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미나자료 :: 기획세미나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인권! 인권?

 

1_이국종.jpg

[도1] 국민일보, 이국종 “JSA 귀순 병사 ‘기생충’ 엄청나…한국선 보기 드문 증세”, 2017-11-15

 

“이런 환자는 처음입니다”. 2017년, 귀순 북한군 병사의 수술을 집도한 이국종교수는 북한 일반의 위생상태를 암시했습니다. 브리핑 과정에서 그는 병사의 몸에서 발견된 기생충을 자세히 묘사했고, 언론은 이 내용을 대서특필하면서 ‘북한주민들’의 몸 속을 특정한 이미지로 고정했습니다. 정의당의 김종대 의원은 이국종 교수의 브리핑이 귀순 병사의 인권에 반할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고착된 상상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제기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의인인 이국종 교수를 “쓸데없는 트집”으로 피로케 했다는 비난을 받았지요. 이러한 발화의 이면에는 이른바 ‘인권 감수성’의 본질적인 속성이 숨어있습니다. 한편, 이미지 정치의 절차를 생각한다면, 한 국가의 정규군의 몸 속에 들끓는 기생충을 선전하는 것은 이데올로기 장치입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쓸데없는 트집이 아니지요.

 

2_바바라 크루거.jpg

[도2]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무제, 1989

 

나는 이 시대의 윤리인 인권의 윤리가 얼마나 선별적으로 적용되는지를 생각합니다. 2018년, 홍대 미대에서 남성 모델을 불법촬영해 유포한 여성이 체포되고, 포토라인에 서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며칠이었습니다. 소라넷은 형식적으로나마 폐쇄되는 데에 17년이 걸렸습니다. 아무도 포토라인에 서지 않았습니다. 나는 중동의 전쟁에서 죽어나간 백인 미군의 가벼운 상처조차 본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지가 절단된 시리아인과 머리가 으깨진 팔레스타인인은 실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9.11 당시, 언론 보도에서 금기였던 것은 테러를 당한 미국인의 죽은(혹은 다친) 몸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미국의 복수는 적들을 처단하는 장면을 생중계했습니다. 이 장면에는 ‘외과수술식 타격’이라는 기만적인 이름의 라벨이 붙어있었습니다.

 

3_파키스탄 미란샤학교.jpg

[도3] 파키스탄 미란샤(Miranshah)의 학교, 드론 공습 전/후의 항공사진, 2013

 

드론이 투입되고 있는 중동의 전장을 생각합니다. 유엔인권이사회(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 UNHRC)는 전쟁범죄를 막기위해 전쟁수행과정을 조사합니다. 유엔의 조사는 항공사진을 활용하는데-이 조사 역시 드론을 이용합니다-, 이 이미지에서 하나의 픽셀은 조망 시의 휴먼 스케일로서 50cm²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전쟁에 투입된 드론이 남기는 탄흔은 4cm²에 불과합니다. 드론 공습에 사용되는 무기들은 4cm²의 탄흔을 남기고 건물 내부에서 폭발합니다. 따라서 유엔조사가 활용하는 항공사진은 드론 공습 전/후의 변화를 전혀 기입하지 못합니다.

