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미나자료 :: 기획세미나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청인지 15 에세이] 일상을 여행하기

바라 2023.02.24 19:41 조회 수 : 118

일상을 여행하기

- 일상의 비일상화 -

 

바라

 

 하나의 이론은 정확히 도구 상자 하나와 같다. 그것은 기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유용해야 한다. 그것은 기능해야 한다. 그리고 이론 자신을 위해서만 기능해서는 안 된다. 만약 아무도 그 이론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후 이론가가 되는 것을 멈추는) 이론가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이론은 가치가 없거나 때가 부적절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이론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론들을 구성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이론들을 만들 수밖에 없다.

 

1. 일상을 살아가는 존재는 주체가 아니다

 일상(日常)의 의미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반복은 안정(安靜)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단조(單調)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는 생성(生成)의 힘을 억압하며 동일성(同一性)을 재생산한다. 이러한 점에서 일상을 인정하는 것은 근대 국가가 영토화(territorialization)와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를 통해 차이를 억압하는 근대성(近代性)을 묵인하는 것과 동일하다.

 국가 체제 아래 제도화된 배치(assemblage, 排置)에서 살아가는 정주민(sedentary, 定住民)은 기존의 삶을 순응한다. 이들은 사고방식, 가치관, 습관 등 제도에 고착된 채, 생성의 욕망을 따르지 않는다. 제도화된 배치에 순응함으로써 안정감을 갖고 현실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상을 사는 것−즉 일상에 순응하는 것−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을 사는 존재는 주체(主體)의 지위에서 박탈된다. 주체의 생산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주체는 운동에 의해, 그리고 운동으로서 정의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펼치는 운동이다. 스스로 펼쳐지는 것이 주체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존재의 자기 운동은 ‘차이와 반복’의 원리를 따른다. “차이는 결코 동일한 정체성 안에 빠지지 않으면서 분화의 길로 들어서게” 하고, “반복은 존재자의 고유한 역량을 표현”하면서 존재론적 생성 운동을 하게끔 만든다. 다시 말해 주체는 자기 동일성을 해체하면서 의식적 자아를 파고 들어가 탈주체화(脫主體化)의 생성적 운동을 하면서 끊임없는 자기 분열적 생산을 반복한다. 이런 관점에서 일상을 사는 존재는 ‘차이 없는 반복’을 행하며 자기 동일성을 강화시키고, 스스로를 펼치는 운동으로 정의되지 않기 때문에 주체가 아닌 것이다.

 

2. 일상을 여행하기

 일상을 여행(旅行)하는 것은 일상을 비일상(非日常)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살아가는 것−지금의 시점과 지금 이후의 시점이 달라지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들뢰즈는 ‘탈주선(line of flight)’을 따라 끊임없이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를 시도하는 존재를 유목민(nomad, 遊牧民)이라 명명했다. 이들은 획일화된 제도의 ‘보편적(普遍的)’ 삶을 거부하며 새로운 욕망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존재이다. 일상을 여행하는 존재가 되는 것은  기존의 배치에서 탈주하려는 존재가 되는 것과 동일하다. 

 

 언표행위라는 집단적 배치물, 욕망이라는 기계적 배치물이 서로 섞여 존재함, 그것들은 갖가지 방식으로 서로 얽혀 다양체로 존재하는 경이로운 바깥에 가지를 뻗는다.

 

 여행을 통해 존재는 수많은 세계가 뒤얽혀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여행 이전의 나의 세계는 ‘나의 세계’일뿐 타자(他者)의 세계를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행의 과정에서 나의 세계와 수많은 세계가 부딪히게 되고, 이를 통해 타자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존재하는 수많은 세계 간에는 쌍방향으로 끊임없는 영향이 이동한다. 이를 통해 나는 타자의 영향을 받는 존재임을, 역으로 타자는 나의 영향을 받는 존재임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상을 여행할 수 있는가? 어떤 방식으로 일상을 비일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여행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을 가리킨다. 특정 시점을 가리키지 않더라도 반드시 정착(定着) 혹은 귀환(歸還)을 내포한다. 목적적(目的的)인 떠남이 여행이며, 즉 특정한 목적−차이를 만들겠다는 것−을 가지고 떠남으로써 일상의 탈주가 가능한 것이다. 

 

3.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의 존재는 차이의 생성을 방해하지 않는다

 여행의 귀착점(歸着點)은 여행 이전의 상태와 동일하지 않다. 이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나아가 탈영토화(脫領土化)−하나의 구조나 체계를 벗어나려는 경향이며 억압과 통제를 벗어나 탈주하려는 분열적 흐름−와 새로운 영토화를 의미한다. 

