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적 관점에 따르면 선과 악, 강함과 약함과 마찬가지로, 건강과 질병은 이분법적 대립을 이루는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니라, 그저 차이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의 생명 현상이다. "건강과 병을, 살아 있는 유기체를 노려 서로 싸우면서 그 유기체를 결투장으로 바꿔놓은 그런 명백한 원리나 실체로 상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이며, 더 이상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니체의 핵심 개념인 (힘에의) '의지' 또한, 강한 의지/약한 의지로, 대립적 구분이 가능한 개념이 아니다. 의지적 존재인 인간의 복합적이고 다수적인 내적 "충동들"이 얼마나 가장 강력한 하나의 의지에 복종하여 통일체를 이루는가, 아니면 그러한 충동들이 얼마나 파편화된 혼란 상태를 이루는가에 따라 동일한 의지를 "강한 의지"와 "약한 의지"로 구분하게 되는 것이다.("마음속에 혼돈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춤추는 별과 같은 존재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저는 여러분께 장담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니체는 자신의 저서 [도덕의 계보]를 통해, 강자와 약자의 '차이'는 그러한 힘(왜냐하면 모든 것-생명-은 '힘'의 발산이기 때문에)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혹은 '비열한 것인가' 하는 위계질서를 상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계질서의 준거는 어떠한 당위에 의한 것이 아닌 니체적 관점-해석-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로부터 발생하는 선과 악의 기원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니체에 따르면 강자는 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능동적 인간이다. 약자는 행위를 할 수 없는 수동적(무력한) 인간이다. 강자는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긍정한다. 약자는 강자를 비방(저주)함으로써 자신을 긍정한다. 강자는 자신에게 이로운 것들을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그런데 자신이 좋은 기분을 느끼는지에 신경을 쓰는 것은 모든 강한 천성들의 근본적인 본능이다.") 약자는 강자들을 '악한 자'들로, 이와 대비되는 자신들을 '선한 자'들로 규정하고 선과 악을, 도덕을 정립한다. "이들 약자들-그들 역시 언젠가는 강자가 되고자 한다." "도덕을 추구하려는 의지조차도 증오나 경멸과 마찬가지로 "힘에의 의지"를 가리는 은폐물에 지나지 않는다"면 [...], 결국 이렇게 "이 가치들의 비열한 기원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는 지금, 우주는 가치를 상실한 것 같고 "무의미한" 것 같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 3논문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의욕하지 않는 것보다 무를 의욕하고자 한다."라고 강조해서 말한 바 있다. 인간은 기독교 도덕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자신의 존재와 고통의 "의미"를 항상 자신의 외부에서, 금욕주의적인 이상에서, 그러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초월적 가치들에 의해 부여받고자 하였다. "무엇을 위해서?라는, 니힐리즘이 제기하는 질문은 목표란 것은 외부에서, 어떤 초월적인 권위가 제시하는 것이라고 전제해 온 오랜 습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진리와 학문을 통해, 순수한 인식과 예술을 통해, 근면함과 노동을 통해,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종교와 신의 뜻이라고 하는 '이상'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를 경멸하는 유일한 이유는 "이상주의"라 불리는 터무니없는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초월적 가치들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세계와 인간 삶의 가치에 대한 무의미성을 낳게 된다. "철학적인 니힐리스트는 모든 현상이 무의미하고 헛되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헛되다.'고 하는, 인간이 느끼는 인간의 삶과 세계에 대한 가치 평가는, 인간이 현재 "자기 스스로 어떤 목표나 이유, 신앙을 생산적으로 설정하는 힘을 결여"하고 있다는 징후일 뿐이지, 정말로 삶과 세계가 그 자체로 가치가 없으며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가 믿어온 것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지녔을 수도 있다."
