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미나자료 :: 기획세미나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참고자료1] 다수자와 일자 / 다수자와 소수자

*다수자(복수)와 일자(절대자) / 다수자(무리)와 소수자(예외자)

 

[1] 다수자(복수, 복합체)와 일자(절대자, 단일체) ······> 복수주의pluralism (‘수’ 개념)

*다수: 복수, 다수성, 복수성, 복수주의 polymerous, multimerous <······> 일자: 절대자, 단일성, 일원성, 일원론 monophyletic

 

① 복수주의 관련 텍스트

(#490. 주체의 복수성) 하나의 주체를 가정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복수의 주체를 가정하는 것도 허용가능하다. 우리의 의식과 사고의 바닥에서 이 주체들의 상호작용과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배력을 가진 일종의 '세포들'의 귀족정치라고나 할까? (*의식ㆍ사고보다 세포들이 지배적인 힘이다!) 그것은 물론 서로 통치하는데 길들여져 있어서, 명령하는 법을 이해하고 있는 동등한 자들 사이의 귀족주의(귀족정치)를 말한다(*강자들의 공동체). 주체가 다수라고 간주하는 나의 가설.

(#540. 진리의 복수성) 다종다양한 눈이 있다. 스핑크스도 역시 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종다양한 '진리'(*truths)가 있고, 따라서 어떠한 진리(Truth)도 없다.

(#556. 본질의 복수성)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하나의 의미정립이다. '본질'은 무언가 퍼스펙티브적인 것이며, 다수성을 이미 전제하고 있다. 이 질문은 “이것은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모든 생명체에게) 무엇인가?” 라고 묻는 것이다.

(#715. 가치의 복수성) 가치 중심은 어쨌든 ‘복수(*다수성)’이다. 그러나 ‘통일체(*단일성)’은 생성의 본성 가운데에는 현존하고 있지 않다.

(#641 영양현상의 복수성) 공통의 영양현상에 의해 결부된 다수의 힘을 우리는 <삶>이라고 부른다.

(#659 신체의 복수성) 신체는 세포나 조직의 투쟁과 같이 지배자의 다수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니체와 철학』 신성의 복수성) 복수로서의 신들은 존재하지만, 단수로서의 신(곧 유일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② 복수주의(pluralism)란

- 복수주의는 들뢰즈가 강조하는 니체철학의 본질이다. 복수주의는 “모든 사건과 현상, 말과 사유는 다수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 퍼스펙티비즘은 관점에 따른 복수주의이며, 힘에의 의지는 힘에서의 복수주의를 전제한다. “니체는 소란스러운 위대한 사건’(*하나의 의미)이 아니라, 각 사건들의 조용한 복수성’(*복수적 의미)을 생각한다. 의미가 다수가 아닌 어떤 사건ㆍ현상ㆍ말ㆍ생각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사건ㆍ현상ㆍ말ㆍ생각)은 때로는 이것이고 때로는 저것이며, 때로는 그것을 독점하는 힘들에 따라서 더욱 복잡한 어떤 것이다. 하나의 사물이 여러 의미를 가진다는 복수주의!” [니체와 철학] 들뢰즈

 

③ 복수주의와 생성/존재의 배치

  존재의 관점 = 하나의 관점
ex. 동일성의 철학, 인식의 세계
생성의 관점 = 복수의 관점
ex. 차이의 철학, 사물의 세계
존재론 [ I ] 하나의 주체(생각ㆍ행동하는 나)

[ is ] 복수의 주체(나들, 신체)

인식론 [Truth] 하나의 진리(절대적 진리)

[truths] 복수의 진리(진리들)

윤리학 [Moral] 하나의 도덕(보편도덕)
[一者] 하나의 중심(절대자)
[morals] 복수의 도덕 (개인도덕)
[n-1] 복수의 중심(~에 제일)

[ 생성과 존재에 대하여 ]

존재와 생성의 차이 :: 존재의 관점이 세계(사물)를 고정불변한 것으로 보는 관점이라면, 생성의 관점은 세계(사물)를 흐름과 변화로 보는 관점이다. 이로부터 존재의 관점은 고정불변하는 하나의 관점을 갖게 되며, 생성의 관점은 변화와 흐름에 따라 복수의 관점을 갖게 된다. 그래서 존재의 관점이 동일성의 철학을 추구한다면, 생성의 관점은 차이의 철학과 함께 간다. 또한 존재의 세계가 인식의 세계라면, 생성의 세계는 사물의 세계이다.