 우리는 왜 집을 필요로 하는가? 집을 유목 생활의 방해물로 여기는 것은 우리가 이미 정착민의 생활에 적응했기에, 정착민의 사고방식에 길들여졌기 때문이 아닌가 방문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다시 유목민의 정신을 외쳐야 할 때인 것이다. 내가 변화했는데 돌아갈 곳−집, 거주지−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의 비일상−일상의 여행−을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실제로는 지점, 궤적, 땅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목민들은 이것들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유목민이 특히 <탈영토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들에게서 재영토화는 이주민의 경우에서처럼 탈영토화 이후에 이루어지거나 또는 정주민의 경우처럼 다른 어떤 것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정주민은 소유 제도나 국가 장치와 같은 다른 어떤 것의 매개를 통해 대지와 관계를 맺는다). 이와 반대로 유목민들에게서는 탈영토화가 대지와의 관계 그 자체를 구성하고 있으므로 유목민은 탈영토화 그 자체에 의해 재영토화된다. 즉, 대지 그 자체가 탈영토화된 결과 유목민은 거기서 영토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때 대지는 대지이기를 그치고 단순한 지면 내지는 지지면이 되려고 한다. 또한 대지는 포괄적이고 상대적으로 탈영토화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지점에서, 즉 숲이 후퇴하고 스텝이나 사막이 전진하는 명확하게 한정된 장소에서 탈영토화된다. 위박이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유목은 전 지구적인 규모의 기후 변화(이것은 오히려 이주와 결합된다)보다는 “국지적 기후 변동”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매끈한 공간이 형성되어 사방을 침식해 들어가고 계속 증대하려고 하는 대지 위에는 반드시 유목민이 있다. 유목민은 이러한 장소에 살고, 거기에 머무르며, 이러한 장소를 증대시켜 나간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목민이 사막에 의해 만들어졌듯이 사막 또한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집(home)으로 돌아간다. 게다가 집을 인지하는 나라는 존재 또한 변화한다. 중요한 것은 나라는 존재와 변화한다는 사실 자체를 지각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영화의 대사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Home is it just a word? Or is it something you carry within you?

 (집은 허상인가? 아니면 마음의 안식처인가?)
- 영화 <Nomadland> 中

 

 

 

 

참고문헌

 

 

  1. 단행본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김상환 역, 민음사, 2010.

질 들뢰즈, 『경험주의와 주체성 : 흄에 따른 인간본성에 관한 시론』, 한정헌・정유경 역, 난장, 2012.

 

2. 논문

오길영, 「들뢰즈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 유목주의와 자율주의에 관한 몇 가지 문제제기」, 『비평과 이론』, 10권 2호, 2005, 145-172.

이동수・정화열, 「횡단성의 정치: 소통정치의 조건」, 『한국정치연구』 21권 3호, 2012, 297-319.

최진아, 「들뢰즈·가타리 철학에서 주체 개념의 의미」, 『시대와 철학』 30권 2호, 2019, 199-233.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2북클럽자본 :: 자유의 파토스,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1] oracle 2022.12.22 205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0니체세미나 :: 비극의 파토스, 디오니소스 찬가 [2] oracle 2020.12.21 377
공지 [에세이자료집] 2019니체세미나 :: 더 아름답게! 거리의 파토스 [2] oracle 2019.12.19 683
1060 [철학에세이_니체] 세변화에대하여 발제 new 흥미진진한 독자 2024.03.28 4
1059 [철학에세이_니체] 2. 위버멘쉬 발제 new 모래돌이 2024.03.28 10
1058 [철학에세이_니체] 신은 죽었다(박소원) updatefile 박소원 2024.03.27 24
1057 [철학에세이_니체] 나는 그를 닮아 신이 된다; 그는 나를 사랑할 것이다 심혜민 2024.03.23 22
1056 [철학에세이_니체] 2주차 에세이: 뉴노멀 [1] 손현숙 2024.03.23 28
1055 [철학에세이_니체] 2주차 에세이: 평범해야 힌다는 나의 신 [1] 하늘빛오후 2024.03.23 37
1054 [철학에세이_니체] 2주차 에세이: '그대'라는 신 [1] 모래돌이 2024.03.22 33
1053 [철학에세이_니체] 2주차 에세이: 말을 살해한 자 [1] 김미진 2024.03.22 23
1052 [철학에세이_니체] 2주차 에세이: 신과 의지의 사이에서 [2] 늘봄 2024.03.22 32
1051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6장 발제 file 낙타 2024.03.22 13
1050 [철학에세이_니체] 2주차 에세이: 심지가 안에 있다 [2] 심지안 2024.03.22 33
1049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인류사의 사건들 5장 발제 은진 2024.03.22 21
1048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 시대의 정치학 ] 4장 발제 동기시대의 진전된 미개 file 초보(신정수) 2024.03.21 32
1047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2주차 후기 [6] 해돌 2024.03.16 98
1046 [철학에세이_니체] 1주 신은 죽었다: 발제 [1] 손현숙 2024.03.16 41
1045 [철학에세이_니체] 1_신은 죽었다: 발제 file 박소원 2024.03.15 51
1044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2, 3장 발제 file hongmin 2024.03.08 58
1043 [석기시대의 경제학, 청동기시대의 정치학] 1장(+해제) 발제 file 낙타 2024.03.08 80
1042 [신유물론 개념과 역사] 5장 3절 토머스 네일 발제문 file 이희옥 2023.12.06 35
1041 [신유물론 개념과 역사] 5장 2절 '수행적 신유물론자들' 발제 오수민 2023.12.06 40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