니힐리즘 안에서 인간은 오직 쾌락과 고통의 원리에 따라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쾌락과 고통 너머에 존재하는 "의미"는 없으며, 더 이상 인간에게 "의지나 목표, 의미"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오로지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는 그런 상태를 갈망한다." 그러나 이 또한 인간에게 삶이 "질병의 바탕으로 경험"되고 있다는 하나의 징후일 뿐이다. 인간이 겪는 니힐리즘은, "존재에 따른 고통이 이전보다 더 커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고통의 "의미"를, 존재의 "의미"를 불신하게 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니체는 힘에의 의지를 지금의 지배가치-무의미에 대한 가치(?)-를 극복하는 새로운 가치정립의 원리로 제안한다." 기독교의 도덕도, 쾌락과 고통도 아닌 '힘에의 의지'는 어떻게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고통과 존재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ㅎㅎ 지난세미나에서 우리가 미처하지 못했던 주제들을 보충하는 좋은 후기입니다. 특히 힘에의 의지에 대한 해석은 명쾌하고 즐겁습니다. 지난 시즌에 함께 공부했던 친구로서 뿌뜻하고 충만한 우정을 느낍니다. 웅빈샘 ^^
1. 힘에의 의지, 강자와 약자에 대하여
"니체적 관점에 따르면 선과 악, 강함과 약함과 마찬가지로, 건강과 질병은 이분법적 대립을 이루는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니라, 그저 차이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의 생명 현상이다. ...... 니체에 따르면 강자는 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능동적 인간이다. 약자는 행위를 할 수 없는 수동적(무력한) 인간이다. 강자는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긍정한다. 약자는 강자를 비방(저주)함으로써 자신을 긍정한다."
웅빈샘의 말처럼, 강자와 약자는 힘에의 의지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 다시말해 힘에의 의지를 인격화한 것입니다. 들뢰즈는 [니체와 철학]에서 힘에의 의지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힘은 할 수 있는 것이고, 의지는 원하는 것이다." 니체의 힘의 유형학에 따라 '힘에의 의지'를 성분으로 구분하면, 힘은 에너지(역량)을 구성하고 의지는 방향(벡터)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힘에는 능동적(action) 힘과 반동적(re-action) 힘이 있고, 의지에는 긍정의(positive) 의지와 부정의(negative) 의지가 있습니다. 결국 강자란 능동적 힘과 긍정의 의지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이고, 약자는 반동적 힘과 부정의 의지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입니다. 같은 말이지만, 우리 신체가 능동적 힘과 긍정의 의지로 충만할 때 우리는 강자이며, 우리 신체가 반동적 힘과 부정의 의지에 지배당할 때 약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2. 니힐리즘에 대하여 (초월적인 가치들에 대한 믿음과 그 상실)
"진리와 학문을 통해, 순수한 인식과 예술을 통해, 근면함과 노동을 통해,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종교와 신의 뜻이라고 하는 '이상'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초월적 가치들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세계와 인간 삶의 가치에 대한 무의미성을 낳게 된다. ......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헛되다.'고 하는, 인간이 느끼는 인간의 삶과 세계에 대한 가치 평가는, 인간이 현재 "자기 스스로 어떤 목표나 이유, 신앙을 생산적으로 설정하는 힘을 결여"하고 있다는 징후일 뿐이지, 정말로 삶과 세계가 그 자체로 가치가 없으며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니힐리즘에 대한 웅빈샘의 생각을 보니, 지난 세미나에 대한 저의 우려가 씻기는 기분입니다. 맞습니다. 니힐리즘이란 우리가 우리의 외부에 설정한 초월적 가치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의 상실에서 오는 반동적이고 부정적인 힘감정에 지나지 않지요. ㅎㅎ. 초월적 가치에 대한 믿음이란, 신ㆍ도덕ㆍ이성 뿐 아니라, 권력ㆍ자본ㆍ돈, 심지어 과학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을 절대적 진리로 여기는 태도일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니힐리즘은 우리가 스스로 생산적으로 가치를 설정하는 힘을 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뿐, 세계와 우리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외부에 초월적 가치를 계속해서 세우고 그것에 의존하는 한, 니힐리즘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니힐리즘을 인간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출현하는 서구역사의 근본운동이라고 합니다. 진은영은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에서 니힐리즘의 계보를 정리합니다. 종교적 니힐리즘(플라톤주의, 기독교)에 이어, 근대적 무신론적 니힐리즘(과학, 도덕, 진리), 그리고 탈근대적 형태의 니힐리즘(차이의 승인ㆍ인정)에 이르기까지! (지난 시즌 같이 하신 분들 잊으신 건 아니지요? ㅎㅎ)
3. 니힐리즘의 극복원리로서 '힘에의 의지'
"니힐리즘 안에서 인간은 오직 쾌락과 고통의 원리에 따라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 니체는 힘에의 의지를 지금의 지배가치를 극복하는 새로운 가치정립의 원리로 제안한다." 기독교 도덕도, 쾌락과 고통도 아닌 '힘에의 의지'는 어떻게 인간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니힐리즘을 공부하는 실천적 의미는 바로 '힘에의 의지'에 있겠지요? 니힐리즘이 가져다 준 세계와 삶에 대한 무가치ㆍ무의미를 힘에의 의지는 어떻게 전환시킬 수 있을지, 이것이 우리가 이어서 공부할 방향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