생성과 존재의 관계 :: ① 생성과 존재는 서로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생성이 흐름 그 자체라면, 존재는 생성의 일시적이고 특정한 국면이다. ② 우리는 생성의 흐름으로서는 사물을 인식할 수 없고 존재로서만 인식할 수밖에 없다. 즉 존재의 관점이란, 사물을 포착하기 위해 흐름(생성)을 일시적으로 고정시키는 것이다. ③ 따라서 존재에 대해 생성이 선차적이고 규정적이다.

[ 신체와 주체에 대하여 ]

신체와 주체의 관계 :: ① 신체와 주체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신체가 힘들의 복합체(잠재성)라면, 주체는 신체의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중심(현행화)이다. 주체의 동일성, 단일한 자아에 대한 믿음은 존재의 관점을 표시한다면, 매번 새로운 나를 생성시키는 생성하는 존재자는 생성의 관점에 서 있다. ③ 따라서 주체에 대해 신체가 선차적이고 규정적이다.

신체의 관점에 선다는 것 :: ① 주체(나)에 대한 규정이 달라진다. 나는 고정불변한 주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이다. 내가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의해 내가 정의된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나를 정의한다. ex) 나(역할)_아내, 학생, 소비자 / 망치(용법)_장비, 무기 ② 일상을 조직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주체(의식)에 대하여 신체(충동)이 선차적이라면, 일상을 바꾸고 싶다면, 의식과 사고의 변화보다 어떤 충동에 물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③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 신체가 무수한 힘들의 복합체라면, 내가 추구할 것은 주체의 동일성ㆍ단일한 자아가 아니라, 무수한 나들을 생성하는 실험일 것이다. ex. [놀면 뭐하니?] [아임 낫 데어]

[ 절대적 진리와 진리들 / 보편도덕과 개인도덕 ]

절대적 진리와 진리들 :: 하나의 절대적 진리를 제거함으로써, 모든 것이 진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하나의 절대적 존재를 지움으로서 무수한 생성이 긍정되는 것!

보편도덕과 개인도덕들 :: 보편도덕이 외부에서 초월적 규범으로 강제되는 것이라면, 개인도덕은 자기 내부에서 자기입법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니체의 자기입법자, 주권적 개인) 또한 보편도덕이 시대의 지배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개인도덕은 자신의 고유성에 기반하여 힘에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공동체(개체)에서 존재의 관점은 일자(절대자)라는 하나의 중심을 구성하려는 의지로 나타나고, 생성의 관점은 복수의 중심을 통해 절대적 일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2] 다수자(무리, 약자)와 소수자(예외자, 강자) ······> 힘에의 의지 (‘가치’ 개념)

*ex) 성소수자, 소수적 문학, 소수정치학ㆍ다수정치학, 소수적 가치ㆍ다수적 가치

 

① 소수성의 긍정

(『도덕의 계보』 1:16) 다수의 특권이라는 원한의 낡아빠진 허위적 구호에 대해서, 인간을 저열하게 만들며 평균화시키고 몰락으로 가져가는 의지에 대해서, 소수의 특권이라는 무섭고도 매혹적인 반대구호가 강력하게 울려퍼졌다!

(#679) 개체화individualization는 ‘하나가 둘로 끊임없이 분열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개체들소수의 개체를 위해서 끊임없이 소멸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수 개체들은 진화를 계속 이어가고, 대다수는 언제나 사라진다. (“신체”) 근본적인 현상은 ‘무수히 많은 개체들소수의 개체를 위해 희생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소수의 개체들이 진화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민족과 종족에게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712) a) 사회적 집단이 패배하여 소수이면서도 강한 자들 아래로 굴복하는 일의 끊임없는 증대.

