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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인지 15 | 현대철학의 세 갈래 에세이 프로포절

조성아

 

 

  라캉이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고 말할 때, 이 ‘욕망’은 욕망의 대상이 되길 바라는 욕망 혹은 타자로부터의 인정(혹은 승인)에 대한 욕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듯 욕망이 타자적인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사랑은 어떨까.

 

 

관계가 깊어지는 결정적 순간에는

언제나 액체의 교환이 있다.

글자들이 헤엄치는 어항을 들고

2인칭의 세계로 들어선다.

- 「시인의 말」, 『뜻밖의 바닐라』

 

 

  이혜미는 사랑의 순간에 “언제나 액체의 교환이 있다”고 말한다. 다른 무엇의 교환보다도 맹목적인 액체의 교환은 단지 하나가 되겠다는 목적만으로 경계 없이 이루어지며, 비로소 ‘우리’로 섞여 들어간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묶음 속에서 ‘나’와 ‘너’는 서로를 닮아간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러나 ‘너’와 ‘나’가 ‘우리’로 묶여 모든 순간과 감정을 이야기할 때, ‘나’는 과연 ‘우리’ 안에 안정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액체 안에서 가능한 것은 오직 ‘표류’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라는 욕망으로 인해 인간은 언제나 더 불안정해질 따름이다. 즉 ‘우리’ 안에서 삭제되는 것이 결국 ‘나’일 수밖에 없다면, 사랑 안에서 타자와 동일시되기 욕망하는 자아는 주체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계 속 자아는 상징계의 균열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분열과 파편은 고통을 야기하고 이로부터 도망치고자 하지만 그것이 번번이 좌절되었을 때, 상징계의 결여의 구조는 주체를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멍든 자리를 들여다보면 몸의 내부로부터 캄캄한 조명이 비치는 것 같다. 달아나는 죄수를 겨누듯 부딪힌 자리마다 뒤늦게 어두워지고

 

정원이 깊어진다.

 

나무가 정원 한구석에 서 있다. 뾰쪽한 구두를 신고 진흙에 발을 빠뜨리며.

 

식물이 흙의 신발을 벗는다면 제일 먼저 이 물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치겠지 비를 만드는 우산 속 동그랗게 모여드는 그늘 깊은 우울을.

 

각주가 많은 몸은 슬프지.

죽으면 생전의 멍들이 피부 위로 떠오른다는 이야기처럼,

 

물줄기가 회오리친다. 무릎이 흙에 젖는다. 반짝이는 이파리를 늘어뜨린 나뭇가지들.

 

뿌리마다 작은 하이힐을 신은 잔디들이 수군거린다. 검게 물들며 나무는 낮아진다. 턱밑까지 흙에 잠기며. 귀걸이와 목걸이와 팔찌를 풀어 내버린다. 구두가 벗겨지고 푸르게 지워지는 맨발.

 

나무가 빠져든 자리를 멍의 뿌리라고 불러도 될까. 정원이 온통 푸른 멍으로 뒤덮일 때까지 스프링클러는 돌아가고.

 

-「스프링클러」전문

 

 

  이 시에서 주목할 점은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 정원 한가운데 위치하는 듯 보이던 화자가 시의 말미, 보다 거시적인 시선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화자는 “정원이 온통 푸른 멍으로 뒤덮일 때까지 스프링클로가 돌아가”는 모습을 ‘조망’하고 있다. 이 거리감의 획득은 보다 많은 것을 가시화한다. 이때 비로소 진실로 욕망하는 ‘무언가’가 함께 드러난다면 어떨까.

  이번 에세이를 통해 이혜미의 시 속 화자가 지닌 사랑의 욕망을 찾고 그것이 변화하는 양상을 짚어 볼 것이다. 이를 통해 상징계에 머물 수밖에 없는 파편으로서의 주체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실재’를 향한 주체의 욕망을 읽어 보고자 한다. 이 욕망으로 하여금 과연 시인이 말하는 사랑이, 관계가, 나아가 ‘나’가 어떤 방식으로 현실에 발 딛을 수 있는지를 살핀다면 언제나 실패할 것만 같던 ‘우리’의 존재도 또 달리 가능하지 않을까.

 

 

목차

1. 미끄러지는 언어, 공허한 기호 ‘우리’

2. 동일시의 욕망

3. 깨짐, 멀어짐으로써 완성되는 빛의 자리로

 

 

참고 문헌

이혜미, 『뜻밖의 바닐라』, 문학과지성사, 2016.

           , 『빛의 자격을 얻어』, 문학과지성사, 2021.

이진경, 『철학의 외부』, 그린비, 2006.

브루스 핑크, 이성민 옮김, 『라캉의 주체』, 도서출판b,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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