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5에 있었던 4장 세미나에 대한 후기입니다.
이번 오프라인 모임에서 나왔던 이야기 중 하나는 책에 나온 '주파수와 공명'과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책에서 주파수는 정보의 의미화에 관련되고, 공명은 소통의 주체화에 관련된다고 합니다. 이때 공명이란 어떤 주파수에 동조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즉, 공명의 주체화는 특정한 주파수라는 의미화에 결부되어 일어납니다.
세미나의 논의에서는 방금 마지막 문장에 나온 주파수와 공명의 관계(혹은 의미화와 주체화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과연 주체화가 특정한 의미화에 대해서만 일어난다고 할 수 있는가? 의미화 없는 주체화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는가? 의미화 없는 주체화로써 떠올린 것은 영화 <모던 타임즈>에 등장하는 찰리 채플린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찰리 채플린은 공장 기계의 리듬에 완전히 공명하여 행동합니다. 달리 말해, 찰리 채플린이 공장의 기계적 배치 속에서 주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 주체화는 의미화와 관계 없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의미화를 생각하지 않고도 주체화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은, 현실에서는 의미화에서 떨어진 주체화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찰리 채플린의 경우, 그는 단지 공장의 기계적 배치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장의 언표행위의 배치 속에도 동시에 속해 있습니다. 이 언표행위의 배치 속에서는 다양한 의미작용이 이루어질텐데, 거기엔 공장 노동자들을 규율하는 명령어들이 있을 것입니다. 찰리 채플린의 주체화는 바로 이런 맥락들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기에, 그의 주체화를 의미화 없이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의미화와 주체화의 문제가 저에게는 제법 복잡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개념들을 언표행위의 배치와 기계적 배치의 구분과는 어떻게 관계지어 생각해야 할지도 고민됩니다. 일단 5장에서 의미화와 주체화의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다룬다고 하니, 다음 세미나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