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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버멘쉬란 어떤 존재인가?

에세이를 전개하는 주요개념인 '위버멘쉬'에 대해 좀더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물론 너구리의 해석처럼 위버멘쉬를 '이상적 자기의 추구'로 보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니체의 텍스트 속에서 너구리가 새로운 힌트를 얻을 것으로 생각해요 ^^

이번 시즌의 [권력의지]에서 위버멘쉬는 다음과 같은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4권 훈련과 육성 > 1장 위계 > 3절 고귀한 인간, 4절 대지의 주인, 5절 위대한 인간, 6장 미래의 입법자

 

2. 위버멘쉬가 강자보다 높은 다른 위계에 속하는 것은,

강자가 시대의 지배적 가치에 저항하는 존재라면, 위버멘쉬는 미래의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는 존재입니다.

즉 강자가 시대와 '대결하는 자'라면, 위버멘쉬는 시대를 '넘어서는 자'로 정의될 것입니다.

이것을 개인적 차원으로 접근하면, 

시대와 사회에 규정되는 우리의 존재는 시대적 가치 속에서 숨쉬고 사유하며, 다수적 욕망을 욕망합니다. 따라서 

현재의 자기를 극복하는 과정은 곧 시대적 가치와 욕망을 넘어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즉 강자가 현재의 자기와 '대결하는 자'라면, 위버멘쉬는 현재의 자기를 '넘어서는 자'입니다. 

 

3. 다른 텍스트의 '위버멘쉬'에 대한 니체의 말을 들어볼까요?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들은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지금까지 모든 존재자는 자기 자신을 능가하는 무엇인가를 창조해왔다. ······ 인간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것이다. 인간에게 사랑받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 [······] 보라, 나는 항상 스스로를 극복해야 하는 존재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문」, 「자기극복에 대하여」)

‘위버멘쉬’라는 말은 최고의 완성된 유형을 지칭하는 말로서, ‘현대’인, ‘선한’ 자, 기독교인과 여타의 허무주의자들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 그런데 위버멘쉬라는 말은 도처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의도하는 가치와는 정반대의 가치로 순진하게 이해되고 있다. 말하자면 위버멘쉬는 더 높은 인간의 ‘이상주의적인’ 전형으로, 반은 ‘성인’이고 반은 ‘천재’로 이해되는 것이다. ······ 위버멘쉬라는 말을 두고 어떤 소같은 학자들은 나를 다윈주의자가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한다. (『이 사람을 보라』 중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오늘날 소심하기 짝이 없는 자들은 묻는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묻는 최초이자 유일한 자이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극복될 수 있을까?”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위버멘쉬이다. 바로 그가 내게 유일자이다. 인간도 아니고, 이웃도 아니며, 가장 불행한 자도 아니고, 가장 슬퍼하는 자도 아니며, 가장 선한 자도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보다 지체높은 인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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