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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_후기] 아침놀_조성연

ssk07040 2019.06.28 00:42 조회 수 : 110

존경하는 귀하에게,

귀하의 글은 감옥에 갇혀있는 제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자신의 감각과 가치관에 의지해 제 주위에 벽을 자발적으로 쌓아 올리고 시감각의 좁은 창틀 사이로 세상을 염탐하였던 비루했던 나날들은 당신의 집요한 공격으로 인해 피살되어가고 있습니다. 잘 알지 못했던 시절, 그저 당신을 기독교적 담론의 파괴자 정도로 여겼던 저는 그대를 기꺼이 나의 감옥 속으로 환영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총구는 비단 기독교만이 아닌 정의, 양심, 도덕, 아니 인간 지성 전반을 향하였음을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연히 그대의 총알은 방심한 제 가치관념을 관통하였고, 지금까지 믿어 의심치 않은 제 주변의 벽과 기둥들은 한 순간에 그 빛을 바랬습니다. 지금껏 믿어왔던 도덕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저는 질문하지 않았고, 질문하지 않음으로써 도덕의 “윤리적 의의”를 져버리지 않으려 암묵적으로 노력하였습니다. 도덕은 부모님이, 학교가, 사회가 알려준 인간만의 우월한 풍습이었고, 이를 지키지 않는 인간들을 볼 때마다 도덕에 대한 신앙심을 키워만 갔습니다.

고백합니다. 스스로를 진보적이라 자부하고, 다윈의 진화론을 거부하는 기독교인에 대한 적대심을 기르며 인간의 생물학적 우월성을 비웃고 지탄했던 저는, 차마 인류의 이성적 우월감까지는 져버리지 못하였습니다. 도덕의, 나의 수치스러운 기원을 캐묻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이 100년도 전에 깨닫고 수치스러워했던 사실을 저는 지금까지도 품어왔던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선의 원리라는 너무나도 불손하고 위험한 착각을 20년간 해왔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대의 글들은 제게 두려움을 안겨줍니다. 그대의 말들은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고 정확하여 제게 비수와 같이 꽂히지만, 동시에 제가 서있던 지반을 예고 없이 허물어뜨려 저를 넘어트립니다. 도덕과 윤리라는 제 주변을 이루고 있던 강하디 강한 신념은 당신의 질문과 공격들에 의해 힘 없이 무너져 내리고, 제가 장자(莊子)라도 된 냥 달콤했던 꿈에서 저를 거칠게 깨웁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대는 무너져 내린 지반 위 새롭고 보다 더 단단한 기반을 깔아주었습니다. 이이(李珥) 선생 말마따나, 도덕 관념의 “창업(創業)”이 가장 쉬었고, 윤리의식과 제 도덕감정으로써 어렵게나마 “수성(守成)” 해온 제 낡고 보잘것없는 가치관을 그대가 비로소 “경장(更張)”해주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지금까지의 편견과 편협한 시선을 돌려 제가 지금껏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도덕의 지침들과 도덕의 목표와 정의를 의심하고 그 속의 저의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당신은 제게 양도해주었습니다. 지침과도 같았던 도덕은 제 의심과 함께 다시금 저만의 규정으로써 자리잡을 수 있었고 신앙으로써의 도덕이 아닌, 글로써 형용해낼 수 없는, 무언의 충동으로써의 도덕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이 바뀜을 도저히 표현해내거나 타인에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 바뀜으로 인해서 이전과는 달리 행동하거나 믿는다기보다는 예전의 행동을 장려하되 그 주체가 비로소 제가 된 것과 같은 어렴풋한 쾌의 감정이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만, 아직까지도 이 새롭고 신선한 감정이 저는 어색하고 우려스럽습니다. 당신이 힘의 감정이라 칭한 감정이 이전의 도덕감정을 깨부수고 제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 같습니다. 당신의 글을, 단어 하나 하나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제 감정은 기복하고 우월감이 샘솟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월감은 저를 혼란에 빠트립니다. 이전의 인간으로서의 우월감을 갓 솎아낸 저로써는 이 새로운 형식의 쾌감이 경계의 대상일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의 고통과 고문으로부터 오는 힘의 감정은 제가 지금껏 사용해 왔던 도덕의 언어로써는 너무나도 이질적이라 계속해서 무너져 내린 제 도덕 감정을 돌아보게 합니다. 당신의 말처럼 저는 제가 더 이상 믿지 않는 교설들에서 여전히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계속해서 활개치는 제 속의 충동들과 감정들을 더 이상은 억제하려 노력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도움으로 겨우 알게 된 제 주변의 감옥에서 탈옥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뒷길도 샛길도 허용되지 않았다지만 감옥의 바닥을 파고 파서 끝없이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면, 언젠가는 내일의 아침놀을 맞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치 138년전 그대가 그러했듯이.

 

귀하를 존경하는 한 젊은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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