(#783) 전적으로 ‘커다란’ 성공은 무리에 의해서만 달성된다. 아니 대중(*masses 무리)에 의한 성공은 언제나 원래가 작은 성공이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것은 소수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because “pulchrum 아름다움 est paucorum hominum 소수자”

 

② 다수적 가치 = 지배적 가치

(#280) 무리본능은 중간의 것과 평균적인 것을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하는데, 이것은 다수자가 살아가고 있는 장소이며 다수자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무리본능은 모든 위계의 반대자가 되고, 아래로부터 위로의 상승은 대다수자로부터 최소수자로의 하강이라고 여긴다. 무리는 예외자를 자신을 적대하고 위해할 그 무엇인가로 느낀다.

(#401) 2가지 권력의지가 투쟁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패배한 권력의지에 동의하고, 지금까지 승리를 거둔 다른 권력의지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이 지상의 가치를 결정해왔는가, 왜 그것이 적대하는 가치를 지배해왔는가’를 이해했다. 지금까지 최고의 가치로 여겨온 것이 수적으로 더 강했던 것이다! 

(#685) 가장 강하고 행복한 천성의 소유자들조직화된 군집본능과 공포의 지배를 받는 다수 앞에서 약해지 때문이다.

 

③ 다수자와 소수자 / 소수자와 소수자-되기

다수자와 소수자는 '수'가 아니라 '가치'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이다. 다수자는 지배적인 다수적 가치를 욕망하는 존재이고, 반면 소수자는 다수적 가치에 저항하여 소수적 가치를 창안하는 존재이다. 니체는 가치로 구분되는 이러한 존재를 강자와 약자라고 부른다.

“소수자는 실체적인 하부집단에 속하는 자가 아니라, 소수자-되기를 통해 발명ㆍ실험함으로써 구성되는 자이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소수자는 고정되고 실체적인 하부집단에 속하는 자가 아니라, 다수자와 구분하고 차별에 저항하여 소수적 정치활동의 주체로 자신을 형성하는 자이다. 즉 여성, 소수인종, 성적 소수자가 존재론적 소수자라면, 소수자-되기를 통해 구성되는 소수자를 구성적 소수자라고 할 수 있다. 존재론적으로 소수자라 하더라도, 다수적 가치를 추구할 때, 그리고 약자적 위치에만 머무를 때 그는 소수자가 아닐 것입니다. 반대로 존재론적으로 다수자라 할지라도, 소수적 가치와 소수자-되기를 통해 자신을 소수자로 구성한다면 그는 소수자일 것입니다.

 

④ 지배가치와 다수자ㆍ소수자

지배가치란 말 그대로 그 시대를 지배하는 가치들로서, 그것은 철학적 사유ㆍ도덕적 가치ㆍ정치적 이념에서, 이것의 일상 버전인 데시데라타(바람직한 이미지들)까지 다양할 것이다. 우리시대 지배가치의 꼭대기에 있는 것으로 자본주의(자본중심주의. 자본의 이윤를 중심으로 돈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하는)와 휴머니즘(인간 중심주의. 인간의 이해를 중심으로 동물, 자연, 사물을 도구로 여기는)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배가치는 마치 시대의 공기처럼 작동한다. 먼저 지배가치들은 시대의 공기와 같아서 '무의식적'으로 나의 사유를 지배한다. 그래서 내가 특별한 의식 없이 던지는 말이나 판단들은 대체로 지배가치인 경우가 많다. 또한 지배가치가 시대의 공기와 같은 것은 그것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 없는 '사유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사유를 지배하는 것이지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의 동의 없이 이미 내게 주어져있다. 푸코는 이것을 에피스테메(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무의식적인 기반)라고 불렀다.

