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미나자료 :: 기획세미나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유택

3강 질문

 

Q1) p30 “그래서 우리는 빛나는 금덩어리를 보면서 그 안에 가치의 원자라도 있는 듯 착각합니다”

누굴 바보로 아시나요? 읽다 보니 은근 기분 나쁜데요^^ 물신주의. 
돈이 불에 타는걸 보고 돈 그 안에 ‘가치의 원자’가 들어 있으니 돈을 주으려고 불속으로 들어갔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우리는 그 죽은 사람을 바보 같다 내지는 물신주의자다 라며 종이 쪼가리 줍느라 죽었다고 비판합니다. 근데 과연 온당한 것인가요? 
돈은 다른 물건과 등가교환될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이 사회에서 사는 이상 그 돈은 필요하겠지요. 생산수단을 다 뺏겼기에 오직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만이 우리의 실존적 출발점이잖아요. 물론 이 시대라는 한정속에서요. 
물신주의(패티시즘) 이라는 말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소비양식를 분석한 이후, 즉 사후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보이기에 갖다 붙힌 이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독자로써 은근 기분 나빠져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 서술방식이 변증법적이라 이런걸까요? 좀 읽으며 기다리면 괜찮아질까요? 하나 하나 개념이 산출되는 방식으로 차곡 차곡 앞으로 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까요. ‘물신주의’라고 우리를 비꼬듯 놀리듯 비판하기 이전에, 왜 그런 상황이 되었는지가 책에서 먼저 서술 되었더라면 기분 안 나빴을 것 같은데요.^o^

 

Q2) p41 “우리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가치 창출이라는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잉여노동으로 잉여가치가 창출될테고 그것이 순이익이 될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표면적으로는 얼마짜리라 불리우며 등가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데 마지막에 가서는 ‘자본가’쪽에선 가치가 창출되잖아요. 
빵집을 예로 들어볼게요. ‘진정으로 선한’ 사장님이 힘들게 가게를 임대하고 고생해서 생산기계와 생산 원자재를 사들이고, 겨우 변덕스런 알바생을 어르고 달래 고용해서 빵을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벌었다고 칩시다. 그 어디에도 도둑질은 없지요. 공정하게 제값 주고 생산수단을 구매했고, 사회적 합의에 걸맞는 노동 임금을 알바생에게 주었고, 소비자와 동등한 교환을 했습니다. 
하지만 빵집 사장은 돈을 벌지요. 왜일까요? 어디에서 가치가 창출되었을까요? 불불노동, 즉 임금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제공했지만 지불 받지 못한 알바생의 ‘보이지 않는 노동’ 혹은 ‘그 부분만큼은 임금이 공평하게 지불되지 않은 영역의’ 잉여노동에서 잉여가치가 창출된거잖아요? 건축사무소도 마찬가지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빵집 사장님도 건축사무소 사장님도 윤리적으로는 선한 분들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마르크스가 누차 강조하는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사장님이 쏟아 부은 사장 개인적 노동은 어떻게 계산할 수 있는가요? 
가게임대+생산수단&원자재구매+임금지불+’사장님의 노력’   그런데도 순이익(잉여가치)이 남는 이유는 오롯이 노동자의 잉여노동을 착취해서 라고 마르크스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좀 더 공부를 해야겠지만요. 스포일러로 강사님께서 제 궁금증에 미리 답변 주실 수 있으신지 여쭙습니다.

 

Q3) p82 “1)가치의 실체로서 노동은 구체적 유용노동이 아니라 추상노동이라는 것이다. 2)상품의 가치를 규정하는 노동의 양이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애덤 스미스에서 리카도에 이르는 ‘노동가치설’과 마르크스의 ‘노동’을 보는 관점에 어떤 변별점이 있는지 항상 궁금했었거든요. 이 책에서 어떻게 다른 건지 간략히 정리를 해 주셔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