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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초인이 될 수 있는가?

[서론]
1.나는 왜 니체를 읽게 되었는가?
(변화에 대한 의지 , 나를 넘어서는 초인이 되고 싶었던 마음)

1)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
본성이나 팔자 따위의 말들을 우리는 흔히 하고는 한다.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라든지, ‘팔자대로 사는구만’ 하는 말들 속에는 
인간은 정해진 운명의 큰 틀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를 규정짓는 시선들이 들어있다.
이런 말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인간군상들을 실험군으로 하여 일종의 확률로써 토대를 단단히했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다는 말은 어쩌면 그 인간에 대한 
정언명령처럼  그들을 쉽게 운명에 순응 하거나 굴복하게 만들고 말았다.
여기에서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다르게 얘기하자면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니만큼 그것은 엄청난 노력과 
열정을 쏟아붓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2)나는 왜 니체를 읽게 되었는가?
사실 딱히 니체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시점에 우연히 수유너머를 알게되었고 마침 그때 시작하던 세미나가 니체였던 것이다.
세미나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나는, 반복되는 내 일상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고,
떄때로 스스로에 대한 구토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던 시점이었다. 나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아니 변화라기 보다는
나를 없애고 새로 태어나고 싶었다는 말이 맞을 듯 싶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변태를 해야했다.
기존의 나를 바꾸고 새롭게 탈바꿈해야 했다.
이후에 들뢰즈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아장스망에 대한 개념을 알게 되었는데,
그 내용에 따르자면, 일상의 재배치 없이 내 삶이 변하길 바라는 건 일종의 정신병이자 망상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삶의 배치를 바꾸자. 그러면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을까? 그것이 내가 니체세미나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고 니체를 읽게 된 이유였다.

주역에는 이런 말이 있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
나는 궁해있었고 변하고 싶었다.
나와의 싸움에서 항상 지고말았기에, 자기극복을 해보고 싶었다.
어린시절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고전을 완독하면 성취감이 있지 않을까? 뿌듯함이 생기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얻어걸리는 것이 하나라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세미나를 처음 들었던 시점에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였기에 ,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니체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줄것인가?


2.니체가 말하는 초인(위버멘쉬)이란?

선악의 저편 니체에 대한 소개란에도 나와있듯이 니체는 마지막 10년을 미친 상태로 보냈다고 한다. 과연 책 내용도 그에 걸맞는 듯 싶었다.
미친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사람이 어느 임계점을 넘으면 미칠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도 있다는 것도 .
하지만 그 유명한 베토벤도 그랬고 니체 또한 삶에 대한 의지로서 그것을 극복 해낸 것 일뿐이다.
 
위버멘쉬(극복인)란 니체 철학의 근본 개념이다. 크리스트교적 선악 기준의 도덕 관념을 초월하고,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자기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실현하는 이상적인 사람이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괴로움의 역사로 치장하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슬픔에 대한 묘한 동경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힘듦과 괴로움으로 포장된 삶은
남에게 동정과 연민을 받기 더할나위 없이 좋기떄문이다. 그 속에 맘 편히 도피 할 수 있기 떄문이다. 얼마나 달콤한가.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의 꿈같은 도피처가 아닐까?

-선악의 저편 4장 169. 자신에 관해서 많은 말을 늘어놓는 것은 자신을 숨기는 방편이 될 수도 있다.
위버멘쉬가 되기 위해선 이런 삶의방향을 완벽하게 바꾸어 놓아야 한다.
비극은 일어날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거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그러나 그 슬픔에 빠져 지내느냐 그것을 극복하느냐는 온전히 나의 몫인건이다.
비극적 상황속에서도 자신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실현하는 사람. 적어도 되려고 노력을 해야하지 않을까.