그래서 지배가치는 다수가 따르는 다수적 가치가 될 수밖에 없으며, 때로 가족ㆍ친구ㆍ사회의 의견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때로 선입견이나 선지식 같은 형태로 우리 의식에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배가치 안에 있을 때(가족ㆍ친구ㆍ사회의 가치에 동의하고, 자신의 선입견에 따라 생각할 때), 무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반대로 지배가치와 갈등할 때는, 동시에 가족ㆍ친구ㆍ사회와 갈등하고 자신과도 모순관계에 있게 된다. 다만 어떤 사람은 이 지배가치를 견딜 수 없는 부자유와 숨쉴 수 없는 압박감으로 느낀다. 우리는 이런 존재를 '소수자'라고 부른다.

 

[참고자료2] 힘에의 의지 :: KraftMacht

*[다이너마이트 니체] > 2장 빛의 외투를 걸친 은둔자 > 04. 힘에의 의지

 

[1] 우리의 실재는 충동들의 실재이다!

*충동을 통해 인간을 넘어, 동물의 충동, 유기체의 기능, 사물의 운동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실재는 ‘충동들의 실재’ > 니체는 철학을 하나의 기호(배후의 충동ㆍ의지를 말해주는 기호)로서 간주했다. 즉 철학을 읽어낸다는 것은 ‘배후의 충동ㆍ의지를 읽어낸다’는 뜻이다. 니체는 충동을 통해 인간을 넘어 유기체의 삶, 생명이 없는 사물의 운동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 타진한다. 우리의 실재가 ‘충동들의 실재Realitat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면’ 이런 실재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까지 확대할 수 있을까? (*힘에의 의지 ······> 동물_충동, 유기체_기능, 사물_운동)

유기체ㆍ생명체의 충동 > 니체에 따르면, 유기체의 자기조절동화영양섭취배설신진대사 등의 기능은 ‘충동의 삶Triebleben’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등생명체는 물론이고 아메바 같은 단순생명체의 경우에도 생명체의 운동을 충동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아메바가 영양분을 흡수할 때 식욕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생명체의 다양한 기능은 각각 분화된 충동들로 이해할 수 있으며(-말하는 욕구, 항문-배설하는 욕구와 관련짓는 방식), 이 충동들이 원래는 하나의 ‘삶의 충동’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질적 세계의 충동 > 니체는 충동을 무생물의 세계, 기계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를 설명하는 원리로 검토한다. 니체는 물리학자의 Kraft’ 개념은 세계를 ‘작용’으로 이해하는 한에서 불충분하다고 한다. “물리학자의 ‘힘Kraft’ 개념은 내가 ‘힘에의 의지’로서 (MachtMight=능력의 표명에 따른 요청으로, 힘의 사용이나 실행으로, 창조적 충동으로) 표현하는, 내적 세계에 배당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운동, 모든 ‘현상’, 모든 ‘법칙’을 어떤 내적 사건의 징후(*외적 표현)로서 파악할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유비Analogie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동물에 있어서 충동들을 힘에의 의지로부터 이끌어내는 일은 가능하고, 유기체적 생명의 기능을 하나의 원천(*힘에의 의지)에서 끌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리학적 ‘힘Kraft’ > 물리학적 ‘힘Kraft’은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물리학자는 ‘힘’을 물리적 현상의 원인으로 제시하지만, ‘힘’은 현상의 기술이다. 그 힘(중력)은 사과가 떨어진 현상의 기술이지, 원인의 기술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역학적 인력척력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주체로서의 을 따로 상상할 수 없다. 인력이든 척력이든 이런 힘들은 현상이고 작용이며 파생물이며, 이 힘들을 품기도 하고 발산하기도 하는 어떤 것Etwas을 전제한다.

 

[2] 힘에의 의지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힘에의 의지 : 힘의 발생원리 > 니체는 어떤 것Etwas을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라 부른다. 힘의 발산은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뤄진다. 물리학자들이 측정하는 Kraft’ 어떤 내적 사건의 징후이다. 니체는 힘으로 표상되는 이 ‘내적 사건’을 힘의 발생원리라 부르며, ‘힘에의 의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힘들은 ‘힘에의 의지’를 나타내는 기호이자 증상이고 징후이다.

