치 평가 대 귀족적 가치 평가

기사적이고 귀족적인 가치 평가 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강한 몸과 생기 넘치고 풍요롭고 스스로 억제할 길 없이 넘쳐나는 건강 그리고 그것을 보전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 전쟁, 모험, 사냥, 춤, 결투놀이와 강하고 자유로우며 쾌활한 행동을 함축하고 있는 모든 것이다.” 반면에 성직자들에게 전쟁은 나쁜 것이며, “왜냐하면 그들은 가장 무력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력함은 귀족(좋은 = 고귀한 = 강력한 = 아름다운 = 행복한 = 신의 사랑을 받는, 즉 자기 스스로를 긍정하는)에 대해 증오와 복수심을 갖고 이를 정신적으로 ‘전도’하고자 한다.

 

“비참한 자만이 오직 착한 자다. 가난한 자, 무력한 자, 비천한 자만이 오직 착한 자다. 고통받는 자, 궁핍한 자, 병든 자, 추한 자 또한 유일하게 경건한 자이며 신에 귀의한 자이고, 오직 그들에게만 축복이 있다. - 이에 대해 그대, 그대 고귀하고 강력한 자들, 그대들은 영원히 사악한 자, 잔인한 자, 음란한 자, 탐욕스러운 자, 무신론자이며, 그대들이야말로 또한 영원히 축복받지 못할 자, 저주받을 자, 망할 자가 될 것이다!”

 

유대인과 더불어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귀족적 가치의 전도)이 시작된다. <선악의 저편>, 195절.

 

 

8. 위대한 복수 정책

유대인의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은 예수(구세주)라는 우회로를 통해서 완성되었다. “복수와 증오, 유대적 증오의- 그와 같은 것이 지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즉 이상을 창조하고 가치를 재창조하는 가장 깊고, 숭고한 증오의- 저 나무 줄기에서 그와 비교할 수 없는 것, 새로운 사랑이, 가장 깊이 있고 숭고한 종류의 사랑이 자라났던 것이다. [..] 그러나 그 사랑은 복수를 향한 저 갈증을 본래 부정하는 것으로, 유대적 증오의 대립물로 솟아오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9. “십자가에 매달린 신이라는 기호 아래 이스라엘이 모든 가치를 전도함으로써, 고귀한 이상을 누르고 다시 승리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니체와 어느 민주주의자는 어떻게 다르게 평가하는가?

 

 

 

10. 두 개의 가치 평가 방식

노예들의 독창성은, 이들의 가치평가가 원한에서 비롯된다는 점에 있다. 그들의 무력감으로부터 생겨난 원한은, “가치를 설정하는 시선”을 항상 외부로 향하게 한다. 그렇게 외부로 향한 이들의 시선은 항상 이들 ‘밖에 있는 것’, ‘다른 것’, ‘자기가 아닌 것’을 부정한다. 이들은 적을, ‘악한’을 저주하고 이와는 대립된 ‘선한’ 자신을 창조해 낸다. 따라서 “노예 도덕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먼저 대립하는 어떤 세계와 외부 세계가 필요하다.” 이처럼 노예들은 행동하는 대신에 상상의 복수만을 통해 반응한다. 이들의 행복은 마취, 마비, 안정, 평화 등과 같은 ‘수동적인 것’이다.

반면에 귀족들의, 고귀한, 가치를 평가하는 시선은 항상 내부를 향하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우리 고귀한 자, 우리 선한 자, 우리 아름다운 자, 우리 행복한 자!”라고 말한다. 이들은 평민을 동정할지언정 외부에 대해 복수심과 원한은 갖지 않는다. 이들은 망각하는 힘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행동하는 자들로서, 행복을 “잘 행동”하는 것에서 찾는다.

 

 

11-12. 나쁨과 악함, 노예 도덕으로써 문화

결국 나쁨과 악함의 차이는, 즉 ‘나쁨’은 좋음의 부산물로써 ‘좋음’을 보다 긍정하고 강화하기 위해 생겨난 것인 반면에, ‘악함’은 선함이 생겨나기 위한 조건으로써, 자극으로써 존재하며 ‘선한’ 자신들을 창조해내기 위해서 선행되어야만 하는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노예의 도덕은 문화를 수단으로 삼아 “‘인간’이라는 맹수를 온순하고 개화된 동물, 즉 가축으로 길들”이고자 한다. 문화를 통해 더 이상 “고삐 풀린 맹수”가 될 수 없었던 인간들은 이제 두려움의 존재 대신에, 평범하고 평균적인, 왜소한, 그러나 스스로를 ‘보다 높은 ’인간’으로 여기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지만 대신 이때 덜된 자, 왜소한 자, 쇠약해진 자, 중독된 자의 구역질 나는 모습에서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다면, 동시에 경탄하면서 두려움을 맛보는 것이 오히려 백 배 더 낫지 않을까?” “오늘날 우리는 좀 더 위대해지려는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한다.”