2.본문

1)위버멘쉬는 왜 드물고 고귀한가

선악의 저편 4장.
72. 인간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고귀한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그것의 지속이다.
작심3일이란 말이 생각나는 구절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히틀러도 이런 말을 남겼다.
“대중의 이해도는 아주 낮으며 망각하는 능력은 엄청나다.”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아무리 고귀한 마음으로 다짐을 해도 그것을 지속해 나가지 않는 한 , 그것은 쓸모없는 외침에 불가할 뿐이다.
 매년 매번 바뀌자고 반복하지만  바뀌지 않는 운명이란 것도 강도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의 문제일 것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형편없는 존재이기 떄문에, 극복인은 아주 드물고 고귀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왜 이리 힘이 드는 것일까?
내가 나의 편이라면 나는 왜 내편을 들어서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수 있게 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을 가진적이 있었다.
그것에 대해 니체는 이렇게 얘길한다. 
우리 안의 수많은 의지들의 투쟁속에서 선택된 의지가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내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행동들이 알고보니 투쟁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변화하지 않고 관성에 둘러쌓인 모습들이 실은 수많은 의지들을 이겨내고 승리한 것들이었다니!!!

이것은 내가 원하는 의지가 아닌데!?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의지가 투쟁에서 승리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뚝딱 쉽게 얻어질 수 있는것일까?
슬금슬금 염세주의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기어들어오려고 하고 있다.
기본값= 허무주의,염세주의라도되는 것인냥 말이다.

관습적인 선악이나 도덕처럼 맹목적으로 나에게 받아들여진 것들.
“한다더라”의 삶은 살아온 것이 나에게 편안함을 주기도 했지만 그것은 나를 고통속에 빠트리기도 했다. 한다더라에 미치지 못한 나를 끊임없이 자책하며 비난했다.
아마 내 주변에 누군가가 24시간 나에게 그런 모욕을 준다면 가만두지 않았을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은 의식하지 못했다. 아니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오히려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비난하는 동시에 그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며,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에 일종의 면죄부를 부여하며,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책만을 하는 나에 대해
도피처를 마련해주는 끊임없는 악순환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어렴풋하게 느껴왔던 것들이 니체를 접하고 나서 명확해진 느낌이었다.
내가 왜 스스로에 대한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말이다.
나는 왜 변하고 싶으면서도 변화하려 하지 않고, 자기연민에만 빠져있었는가?
그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달콤했기 때문이다.!
달콤한 것은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마약같은 달콤함. 끊으려 하지만 끊을 수 없는 그런 것.
그것을 이겨낸 인간이 초인이라 할 수 있다.

2. 나의 삶 속에서 초인이 될 수 있는 방법들
 (나의 내면에서의 수많은 의지들의 투쟁 속 ,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의지가 승리하게 하는 방법.)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더욱더 힘들어했다, 최선을 다해 힘들어했다.
왜냐하면 그래야 현재의 내 상황이 정당화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습하려 하기는 커녕 더욱더 낭떠러지로 나를 몰아갔다.
이 모든것들은 나의 의식.내지는 무의식의 세계. 또는 그 경계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이 진짜 우울증이었을까?
병원에 가서 약을 받기위해 진단을 받으면서도 종종 물어보곤 했다.
“제가 우울증이 맞나요?” 
혹시 아니라고 하면 어쩌지 내심 걱정이 될떄도 있었다.
맞다는 대답이 나오면 내심 안도했다.
“나는 우울증이 맞구나! 힘들어도 되는구나!”
니체를 읽으면서, 내 증상에 대해 의구심이 생겼다.
니체를 알아갈수록 그것은 우울증이라기 보단, 
사랑할만한 삶을 살지 못하는 나에 대한 후회였다.
또는 일종의 자기기만이었다,
나에 대한 연민.

니체는 이렇게 얘기한다.

“모든 사람에 대해서 동정을 갖는 다는 것-이것은 그대 자신에 대한 가학과 폭압이 될 것이다.
나의 친애하는 이웃들이여.” 하물며 그 대상이 나라면?

삶에 대한 모든것을 포기하려는 우울함이 아닌, 삶의  모든것을 제대로 느끼고자 하는 내 마음의 강도만큼 나는 힘들었던 것 같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힘들어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오히려 나는 삶을 사랑하고 싶었기에 힘들어했던 것이 아닐까.