힘에의 의지 : 충동, 의지, 욕망, 정서 > ① (인간의 유비) 니체가 물리적 현상에까지 ‘의지’라는 말을 붙인 것은, 니체 스스로 말했듯이 ‘인간의 유비’이다. 따라서 ‘의지’ 개념을 인간적인 것으로 이해하거나, 인간적 정신작용이 사물에게도 일어난다고 받아들이면 안된다. 인간의 다양한 인식활동을 인간 내면의 사건(충동이나 의지라고 부르는 사건)의 표현으로 볼 수 있듯이, 물리적 세계의 힘들 관계에서도 힘 내부에서 일어나고 힘으로 발산되는 ‘사건’을 가리키기 위해 비유적으로 ‘의지’나 ‘충동’이란 말로 쓴 것이다. ② (내적 사건) ‘힘에의 의지’는 힘들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지, 힘 바깥에서 힘들을 규율하는 독자적 실체가 아니다. 인간 내면의 사건(충동, 의지라고 부른 사건)이 인간의 다양한 인식과 활동으로 표현되듯이, 물리적 세계에서도 힘 내부에서 일어나고 힘으로 발산되는 사건을 비유적으로 의지나 충동이라는 말로 쓴 것이다. 충동, 의지, 욕망, 정서 등은 모두 ‘힘에의 의지’의 다른 이름들이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 내면에서 일어난 사건을 가리킨다. 무언가를 먹고 싶든, 누군가를 사랑하든 우리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힘에의 의지’이며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고병권 : 충동, 의지, 욕망, 정서 등은 모두 ‘힘에의 의지’의 다른 이름들이다. [다이너마이트 니체]

*들뢰즈 : 의지작용=의지의 구성요소 : 감정(충동), 사고(사유, 사상), 정서 [들뢰즈의 니체]

 

[참고자료3] 힘에의 의지 :: 강자와 약자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 > 3부 차라투스트라의 구성과 스타일 > 권력의지를 말하다 p364~369

 

[1] 권력의지의 개념

권력의지에 대한 혼동 > 사람들은 ‘권력의지’(Wille zur Macht)를 ‘권력에 대한 탐욕’과 자주 혼동했다. 그러나 니체가 말하는 ‘권력’(Macht)은 통상적인 권력도 아니고 ‘의지’가 그런 탐욕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권력Macht = 능력potentia > ‘권력’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정치적 강제력’(Gewalt)이나 물리학자들이 사용하는 ‘물리적 힘’(Kraft)이 아니다. ‘Macht’에 가장 근접한 말은 ‘능력’(potentia)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자라게 하는 대지의 능력,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 스피노자의 말처럼, “실존하는 모든 것은 그 자신의 능력만큼 실존한다.” 물리적 힘이든, 정치적 힘이든 그 본질에는 능력이 있다. 능력은 그만큼의 힘(*물리적 힘ㆍ정치적 힘)을 발생시킨다. (*힘Macht = 자신과 관련하여_능력ㆍ역량potentia + 외부와 관련하여_수용력capacity)

의지Wille = 방향, 명령 > ① (의지=방향) 힘의 본질에는 능력만 있는 게 아니다. 힘에는 또한 방향이 있다. 힘은 특정한 방향으로 제 능력을 실현하려 한다. 이것이 ‘의지’(Wille)이다. ② (의지=모든 힘) 우리는 의지라는 말을 정신적인 것과 관련해서만 사용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의지는 모든 힘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생명체에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② (의지=명령) 니체는 ‘의지’를 ‘명령’(Befehl)과 동일하게 사용하는데, 그것은 힘의 방향이 사실상 그 힘이 마주하고 있는 것에 대한 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권력의지’ :: 복합개념 & 하나의 개념 > ‘권력’도 ‘의지’도 오해하기 쉬운 단어들이다. 하이데거도 말했지만, 그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너무 명백해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권력’을 ‘능력’으로, ‘의지’를 ‘명령’으로 이해했다. ‘권력’과 ‘의지’를 따로 설명하다보니, ‘권력의지’를 ‘권력’과 ‘의지’를 합친 복합개념처럼 취급했다. 그러나 ‘권력의지’는 하나의 개념인데, 명령할 수 있는 것은 능력(*-잠재력)이며, 그 명령 또한 능력을 실현하려는(*의지-현행화) 명령이기 때문이다.

