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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욱

[제목] 니체의 생각, 나의 생각. 그 퍼스펙티즘

 

[서론] 니체의 힘에의 의지와 위험선호의 함의는?

  • 니체의 힘에의 의지가 보는 세계와 고통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 세계에서 위버맨쉬는 무엇인가?
  • 위버맨쉬는 항상 힘에의 의지를 지니고 위험을 즐기는,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데, 어떤 함의를 가지는가?,

[본론1] 힘에의 의지는 관계주의, 퍼스펙티즘

  • 니체는 이 세계 전체, 온 우주 전체가 바로 이런 의지들의, 힘에의 의지들의 거대한 관계네트워크라고 이해한다. 세계는 힘에의 의지 세계인 것이다. 힘에의 의지가 활동하고 운동하는 의지작용이자 힘겨루기 관계를 맺는 의지작용이기에 세계는 거대한 관계의 세계다. 쌍방의 의지를 피드백받는 관계에서 각각의 존재는 자신의 생각으로 사실을 해석하므로 절대적인 사실은 없고 해석은 다원적일 수 밖에 없다.  “있을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은 없다”
  • 니체는 인간을 힘에의 의지작용 Wille zur Macht이 총체적으로 수행되는 장소로 이해한다. 고통은 바로 그 의지의 본성, “항상 상승적 삶을 추구하는” 그 본성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상승을 추구하기에 그 불만족 상태의 불쾌감. 그것이 고통인 것이다. 힘에의 의지작용은 이렇듯 항상 고통받는 의지이다.
  • 니체는 위버멘쉬를 인간 존재의 의미이자 실존적 목표로 제시한다. 위버멘쉬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진정한 인간으로, 삶을 진정한 삶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버멘쉬로 사는 것은 쉽지 않은데 우리 안의 “짐승”때문이다. 위버멘쉬는 첫째로 항상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인간이라는 점이다. 둘째로 자유 정신의 소유자이다. 기존 판단과 관습, 습관을 넘어서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구성한다. 셋째, 주인 의식의 소유자이다. 넷째 자신의 삶을 예술 작품처럼 조형하는 삶의 예술가이다. 사랑과 긍정을 가지고 있다. 다섯째 세계가 거대한 관계 세계라는 것을, 자신도 그 한개의 계기라는 점을 인정한다.
  • 힘에의 의지를 힘을 통한 지배의지로 해석하여 많은 오류가 있었다. 관계주의-상호주의라는 관점에서 힘에의 의지를 해석해야 일방주의-제국주의라는 오역을 피할 수 있다. 이성과 비이성, 도덕과 비도덕이라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버리고, 관계주의와 다원주의를 논하다니 대단한 이론이다. 위버멘쉬로 살아가기 위해 욕망을 올바르게 관리해야 한다. 쉽지 않다. 항상 내 자신을 넘어서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니. 당장 체중계와 다이어트가 아른거린다.  

 

[본론2] 삶을 위한 삶. 위험을 즐기라

  • 니체에 의하면 인생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삶을 위한 삶”이고, 다른 하나는 “삶을 거스르는 삶”이다. 전자는 번성하고 성장하고, 후자는 퇴화하는 삶, 데카당스이다. 이성적이며, 밝고 냉정하고 신중하고, 의식적이기는 해도 본능은 없으며 본능에 대적하는 삶은 그 자체 하나의 병(데카당스)일 따름이다.
  • 진정한 삶은 충동, 욕망, 쾌락, 본능의 부정과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제까지 부정되고 배척되었던 것, 우리 몸과 쾌락, 본능과 욕망을 인정함으로서 세속적인 삶의 유혹과 맞서 싸우면서 자신만의 이상을 만들어 갈 때 가능한 것이다. 긍정적인 금욕주의는 수신술이다. 
  • 수신술은 하나의 목적이 있다. 니체는 삶에 대한 자신의 이유인 “왜?”를 가진자는 거의 모든 방법인 “어떻게?”를 견뎌낼 수 있다고 한다. 실존의 방법을 찾아낸다. 인생은 목적을 찾을 수 있는가? 인생의 목적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본능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획득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 니체는 불멸에 대한 믿음이 세상의 가치를 빼앗아버렸다는 인식으로 신으로 대변되는 영원한 생명을 부정한다. 신과 영혼불멸을 버리고 “참을성 있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죽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을 긍정할 수 있다. 니체는 진정한 삶의 예술ars vivendi은 죽음의 예술 ars moriendi이며, 내일로 내세로 삶을 연기하기 말고, 지금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때 죽도록 하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가르치노라. ‘하긴 결코 제때에 살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제때에 죽을 수가 있겠는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KSA, p96)  서양철학에서 니체는 키에르케고르와 더불어 독일 실존철학의 선구자이며, 베르그손 짐멜과 더불어 생철학의 대표자이다.
  • 실존의 가장 커다란 결실과 향락을 수확하기 위한 비결은 다음과 같다. “위험하게 살지어다. 그대들의 도시를 베수비오 화산가에 세우라. 그대들의 배를 미지의 바다로 보내라. 그대와 동류의 인간들, 그리고 그대들 자산과의 싸움속에서 살라. 그대들 인식하는 자들이여, 지배와 소유자가 될 수 없다면 약탈자와 정복자가 되라.” (즐거운 학문, #283)
  • 세상은 한달 앞을 내다볼 수 없게 급변하고 있고, 회사는 미친 듯한 실적과 업무량을 나에게 부과하고 있다. 어쩔까? 그러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오늘도 버텨야 한다.  회사돈 수십억 투자하고, 매출 천억 규모의 사업보고서를 결재 올리면서, 문득 문득 혹시 시나리오와 다른 방향으로 결론이 나면 어쩌지 걱정도 된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신이 아니고 내일은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일 뿐이다. 그저 오늘을 살아갈 뿐.  . 심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코로나확진자 수와 실업률, 주가와 경제동향을 보면서도 장기투자를 해야하는 상화. 죽음을 각오하고 ‘에코’라는 영혼을 홀리는 노래를 듣지 말아야 살아돌아 갈 수 있다는 헤라클레스의 용기처럼 많은 힘에의 의지를 필요로 한다.

 

[소결]

  •  “오늘 잘 웃는 자가 최후에도 웃는다”(우상의 황혼, 잠언과 화살 43)
  • “짧은 비극은 결국 언제나 영원한 실존의 희극에게 자리를 물려주거나 뒤로 물러나기 때문이다.”
  • 이런 난세(변동성이 크다는 의미에서)를 살아내기 위해서 ‘힘에의 의지’를 가득채운 강인한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를 필요로 한다. 내일은 없다. 오늘 지금이 중요하다. 고통을 즐기면서, 가끔 큰소리로 부르짓으면서 자신의 최대 역량을 살아가는 자, 힘에의 의지의 인간이 되고자 한다.

 

 

 

참고서적

백승영 외, 인생교과서 니체, 21세기북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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