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미나 이후 순영님께서 질문하셨던 # 825에 대하여 고민해 보았습니다.
"군중속에서와 수도원식당*에서의 구별: 오늘날 사람들은 군중속에서는 사기꾼이어야 하나, 수도원식당에서는 명인이 되고자 하며, 오직 그 뿐이다. 이러한 구별을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현 세기의 특유한 천재이자 두 방면에서 모두 위대한 자들: 바로 빅토르 위고와 리하르트 바그너의 위대한 사기행각이며, 그러면서도 그들은 진정한 명인의 기질을 다분히 지니고 있어서 세련된 사람들에게도 예술 그 본래적 의미의 만족을 준다.
그로 인한 위대성의 결여: 그들은 교차시각(wechselnde Optik)을 가지고 있어서 때로는 가장 조잡한 욕구를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가장 세련된 것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 수도원식당(Zoenakel)은 성찬이나 전례를 위한 특별하고 경건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왜 번역서에서는 "선택된 자"라고 번역했는지는 의문이네요)
니체가 사용한 '교차시각'이라는 용어는 대중에 대한 바그너의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를 통렬히 비판하기 위하여 니체가 만들어 낸 표현인데,
훗날 토마스 만이 위 용어를 이중시각(doppelte Optik)이라는 말로 바꾸어서 오히려 니체를 비난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니체에게서 무엇보다도 자기극복자를 보았다. / 나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신용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그에게 대한 나의 사랑의 이중적 열정을 부여했고/ 거기에 깊이를 주었다." - 토마스 만(최순봉, '토마스 만의 니체 수용', 인문논총 제30집 71면이하 참조)
토마스 만은 혐오와 애정이라는 양가감정을 가지고 니체를 비판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토마스 만의 인용구에서 순영님의 음성이 들리는 건 왜일까요?
2. 덧붙여 # 802의 마지막 문장은,
"추함이 우리의 내면에서 잔인성 욕구를 약하게 자극한다"가 아니라 "추함이 우리의 내면에서 잔인성 욕구를 '조용히(leise)' 자극한다"라고 해석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추함이 잔인성 욕구를 "약하게 만든다"는 뜻으로 잘못 읽히면 곤란할 것 같아서요.. ^^;;
3. 마지막으로, 어제 뒷풀이 시간에 "아내를 이해해 주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어느 남편 분의 고충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는데요.."이해"보다는 "공감"이 더 중요하다는 여성들의 반론에 대해, 그 고충남께서는 "도대체 공감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라는 표정으로 화답하셨습니다. ^^;;
그 고충남께 아포리즘 809를 빌어,
"공감(Sympathie)이란 도덕적 감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어떤 암시에 대한 생리적 예민함과 관련되어 있다. (..)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생각 그 자체를 전하지 않는다. 단지 움직임, 즉 모방 신호(mimische Zeichen)를 보내면, 그것이 곧 생각으로 귀결되는 것 뿐이다." 그러니 아내 분께서 우울한 신호를 보내면 함께 우울함을 모방하고, 즐거운 신호를 보내면 즐거움을 모방하는 것이 공감이 아닐까..
라는 말을 전합니다.
모두들 공감하는 여름 보내세요.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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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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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
글뤼바인님의 글을 저도 여러 생각을 하게 되네요.~
공감... 너무 많이 사용하지만 정확한 그 뜻을 이해하는 이가 드문 단어.. 공감!
공감을 쉽게 설명하는 예로는 이런 예가 있어요. ^^ 글뤼바인님의 말과 같구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제가 어릴 때(초등1) 학교에서 똥을 바지에 샀는데 창피했어요."그런 말을 했다고 쳐요.
그럼 사람들이 쉽게 "어머~ 창피했겠다~"이런 말을 해요.
이건 공감이 아니에요.
공감은.. 사실 질문을 통해서 다가 설 수 있어요.
최소한의 공감을 시도하려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어?/ 그 때 반 아이들 반응이 어땠어?/ 선생님은 계셨어? 널 도와준 사람이 있었니? / 집에와서는 어떻게 되었어?" 등등의 질문을 통해 그 사람의 세계를 아주 구체적으로 알고, 동시에 내가 똥 싼 그 아이가 되어서 축축한 바지를 느끼고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온전히 그 사람의 상태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거에요.
그런 마음으로 타인의 경험을 들으면... 첫 단계의 공감을 시도하는 거에요.
근데 공감은 거기에 그치면 안되고~ 그 이야기를 현재 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까지 연결을 시켜서 혹은 그 경험이 현재에까지 미치는 영향을 이해해서 그 마음의 표면이라도 느껴보는 거에요.
근데~ 과연 우리가 일상에서 타인에게 그렇게 다가서는 것을 시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공감을 바라고/ 공감을 시도하면서도/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
즉 뭐가 공감인지 모르기에 하지 못하는 거죠...
(그리고 그 핵심에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주 깊이 그리고 온전히 머무는 것을 힘들어하죠...)
그래서 상담자가 되는 과정을 "타인의 고통에 대한 증인이 되는 훈련"이라는 말을 쓰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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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
공감에 대한 자세한 설명 좋네요!!
질문은 곧 관심이고 더 나아가 타인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사건을 인지하는 것 이상으로,
그 사건 너머에 있는 맥락, 넓게는 그의 세계에 대한 적극적, 근본적 이해의 욕구가 담겨있을 때!
수준 높은 공감이라는 점!
저는 그래서 이해와 공감은 떨어뜨릴 수 없다고 생각해요.
너구리님 덕분에 새로이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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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
정말 깔끔한 해석이네요!
저는 교차 시각, 이중 시각이
비판을 위해 활용되었지만 모두 긍정적으로 읽혔어요.
그것이 인간 속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건강하다고 보여집니다.
마찬가지로 순영님의 니체에 대한 호기심과 비판적 사고는 매우 건강하다고 보여요!
모방 신호라는 개념도 흥미롭네요.
모방 신호도 공감의 시작 단계라고 보여집니다. :)
우리가 어떤 것에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는 정도가 모두가 다르듯이
공감을 바라는 정도는 각자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또, 이런 맥락에서 너구리 님이 답해주신
타인에 대한 깊은 관심과 그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를 바탕으로, 그러한 "질문으로써"
상대가 원하는 공감의 정도, 그 강도를 찾아가는 것, 그 자체 또한 우리가 바라는 오로지 그 상대만을 위한 공감일테죠!
공감은 타고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훈련할 수 있다고 본 것이 기억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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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뤼바인님, 섬세하면서도 명쾌한 해석을 읽으면서 저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825 아포리즘에 대해서는 더 깊이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고급/대중 문화의 구별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엘리트 또는 예술가, 스스로를 강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기모순, 진정 '위대하지 못한 특성'에 대한 비판(혹은 비꼬기)일 수도 있다고 문득 생각했습니다.
고충남?!께서 글뤼바인님의 이 글을 꼭 보셨으면 좋겠네요. 저는 이해도 공감도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꼭 분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닐 거 같고요. 고충남님이 아내를, 가장 가깝고 소중한 분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거 같아서 저는 멋진 남편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마 노력하는 마음을 아내분도 알고 계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