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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자본_에세이] 괴물 씨앗

에이허브 2022.12.15 21:33 조회 수 : 127

괴물 씨앗 

 

1 서호납줄갱이. 크낙새. 꽃사슴, 강치, 늑대, 바다사자, 반달곰, 황금박쥐, 산양, 수달,

스라소니, 여우, 호랑이. 배경 그림 위로 대사

 

나는 한 때 샘물에 얼굴을 비추는 꽃사슴이었다가

나는 한 때 강치였다가

나는 한 때 늑대였다가

나는 한 때 산양이었다가

나는 한 때 황금박쥐였다가

 

......죽었어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날 때 마다 나는 멸종당했어.

인간과 친한 동물로 환생하면 내 수명만큼 살 수 있을까?

 

2 포크레인이 구덩이를 파고 불도저가 커다란 구덩이를 흙으로 메우고 있다.

구덩이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돼지들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돼지들을 구덩이로 몰아넣는다.

 

난 돼지로 환생했어. 매일 똑같은 사료만 먹고,

좋아하는 진흙목욕도 한 번 못해보고 구덩이에 던져졌어.

전염병이 퍼지기 전에 땅에 파묻어야 한다나?

어차피 짧으면 4개월 길어야 6개월 안에 도축 됐겠지만

그래도 너무한 거 아냐?

하느님이 준 나한테 준 생명은 10년이 넘는다고!

 

3 작은 울타리 가득 소똥 언덕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소들과

착유기에서 젖을 짜는 젖소들

 

이번엔 소로 태어났어.

‘아. 잘됐다. 이슬에 젖은 풀을 뜯으며 구름을 쳐다보면서 살겠구나!’하고,

신이 났었지

그런데 웬걸? 온종일 젖을 뽑아대는 거야.

하루 5리터!

자연 상태의 소에서 나오는 젖의 다섯 배에서 여덟 배의 우유를 짜냈어.

살은 헐고 피가 흘렀어. 눈물과 피가 멈출 날이 없었지.

친구들은 똥더미 위에서 맛없는 사료만 되새김질하다가 도축장에 끌려갔어.

 

4 기계화 된 정육공장에 줄줄이 매달려있는 소의 시체들

뼈와 살을 분리작업을 하는 직원들

 

내 가죽은 구두와 가방이 되고 살은 햄버거 패티가 됐어.

정말 너무한 거 아냐?

 

5 양계장에 빼곡이 들어찬 채 알을 낳는 닭들

 

날개 달린 걸로 태어나면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날개는 있었지만 비좁은 닭장 안에서 기지개 한 번 켜보지 못했어.

부리가 잘린 채 하루에 열 개도 넘는 알을 낳고 또 낳았어.

 

6 분쇄기에 던져지는 닭

 

“알을 적게 낳는 것들은 죄다 분쇄기에 집어넣어! 갈아서 개사료로 쓰게”

닭으로 살다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야.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는 거 아냐?

 

7 왼쪽 손아귀에 잡힌 귀여운 밍크의 모습. 오른 손에 쥔 칼날이 시퍼렇게 빛난다.

밍크코트를 입고 무대를 활보하는 모델

 

귀여운 밍크로 태어났지만 금세 코트가 됐어.

도대체 나한테 왜들 이래?

 

8 늪에서 튀어 오르며 거대한 입을 쩍 벌린 위협하는 악어.

 

난 악에 받쳐서 악어로 태어났지.

가까이 오기만 해봐 다 물어뜯어버릴 거야!

 

9 백화점 매장 안.

악어가죽 핸드백을 어깨에 맨 채 거울에 자신을 비쳐보는 여자.

 

늪에서 붙잡혀 곧장 가죽가방이 됐어.

와- 너희들 정말 무시무시한 종족이구나!

 

10 바다를 헤엄치는 참치떼. 그 뒤에 그물을 펼치며 다가오는 원양어선단.

그 중 한 마리가 튀어 오르며 소리치는 모습.

 

바다동물로 태어나면 오래 살 수 있지 않겠냐고?

11 일식집 기다란 칼로 참치를 해체하는 주방장.

갖가지 회와 초밥들이 접시에 담겨 테이블 위에서 회전하고 있고 사람들이 먹고 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복어, 도미, 멍게, 문어, 해삼, 고래, 개복치. 우럭, 넙치. 고등어, 오징어, 꼴뚜기, 새우, 대구, 명태, 거북이.....

다시 태어나는 족족 잡아 먹혔어.

정말 징글징글하다.

도대체 너희가 못 먹는 게 뭐야?

 

12 숲 속 옹달샘 옆 독버섯

 

난 독버섯으로 태어났어.

먹기만 해봐라 온 몸에 독이 퍼져서 죽고말테니까!

 

13 불도저와 포클레인 중장비들이 숲을 밀어내는 공사 현장 모습.

흙더미와 풀에 뒤섞인 채 죽는 버섯, 뱀, 개구리, 지렁이,

 

인간들은 순식간에 숲을 밀어내더니 콘크리트 집을 지었어.

휴- 정말 할 말이 없다.

 

14 땅 속 깊은 동굴에서 생각하는 사람 자세로 고민하는 두더지

 

생쥐로 태어난 나는 땅 속 깊이 파고들었어.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내가 죽임을 당하는 건 인간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서야.

인간이 사랑 하는 걸로 태어나면 오래 살 수 있겠지.

그래! 다음 생엔 인간들이 제일 사랑하는 걸로 태어나는 거야!