 

 

13. 행위의 행위

노예의 도덕은 어린 양의 도덕에 불과하다. 어린 양들의 관점에서 맹금은 악한이요, 우리 ‘선한’ 어린 양들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자들이다. 맹금은 그러한 악한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 어린 양들은 맹금과 같이 그러한 악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악한 자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으로써,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복수는, 신에게 맡기도록 하자. 우리는 남들을 억압하고 지배하지 않는, 선하고 정의로운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린 양들의 논리는 ‘주체’라는 미신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사고라는 것은 하나의 활동이며, 모든 활동에는 활동하는 하나의 주체가 있다.” 그러나 “하나의 사상은 ‘그 사상’이 원할 때 오는 것이지, ‘내’가 원할 때 오는 것이 아니다.” <선악의 저편>, 1장 17절)

 

그러나 번개는 그저 번개 그 자체로써, 섬광과 함께 나타나고 표현되는 것이지, 번개를 치는 섬광이라는 주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번개가 친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그것은 마치 “활동이 활동(작용)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맹금은 어린 양들을 채어가는 행위(또는 힘) 그 자체로써 존재하고 표현되는 것이지, 맹금이라는 행위의 ‘주체’와 그러한 (‘악한’) 행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맹금은 어린 양들을 채어가는 행위 그 자체인 것이다.(“일정량의 힘이란 바로 그와 같은 양의 충동, 의지, 작용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체에 대한 미신으로부터 ‘책임’에 대한 개념 또한 나타난다. 맹금은 그러한 악한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악한 자들이고, 그러므로 그러한 행위에 대한 책임으로써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 어린 양들은 맹금과 같이 그러한 악한 행위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남들을 억압하고 지배하지 않는 선한 자들이므로, 복수는 신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약한 자들의 무력감, 그로 인한 원한, 그리고 주체의 미신으로 인해 생겨난 노예 도덕에 불과하다. 노예 도덕에서 무력감은 ‘선’과 ‘정의’라는 미덕의 “화려한 의상”을 입게 되었다.

 

 

14-15. 최후의 심판-원한과 복수

노예 도덕에서 “보복하지 않는” 무력감이 곧 ‘선’이 되었던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약함을 ‘공적’으로 “제조”한다. 복종은 곧 순종이 되며, 비겁함과 나약함은 ‘인내’가 되고, 복수할 수 없음은 곧 용서가 된다. 이들은 “준비, 시련, 훈련” 속에서 살아가며, 언젠가는 이뤄질 보상을, 즉 신의 ‘축복’을 희망하면서 살아간다. 그들은 그러한 “상상의 복수”를 절대 ‘보복’이라 부르지 않고 “정의의 승리”, “정의로운 신의 승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들 약자들- 그들 역시 언젠가는 강자가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의 나라’가 필요하고, ‘신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영원한 생명이 필요하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축복’이란, 그들의 무력감과 원한에 대한 반응으로써 “상상의 복수”일 뿐이다. 이를 토마스 아퀴나스가 우리에게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있는 축복 받은 사람들은 저주받은 자들이 벌 받는 것을 보고, 그것으로 해서 자신들의 축복을 더욱 기쁘게 여기리라.”

 

 

16. 로마 대 유대, 유대 대 로마

수천 년간 지속되온 ‘좋음과 나쁨’,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대립되는 가치는 로마 대 유대를 상징한다. "르네상스에서 고전적 이상과 고귀한 가치평가 방식이 부흥했으나, 로마 자체는 유대화된 로마의 압력 아래 가사상태에서 깨어난 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나 유대는 종교개혁과 프랑스혁명이라는 천민적인 원한운동 덕분에 다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 그것이 진행되던 와중에 실로 엄청난 사건,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다수의 특권이라는 원한의 낡아빠진 허위적 구호에 대해서, 인간을 저열하게 만들며 평균화시키고 몰락으로 가져가는 의지에 대해서, 소수의 특권이라는 무섭고도 매혹적인 반대구호가 강력하게 울려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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