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미나자료 :: 기획세미나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6장 우리의 학자들

 

204. 학문은 오늘날 번성하며 양심의 거리낌 없이 풍요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반면 근대 철학 전체가 점차 침몰해간 결과인 오늘날 철학이라는 잔여물은 불신과 불만을 불러일으킨다. 학자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철학에 대한 오만한 경시. 때로는 개개의 철학자들에 대한 경멸이 철학에 대한 경멸로 일반화되었다. 학자들이란 철학자 영혼의 가계 운영에서 한가하고 고상한 사치의 냄새를 맡아 그것으로 스스로 침해당하고 왜소해짐을 느꼈던 근면한 노동자였다. 그들은 물론 실패한 자이며 학문의 지배로 되돌아온 자들이다. 그들은 언젠가 자신이 그 이상이 되기를 원하였으나, 그 이상에 대한 권리도, 자신의 책임에 대한 권리도 가지지 못하였다.

 

205. 학문의 규모는 거대한 것으로 성장하였다. 반면 철학자는 배우는 자로서 지쳐버리게 되거나 전문화되어 더 이상 정상에 이를 수 없게 된다. 그의 시선과 가치 판단 전체는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한 사람이 더 이상 명령하지 못하며 더 이상 지도할 수도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위대한 배우가 되려고 하거나 철학적인 사기꾼이 되기를 원해야만 할 것이다.

대중들은 오랫동안 철학자들을 잘못 보아왔거나 오해해왔다. 학문적 인간, 이상적인 학자, 탈감각적이고 탈세속적인 몽상가로 오해해왔다. 심지어 오늘날 어떤 사람이 철학자로 살고 있다고 칭찬을 들을 때, 이는 거의 영리하게 세상을 피해 살고 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혜라는 것은 천박한 사람에게 일종의 도피처럼, 좋지 않은 게임에서 잘 빠져나오는 수단이자 기교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철학자는 비철학적으로 현명하지 못하게, 영리하지 못하게 살아간다. 그는 수백 가지 시련과 유혹에 대한 짐과 의무를 느낀다.

 

206. 학문적 인간이란 어떤 인간인가. 그는 자족할 줄 모른다. 그는 근면하고 질서에 적응하며 능력과 욕구에서도 균형과 절도를 갖고 있다. 명예와 인정에 대한 요구를(가장 먼저, 그것도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자신의 가치와 유용성이 끊임없이 증명되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또한 하찮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고, 자기가 오를 수 없는 높이에 있는 사람들의 저급함을 꿰뚫어보는 살쾡이 같은 눈을 갖고 있다. 그는 비범한 인간을 본능적으로 근절하려 하고, 팽팽한 활을 모두 꺾으려 하거나 활시위를 이완시키려 한다.

 

207. 객관적 인간이란 하나의 거울이다. 그는 인식하고 비추는 것 외에는 다른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그는 어떤 것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다. 개인적인 것은 그에게 우연적인 것이나 자의적인 것, 때로는 방해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그는 낯선 형태와 사건의 통로나 반영이 되었다. 그의 영혼은 더 이상 긍정할 줄도 부정할 줄도 모른다. 그는 명령하지 않으며 파괴하지도 않는다. 그는 앞서가지 않으며 뒤따라가지도 않는다. 객관적 인간은 하나의 도구이며, 값 비싸면서 망가지기 쉽고 흐려지기 쉬운 계량기이자 예술품으로서의 반사경이다. 객관적 정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가. 따라서 소중하게 다루어야 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항아리의 주형에 불과한데, 그 형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내용물이 부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208. 회의란 신경쇠약이나 허약함으로 불리는 어떤 복잡한 생리적 상태를 나타내는 정신적인 표현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있던 종족이나 신분이 갑자기 뒤섞이게 될 경우에 일어난다. 그 작용으로 인해 여러 덕 자체는 커가거나 강해지지 못하고, 몸과 정신에는 균형, 중심, 수직적 안정성이 결여된다. 그 가운데 가장 깊이 병들고 퇴화되는 것은 의지다. 유럽은 위아래에서 모두 불안한 회의에 사로잡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의지에 싫증낸다. 이것의 병명은 의지 마비증이다. 객관성, 과학성, 예술을 위한 예술, 의지에서 자유로운 순수인식 가운데 대부분은 잘 차려입은 회의나 의지 마비증에 불과하다. 이 병이 유럽에 퍼져 있다. 오늘날 어떤 철학자가 자신은 회의론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세상사람 모두 그것을 듣기 싫어한다. 그는 그때부터 위험한 인물로 불린다.

 