 

[2] 강자의 권력의지 & 약자의 권력의지

니체적 강자 & 통상적 강자 > ① (니체적 강자) 니체는 명령할 수 있는 능력(*-잠재력)을 지녔고, 그 능력을 실현(*의지-현행화)하는 사람을 강자라고 불렀다. 강자는 스스로 힘을 발생시키며 그 힘의 주인인 사람이다. 강자는 신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스스로 무언가를 평가하며, 그 평가의 주인인 사람이다. ② (통상적 강자) 군사적 강제력을 빌려 지배하는 사람, 돈의 힘으로 지배하는 사람, 신의 이름을 빌려 지배하는 사람, 법이나 제도의 힘을 빌려 지배하는 사람은 강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그 힘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인데, 그들은 단지 자신이 빌려온 힘에 헌신하고 복종함으로써만 힘을 사용한다. 오히려 신, 돈, 법과 제도가 그들을 통해 지배한다고 해야 한다. 니체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천민들’이라 불렀는데, 이들은 지배자가 되었다고 해도 결코 강자가 되지는 못한다.

강자의 권력의지 : 자신을 거는 모험 > ① (생명체의 권력의지) 니체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 특히 생명체들에서 권력의지를 발견한다. “생명체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권력의지도 함께 발견한다.” ([차라투스트라] ‘자기극복’) ② (강자의 명령) 생명체는 지가 주변에 있는 것들에 명령을 내리며, 주변을 굴복시켜 자기 삶을 구성한다. 물론 그 명령의 과정에는 모험이 따른다. “명령하는 것은 복종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명령을 할 때 생명체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건다.” 명령이 자기증식의 과정일 수도 있지만, 자기파괴의 과정일 수도 있기 때문에 모험이다. 그 과정이 능력의 확대를 가져올지 축소를 가져올지 알 수 없지만, 강자들은 명령을 감행한다.

약자의 권력의지 : 타자의 힘을 빌어 > ① (주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 약자들에게도 권력의지가 있을까? 명령보다는 복종을 택하는 생명체에도 권력의지가 있을까? 물론! 권력의지가 명령이라면 주인의 욕망이지만, 노예들도 그 명령에 참여(*주인이 되는 욕망)하고 싶어한다. “누군가를 섬기고 있는 자(*약자)의 의지에서조차 나는 주인(*강자)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보다 약한 자 위에 주인으로서 군림하려는 의지는, 보다 강한 자에게 예속되어야 함을 자신에게 설득시킨다. 약자도 주인이 되는 즐거움 하나만은 버릴 수가 없다.” ([차라투스트라] 자기극복) ② (타자의 힘) 약자들은 자기보다 더 약한 자를 지배하기 위해서, 주인에게 빌붙는다. 약자들은 자기 힘이 아닌 타자의 힘에 빌붙음으로써만 지배에 참여할 수 있다. 주인의 이름으로, 돈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법의 이름으로 내가 너희를 지배한다. 심각해지면 이들은 주인ㆍ돈ㆍ신ㆍ법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음을 망각하고, 스스로 그것들의 지배자처럼 생각한다.