니체를 읽기 시작하면서 다른 여러 고전들에 대한 정보를 강의를 통해서나 책을 통해 얻기 시작했다. 새로운 영역의 지식을 접하면서 사유의 폭이 넓어졌다.
나의 힘듦에 대해 고전이 치료제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복용하던 약도 중단했다.
부작용이 생기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이건 진짜 우울증이 아닐거 같다는 작은 확신이 있었기 떄문이다.
역시 큰 부작용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선 셈인데,
어떻게 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 사랑할만한 삶을 살 수 있을것인가?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의지가 투쟁속에서 승리하게 할 수 있을까?

명확한 답을 찾진 못했지만, 의외로 어쩌면 굉장히 간단할 수 도 잇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고 싶은 것을 지금 할 것. 걱정은 하지 말것.”

2. 나를 이겨내지 못하게 한 생각들.

쓸데없는 걱정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은 허비했는지,
또는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으로 꽤나 많은 시간을 슬퍼했다.
하루키의 소설 '먼 북소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는 먹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이 구절은 20대 내내 나를 짓누르는 문장이 되었고 30대에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점에서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것은 무엇일까? 직장? 사랑? 전형적인 답안이 떠오른다.
내가 저 문장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도 내가   "한다더라"의 삶을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아니었을까?
나는 남들보기 좋으라고 사는게 아니다. 
 
오늘 문득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했다.
삶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하게되면서 ,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거 같았다.
니체를 이제 겨우 겉핥기 식으로 읽었다고 할 수 있지만 니체의 눈을 빌려 바라보는 세상은 이전과는 이미 같은 세상이 아니었다.
요즘에서야 나는 이전보다 훨씬 살아있다고 느낀다.
저 아래 바닥에서 죽은 자처럼 자책하며 쫓기듯이 지내던 젊은 시절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더 청춘이 아닐까?
청춘의 분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세속의 관념처럼 17~34세 까지가 청춘일까?
관점이 바뀌면 내가 향유하는 삶의 모습들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을 니체를 접하고 느꼈다.
그것을 깨닫고 느끼고 나니 나에게 엄청나게 많은 기회가 놓여져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늦었다고 생각할떄가 진짜 늦었다. 라는 박명수옹의 말은 틀렸다!
관점을 바꿀수만 있다면 이르고 늦고는 중요하지 않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야 마음으로 깨달았다.


 4.
어떻게 하면 나는 '내'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끊임없는 자기극복의 과정속에 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아니 중요하다. 또는 결과가 모든것일 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적어도 그 과정의 치열함속에 , 
그 속에 진짜 내가 될 수 있는 길이 있을것이다.

최근에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인 임현정선생님에게 sns를 통해 질문할 기회가 있었다.
항상 긍정적이고 의욕적이고 밝아만 보이는 임현정 선생님이었지만, 자서전을 읽고나서 엄청나게 많은 시련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홀로 외국으로 건너가 나로서는 상상도 못한 어려움을 이겨냇던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훌륭한 음악가가 되었다니...
그저 뉴타잎의 인간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너무 궁금했다.
어떻게 저렇게 밝을 수가 있지?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때 어떻게 하셨나요?”
선생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의심이 들면 될 때까지 해봅니다.그러면 의심이 사라지고 곧 자심감이 생깁니다.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떄까지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의심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뛰어드는 용기를 갖는 것인데요.
이 용기는 내가 그것을 얼만큼 사랑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하면 의심은 금새 사라집니다.”

아 ,,, 그랬다.
내가 삶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이었다.
해야 하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을,
그저 한다.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그 외에 모든것은 쓸모없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끼어드는 상념같은 것들은 나를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또는 다시 달콤한 곳으로 나를 끌어 당길 것이다. 
내가 그것을 얼만큼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냥 한다! 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가장 필요했다.
나는 그저 하면 된다. 그 과정속에 모든 것이 있다. 결과는 이미 내 소관이 아니다.
사랑할 만한 삶을 사는 것. 그 답이 이것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속에서 위버멘쉬를 발견할 지도 모르겠다.
 

그 여정에 니체가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지금보다 한단계의 또다른 도약을 꿈꾸며, 이번 글을 쓰며 생각난 소설의 구절과 니체의 글로 마무리를 하려 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의 이상에 도달한 자는 이와 함께 그 이상마저도 넘어선다” 

모두 다 사랑할만한 삶을 찾길 바라며.

이상으로 에세이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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