 

15 포크레인 삽날이 동굴에 콱 박히고 혼비백산하는 생쥐.

공중에 쳐들린 삽날에서 뛰어내리며 외치는 생쥐.

 

인간들이 가장 사랑하는 게 뭔지 알기 전엔 못 죽어!

꺄아아아아아-

 

16 휘황찬란한 도시의 야경. 자동차와 화려한 건물들. 한껏 명품으로 멋을 부린 남녀가 돈을 뿌리며 카펫 위를 걸어가자 모두들 환호하는 모습.

 

하수구 구멍에서 그 모습을 올려다보는 생쥐

그래! 저들이 제일 사랑하는 건 돈이었어!

 

17 지평선 언덕 위. 민들레가 바람에 홀씨를 날리고 있다.

 

나는 너희들이 사랑하는 걸로 변하는 씨앗으로 환생했어!

제일 먼저 황금나무 씨앗!

 

18 언덕 위 찬란한 금빛을 흩뿌리며 서 있는 황금나무

그 아래로 개미떼 같이 달려드는 사람들

황금나무에 매달리고 가지를 꺾고, 톱으로 썰고, 뿌리를 파내고,

서로 더 갖겠다고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는 사람들

황금나뭇잎이 바람에 날리자 우루루 몰려가는 군상들

 

나는 황금씨앗

땅에 닿으면 눈부신 황금나무로 자라지.

 

“세상에 황금나무야!”

"이파리 한 장에 백만 원도 넘을 거야!”

 

19 황금나무 이파리가 땅에 닿자 뿌리를 내리는 모습

 

“세상에 이것 봐! 황금나무 이파리가 자라고 있어!”

“와아- 우린 이제 부자야!”

 

20 도심의 건물과 도로 자동차와 사람들 고가도로를 온통 휘감은 채 자라는 황금나무

 

황금나무는 순식간에 도시를 황금으로 만들었어.

황금나무에 닿는 것들은 모두 금으로 변했어.

황금 소방차. 황금 가로등, 황금 빌딩, 황금 유리창.......

근사하지?

눈부시잖아!

 

21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씨앗들이 분수대와 동상, 주유구에 가득 달라붙어 춤을 춘다.

그 아래 공원 분수에서 맥주가 솟구치고,

오줌 누는 아이 동상 요도에서도 콜라가 쫄쫄쫄 흘러내린다.

주유소 주유구에서 생크림이 뿜어져서 황금자동차를 허옇게 뒤덮는다.

잔에 맥주를 받아 건배하는 사람들.

한 손에 햄버거를 든 채 동상 아래서 입을 벌리고 콜라를 받아 마시는 뚱뚱한 아이.

생크림이 뿜어져 나오는 주유구를 든 채 황당해하는 사람.

 

우리는 맥주씨앗! 콜라씨앗! 생크림씨앗!

“와하하 배터지게 마시자 건배!”

“세상에. 콜라가 끝도 없이 나와!”

“이런, 생크림을 자동차에 넣으라고?”

 

22 구름 위에서 설탕가루를 뿌리는 장난기와 표독스런 표정의 씨앗들

하늘에서 솜사탕이 흩날리며 떨어진다.

무릎까지 쌓인 솜사탕 눈. 입을 벌린 채 솜사탕을 받아먹는 아이들.

솜사탕눈으로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

 

솜사탕 씨앗들도 질 수 없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솜사탕 눈이 온 세상을 뒤덮지.

솜사탕 눈이 녹으면 끈끈이를 뒤집어 쓴 생쥐 꼴이 될 테지!

야호! 정말 신 나지 않아?

 

 

23 전투복에 얼굴에 검은 위장크림을 바른 살기어린 표정의 군인 씨앗들이

자유의 여신상 위에서 기관총을 난사한다.

헬기를 타고 도심 위를 날며 기관총을 난사하는 무장한 군인 씨앗들

다이아몬드 우박이 쏟아져 내린다.

빌딩과 도록 자동차 위로 총알처럼 박히는 다이아몬드 우박들

혼비백산해서 건물 안으로 피신하는 사람들

 

전쟁을 사랑하는 인간들아 다이아몬드 총알 맛이 어떠냐!

“으아아아아- 세상에 다이아몬드 우박이라니!”

“사람 살려!”

 

24 반 토막이 나며 무너지는 황금빛 건물들.

끊어지는 금문교

폭발하는 원자로

잿더미가 된 도시 위를 날아다니는 괴물씨앗들

멀리 보이는 우주선에 지구인들이 오르고 있는 모습

 

지구는 이제 내 코딱지보다 더 쓸모없게 돼버렸어

흥, 까불더니 꼴좋다!

살아남은 저것들은 또 어느 행성을 망치려고 떠나는 거야?

 

25 거대한 우주선에 오르는 지구인들.

기진맥진한 채 줄을 늘어선 사람들.

하늘 위로 지구인들을 싣고 우주로 날아가는 우주선들

겁에 질린 지구인들이 괴물씨앗들을 향해 총을 겨눈다.

팔짱을 낀 채 비웃음을 날리는 괴물씨앗들

 

지구를 망친 괴물씨앗들이다!

흥, 웃기는군.

자기들이 망쳐놓고 왜 우리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야

어디로 도망치건 너흰 망할 거야.

왜냐하면......

 

26 정면을 향해 손가락질 하는 기괴한 표정의 괴물 씨앗

 

너희 안에 내가 있으니까

너희가 바로 괴물씨앗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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