 

[3] 권력의지와 덕(가치)

현대인 : 덕의 보편성 > ① (덕의 평등성=보편성) 니체가 보기에, 현대인들은 스스로 강자로 착각하는 약자들이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따르는 덕의 주인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덕에 주인이 있다”는 생각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덕이란 모든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인데, 어떻게 주인이 따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덕의 주인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 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신 앞에서 모든 영혼이 평등하듯이,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현대인들은 그것을(*만인의 평등) 정의라고 부른다. ② (폭군적 열망) 니체는 ‘만인의 평등’이라는 정의 속에서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깊은 질병을 발견한다. 현대인들의 영혼은 독거미에 물린 것처럼 원한의 감정으로 가득차 있다. ([차라투스트라] 타란툴라) ‘보편적 가치의 정립과 그것의 평등한 적용’에는 자신과 다른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폭군적 열망’이 들어있다. 신 앞에 영혼의 평등을 내세우는 자들이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사납게 내치듯이,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는 자들도 동의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징벌의 충동’을 느낀다.

덕의 특이성, 덕의 가치평가 > ① (덕의 특이성)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과 원하는 목표가 다르다면, ‘좋음과 나쁨’의 기준도 달라 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 ‘덕을 평등하게 적용하기’ 전에, ‘왜 덕이 같아야 하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따르는 덕은 자기 몸에 맞는 것인가, 그 판단은 누가 하는가”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물음들이 생략되어 있다. ② (덕의 판단) 자기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에게 좋은 것을 만들어낼 능력도 없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지킬 수 없다. 환자들은 자기 몸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좋음과 나쁨의 판단’을 전적으로 의사에게 맡긴다. 노예들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행동’을 전적으로 주인의 처분에 맡긴다. 그저 도덕과 관습이 시키는 대로, 법ㆍ제도가 규정한 대로 살아가는 일은 환자나 노예들이 사는 방식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2북클럽자본 :: 자유의 파토스,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1] oracle 2022.12.22 211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0니체세미나 :: 비극의 파토스, 디오니소스 찬가 [2] oracle 2020.12.21 383
공지 [에세이자료집] 2019니체세미나 :: 더 아름답게! 거리의 파토스 [2] oracle 2019.12.19 690
1058 [철학에세이_니체] 신은 죽었다 file 박소원 2024.03.27 31
1057 [철학에세이_니체] 나는 그를 닮아 신이 된다; 그는 나를 사랑할 것이다 심혜민 2024.03.23 25
1056 [철학에세이_니체] 2주차 에세이: 뉴노멀 [1] 손현숙 2024.03.23 38
1055 [철학에세이_니체] 2주차 에세이: 평범해야 힌다는 나의 신 [1] 하늘빛오후 2024.03.23 41
1054 [철학에세이_니체] 2주차 에세이: '그대'라는 신 [1] 모래돌이 2024.03.22 37
1053 [철학에세이_니체] 2주차 에세이: 말을 살해한 자 [1] 김미진 2024.03.22 29
1052 [철학에세이_니체] 2주차 에세이: 신과 의지의 사이에서 [2] 늘봄 2024.03.22 36
1051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6장 발제 file 낙타 2024.03.22 17
1050 [철학에세이_니체] 2주차 에세이: 심지가 안에 있다 [3] 심지안 2024.03.22 37
1049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인류사의 사건들 5장 발제 은진 2024.03.22 24
1048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 시대의 정치학 ] 4장 발제 동기시대의 진전된 미개 file 초보(신정수) 2024.03.21 39
1047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2주차 후기 [6] 해돌 2024.03.16 104
1046 [철학에세이_니체] 1주 신은 죽었다: 발제 [1] 손현숙 2024.03.16 46
1045 [철학에세이_니체] 1_신은 죽었다: 발제 file 박소원 2024.03.15 59
1044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2, 3장 발제 file hongmin 2024.03.08 60
1043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1장(+해제) 발제 file 낙타 2024.03.08 83
1042 [신유물론 개념과 역사] 5장 3절 토머스 네일 발제문 file 이희옥 2023.12.06 35
1041 [신유물론 개념과 역사] 5장 2절 '수행적 신유물론자들' 발제 오수민 2023.12.06 43
1040 [신유물론 개념과 역사] '이분법을 횡단하기' 후기 지혜 2023.11.21 97
1039 [신유물론 개념과 역사]'이분법을 횡단하기' 발제 하얀 2023.11.15 115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