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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왜.끊.곁 8장 전반부 발제

김희선 2021.02.06 11:52 조회 수 : 69

1. 삶에 반하는 삶이 어떻게 삶으로부터 나오나?

생존욕, 성적 욕망, 건강, 성취감과 같은 삶의 여러 기쁨과 행복을 향유하고 싶다는 욕망(의지)를 부정하는 태도가 금욕주의이다. 하지만 이는 삶 자체의 관심사에 명시적으로 상충되는 이상이며, 자기모순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니체는 금욕주의조차 삶에 대한 욕망의 표현이고, 힘에의 의지의 산물일 수 있다고 하였다.니체는 금욕주의가 패배와 실패, 좌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려는 방어기제라고 본다. 이는 실패하고 좌절한 생명의 힘이 그 방향을 바꾸어 반동화된 힘이다.
패배자와 실패자들의 자기경멸은 허무주의 그리고 죽음, 자기경멸 대신 자신을 패배시킨 것들에 대한 원한 어린 경멸을 퍼붓는 이 두가지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약한 자들의 이런 생각이 긍정적 가치를 가지는 덕목이 될 때, 약한 자들의 저주는 도덕과 선, 심지어 정의가 되기도 한다. 건강과 성공, 강함과 자부심 같은 것에 대한 원한과 적개심이 선함과 겸손의 아름다운 영혼이란 ‘덕목’이 될때, 그것이 바로 금욕주의의 이상이 된다. [사람들을 ‘왜소하게 만드는 덕’](차라투스트라/3부)

 

2. 약자들로부터 강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연민과 동정은 강자들을 금욕주의적 이상의 함정으로 빠트리는 길이며,이렇게 되면 건강한 자와 병든 자, 강자와 약자의 위치가 헷갈리게 된다. 약자들의 도덕 앞에서 강자들은 자신의 힘과 의지를 자책하기 쉽고, 그것을 억압하고 억제하는 ‘미덕’에 사로잡히기 쉽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약자들의 대변자가 되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전하려는 '약자들의 전령'인데, 그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강자’들을 심판하고 약자의 미덕을 ‘강자’에게 강요한다. 그렇기에 ‘약자들의 전령을 조심하라!’(약자의 전령이 되는 것을 조심하라)
약자들의 전령 주변에 약자가 모여들며 불평이 ‘정의’를 자처하게 될 때, 공동체는 진정한 위험에 빠지게 된다. 약자들의 이런 도덕과 관념은 여론이나 대세를 형성하기 쉽기 때문에 강자들에게 강요되기 쉽다. 그렇기에 니체는 ‘건강한 자와 병든 자가 바뀌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하며, 능동적인 힘이 반동적인 힘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강자들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위험은 ‘인간에 대한 거대한 혐오’(약자들의 감정과 도덕, 이상과 언행을 경멸하고 혐오하는 것) 혐오는 인간에 대한 혐오로, 삶에 대한 허무주의로 이끈다. 이는 강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으로 동정-금욕주의의 전도된 도덕 / 혐오-삶에 대한 허무주의 이끈다.
집단 속에서 활동하다 보면 비천한 자, 왜소한 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을 피하기 위해 원래 하고자 하던 일을 하지 않게 되거나 하던 일을 접게 된다면, 비천한 자들 때문에 강자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 사이에 좋은 이들이 언제나 있음을, 그런 이들을 만날 가능성이 더 큼을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이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시작할 이유가 생기게 만들어준다.
반동적 감정이 공동체 내에서 튀어나오게 된다면 공동체는 갈라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원한과 미움의 감정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언행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것이 내가 강자인지 약자인지를 알아보는 쉽고 확실한 방법이다.

 

3. “누가 그랬어?”의 주체 철학

니체는 ‘병자를 간호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건 건강한 자의 임무가 될 수 없다’ 라고 하였다. 병든 자를 간호하고 치유하는 이는 ‘금욕주의적 성직자’로, 병든 세상에서 병든 자를 간호하고 치유하기 위해 스스로 병드는 자이다.  약자를 지배하고 구원을 위해 -병자 스스로를 맡기게 하기 위해 독을 뿌리는 것- 이다.
'고통의 의미없음'은 고통 속에서 고통을 낳은 생리적이고 신체적 이유를 찾는 대신, 자신이 죄 없다는 생각을 근거로 ‘고통의 부당함’을 발명하고 주장하는 것 이다. 이는 고통에 대한 원한의 감정으로 나의 고통에 대해 누군가 책임이 있다 생각하기 때문에 고통을 야기한 행위자를 찾도록 한다. (감정 배출을 통해 고통을 잊는 것) 하지만 이는 생리적 고통에 심리적 고통(원한의 감정, 심리적 상처)을 추가하는 일이다.
원한은 책임을 지울 ‘누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고, 자유의지란 ‘책임’을 묻고자 하는 이런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주체는 책임지는 자-책임을 물어야 하는 자이고, 책임을 묻는 것은 원한의 감정을 표출한 것으로 주체 또한 그로 인해 반동적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금욕주의 성직자는 이 원한의 방향을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향하도록, 선한 자 자신을 향하도록 돌려놓는다. 이는 속죄의 삶의 방향성이다.

 

4. 고통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금욕주의 성직자들이 병자들의 삶/생활을 바꾸는 방법을 창안하지만, 그들을 의사라고 할 순 없다. 그들이 창안한 방법은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완화하고 위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통의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것과 완화시키는 것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
고통이 환경 속에서 생명의 지속에 필수적이기에 고통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고통을 삶이 내게 보내 준 ‘연습문제’로 받아들이기. 이는 원한에 감정에 사로잡히는 병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고통과 실패의 경험을 연습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없는 삶을 살게 해주는 결정적 시험이 없고, 이는 삶에는 오직 연습문제만 있음을 뜻한다. 시험도 ‘연습문제’도 고통과 함께 오기 때문이다. 연습문제의 영원회귀만이 있을 뿐이다. (영원회귀의 윤리학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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