210. 미래의 철학자들의 모습에서 한 가지 특징이 발견되어 그들이 회의론자임이 틀림없지 않나 추측된다면, 이는 그들에게 있는 어떤 속성 중 한 가지만 나타내는 것이지 그들 자신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이유에서 그들은 비판가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육체와 영혼에 대한 비판가로서 어떤 새로운, 훨씬 광대하고 위험한 의미에서의 실험에 종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으로 말이다. 이때 후대인들은 비판가와 회의론자를 구별하는 여러 속성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가치척도의 확실성, 의식적으로 통일된 방법을 사용하는 것, 기지 있는 용기, 독립성과 자기 책임 능력 등이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실험의 인간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래의 철학자들은 비판적인 훈육과 정신의 문제에서 정확함과 엄격에 이르게 하는 습관을 자신에게만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랑스럽게 내보일지 모른다. 그 때문에 그들은 비판자로 불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비판가란 철학자의 도구기 때문이다. 철학 자체를 비판적 학문으로 여기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철학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211. 철학자를 철학적 노동자 또는 학문적 인간과 혼동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철학자는 인간적 가치와 감정의 영역을 편력하고 높은 곳에서 먼 곳을, 깊은 곳에서 높은 곳을, 구석에서 드넓은 곳을 전망할 수 있기 위해, 스스로 비판가, 회의론자, 독단주의자, 역사가, 시인, 수집가, 여행가, 수수께끼를 푸는 자, 도덕가, 예견하는 자, ‘자유정신’, 거의 모든 유형의 인간이어야 한다. 이는 그의 과업에 이르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 과업은 다른 것을 원한다. 그는 가치를 창조하고자 한다. 그는 창조적인 손으로 미래를 붙잡는다. 그들의 인식은 창조이고, 그들의 창조는 하나의 입법이며, 그들의 진리를 향한 의지는 힘에의 의지다. 진정한 철학자는 명령하는 자이자 입법자다. 이런 철학자들이 오늘날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212. 내일과 모레의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철학자는 오늘과 모순된 상태에 있어 왔다. 그들의 적은 언제나 오늘의 이상이었다. 자신의 과제의 위대함은 시대의 나쁜 양심이 되는 것에서 발견되었다. 그들은 가장 존중받는 동시대의 도덕성 유형에 얼마나 많은 위선과 안일, 방임, 자포자기가 있으며 또 얼마나 많은 허위가 숨어 있고 얼마나 많은 덕이 살아남아 있는지 폭로하였다. 그때마다 그들은 가장 편안하지 않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고귀하다는 것, 독자적인 존재가 되고자 한다는 것, 달리 존재할 수 있다는 것, 홀로 선다는 것,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위대함의 개념에 속한다. 모든 드문 것, 낯선 것, 특권적인 것, 보다 높은 인간과 영혼, 더욱 높은 의무와 책임, 창조적인 힘의 충일과 지배권을 공동으로 얻기 위해 싸우며……

 

213. 철학자가 하는 것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경험으로 알아야 한다. 모든 높은 세계에 이르기 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타고나야 한다. 더 명확하게 말하면, 사람들은 그 세계를 위해 육성되어야 한다.

학자들은 사유를 체험해왔다. 그들은 사유를 어떤 가벼운 것이나 춤이나 들뜬 기분에 가까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사유한다는 것은 그보다 어떤 일을 진진하게 생각하는 것,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들에게 필연성이란 모두 고난이고 고통스럽게 강제되는 것이다. 반면 예술가들은 모든 것을 자의적으로 하지 않고 필연적으로 행할 때, 자유, 섬세함, 창조적 형성의 감정이 절정에 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필연성과 ‘의지의 자유’가 하나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최고의 문제는 정신성의 높이와 힘으로 해결할 만한 준비가 미리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에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를 사정없이 밀쳐버린다. 철학자가 태어나기 위해 많은 세대가 기초 작업을 했음은 틀림없다. 철학자의 덕은 커다란 책임을 기꺼이 지고자 하는 각오, 지배자적인 눈길의 고귀함, 스스로 격리되어 있다는 감정, 명령하는 기술, 의지의 폭넓음 등이다. 그것들은 하나하나 획득되고 보호되고 유전되고 동화되어 왔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2북클럽자본 :: 자유의 파토스,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1] oracle 2022.12.22 212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0니체세미나 :: 비극의 파토스, 디오니소스 찬가 [2] oracle 2020.12.21 384
공지 [에세이자료집] 2019니체세미나 :: 더 아름답게! 거리의 파토스 [2] oracle 2019.12.19 690
1080 [철학에세이-니체] 사고는 이렇게 사건이 된다 new 흥미진진 2024.04.19 6
1079 [철학에세이-니체] 6주차 에세이 - 뜨거운 삶을 사는 여자, 혜진! [1] new 하늘빛오후 2024.04.19 12
1078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석기시대 경제학 _3장 발제 file 해돌 2024.04.19 32
1077 [철학에세이_니체] 6주차 힘에의 의지 [2] update sprezzatura 2024.04.19 27
1076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석기시대 경제학 4장 발제 양애진 2024.04.18 29
1075 [육후이의 기술철학과 사이버네틱스] 5장 Logic and Object OllieC 2024.04.17 31
1074 [육후이의 기술철학과 사이버네틱스] 4장 질의 및 문제제기 유인호 2024.04.17 40
1073 [육후이의 기술철학과 사이버네틱스] 6장 질문 박주현 2024.04.16 26
1072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석기시대 경제학 2장 발제 file 2024.04.12 35
1071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석기시대 경제학 1장 발제 샤크 2024.04.12 36
1070 [육후이의 기술철학과 사이버네틱스] 2장 질문 file 오수민 2024.04.10 70
1069 [철학에세이_니체] 4주차 에세이 [1] sprezzatura 2024.04.06 34
1068 [철학에세이-니체] 4주차, 에세이 위버멘쉬(shape of water) [1] file 모래돌이 2024.04.06 31
1067 [철학에세이-니체] 4주차, 에세이 <생의 의지> [2] file 박소원 2024.04.06 30
1066 [철학에세이_니체] 4주차 에세이: 천진한 그 소녀를 나는 응원합니다 [1] 니키심 2024.04.06 25
1065 [철학에세이-니체] 4주차 에세이 - 사마천, 역사로 존재를 변명하다! [2] update 하늘빛오후 2024.04.06 29
1064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인류사의 사건들 12장 발제 file 진영 2024.04.05 14
1063 [철학에서에_니체] 위버멘쉬 그까이꺼 [2] 흥미진진 2024.04.04 42
1062 [육후이의 기술철학과 사이버네틱스] 1주 질문 file 초보(신정수) 2024.04.03 51
1061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인류사의 사건들 8장 발제 은진 2024.03.29 25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