인권의 윤리가 폭력의 근본 계기를 겨냥할 수 있을까요? 이 물음은 정치철학의 주요 쟁점 중 하나입니다. 한쪽은 인권의 윤리를 시민행동의 교두보로 평가하고, 다른 한쪽은 해방정치의 걸림돌로 평가합니다. 결국 이 질문은 “인권의 범주를 재정치화할 수 있는가”로 다시 적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됐든 우리가 이 어휘, ‘인권’을 단순한 사회학적 용어 목록 중 하나로 읽는다면, 현행화의 계기가 마련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니체의 철학을 ‘이기적’이라고 말할 때, 그 의미가 얄팍한 자기계발서나 대중교양서에서 말하는 용어법과 구별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코뮨적 개인에게 ‘이기적인’ 행위는 사회학 교과서의 삽화가 보여주는 이기/이타의 이분법적 세계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의 토론이 퇴행하는 지점은 관습적인 언어와 용어법의 영역에 머물 때일 것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인권’이라는 어휘를 둘러싼 역사의 무대에는 지정학적 질서, 성차, 자본의 논리가 개입합니다. “도덕은 역사적 형성물”입니다. 문헌학자로서 우리는 이 시대 가장 완고한 도덕률인 인권의 윤리를 재검토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힘에의 의지를 따라 이 도덕의 범주를 현행화할 것을 요청 받습니다. 역사적 형성물로서 도덕에는 언어의 공백, 법의 바깥이 존재합니다. 가령, 흑인민권 운동이 출현하기 전에 그들은 법 밖에서 모욕을 겪으며 서있었고, 그들의 권리와 관계된 언어는 부재했습니다. 우리는 법 밖에서 출발하여 특정적인 도덕이 언어의 공백을 직면하도록 강제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2북클럽자본 :: 자유의 파토스,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1] oracle 2022.12.22 211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0니체세미나 :: 비극의 파토스, 디오니소스 찬가 [2] oracle 2020.12.21 383
공지 [에세이자료집] 2019니체세미나 :: 더 아름답게! 거리의 파토스 [2] oracle 2019.12.19 690
1036 [신유물론에서 사이버네틱스까지] 신유물론의 패러다임 8장 발제문 file 이희옥 2023.09.06 84
1035 [신유물론에서 사이버네틱스까지] 신유물론 패러다임 10장 발제(약간수정) EJkim 2023.09.06 40
1034 [신유물론에서 사이버네틱스까지] 신유물론 패러다임 9장 발제 EJKim 2023.09.06 36
1033 [신유물론에서 사이버네틱스까지] 신유물론 패러다임 11장 발제 샤크 2023.09.06 48
1032 [신유물론에서 사이버네틱스까지] 신유물론 패러다임 2장 발제 이민형 2023.08.30 34
1031 [신유물론에서 사이버네틱스까지] 신유물론 패러다임 7장 발제 Siri 2023.08.30 33
1030 [신유물론에서 사이버네틱스까지] 신유물론 패러다임 6장 발제 file teapond 2023.08.30 53
1029 [신유물론에서 사이버네틱스까지] 『신유물론의 패러다임』 3장 발제문 file 이희옥 2023.08.23 56
1028 [신유물론-존재론, 행위자 그리고 정치학] 1장 발제문 이랑집사 2023.08.16 67
1027 [신유물론에서 사이버네틱스까지] 신유물론 서론 발제 박수 2023.08.09 62
1026 [신유물론에서 사이버네틱스까지] 결론 발제 file 이재훈 2023.08.02 65
1025 신유뮬론 4강 발제문 - 철학이란 무엇인가, 6장 전망과 개념들 file 이현주 2023.08.02 54
1024 신유물론은 주체의 실종을 이야기하는가? [15] 우주영웅 2023.07.26 358
1023 신유물론에서 사이버네틱스까지 - 철학이란 무엇인가 4장 발제 myunghwa 2023.07.26 64
1022 신유물론_ 사이버네틱스 시즌1 3장 개념적 인물들 손현숙 2023.07.19 84
1021 기획세미나 <신유물론에서 사이버 네틱스까지> 제 2강 발제 file 초보(신정수) 2023.07.18 74
1020 [청인지16] 에세이 프로포절: 타이탄과 난민과 니체 부끄쟁이 2023.06.23 87
1019 [청인지16 에세이] 무관심을 옹호하는 문헌학과 후배의 편지 file 노은석 2023.06.23 73
1018 [청인지16 에세이]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file 진세. 2023.06.23 58
1017 가벼워진 아이의 눈으로 세상보기. antique623 2023.06.23 63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