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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뤼바인

* 아포리즘 490와 관련하여 

수업시간에도 여쭤 보고 싶었는데요.. 늘 시간이 촉박하여 질문을꺼리게 되더라구요. 

니체 원문에는 "나의 가설은 주체가 다수라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지 않고 "나의 가설: 다수로서의 주체"라고 되어 있어서요.. 주체가 여러개라고 오독되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저만 오독?). 

 

니체는 주체가 100개여서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아니라, 주체는 100개의 분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주체를 100개로 가닥가닥 분절시켜 아예 해체해 버리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거든요. 

니체는 하나의 주체 안에 수많은 세포가 귀족정을 벌이고 있다고 했으니까요.

그 뒤 문장을 대충 살펴 보면, 

고통은 오성에 따른 것이어서 스스로 유해하다고 판단한, 이른바 투사의 산물, 

원인을 밝혀내려는 감정은 시간적으로는 결과가 있고 난 뒤에 오는 것이어서 그것 역시 투사된 추론에 불과하고, 

쾌락은 고통의 일종이며

결국 힘 있는 것은 "의지"일 뿐

주체는 죽어가는 영혼,

관점주의적 형식으로서 숫자(관점의 다양성이 의지를 형성한다는 말 아닐런지요). 

 

결국 "다수로서의 주체"라는 가설은, 주체란 게 결국 "여러 세포들의 귀족정(Aristokratie)"에 불과하다는 말을 한 번 더 강조한 것이 아닐지요.. 

 

* 덧붙여 "다수로서의 주체"라는 개념이 상대적으로 많고 적은 이를테면 다수 - 소수(Mehrheit-Minderheit)의 개념인 것 같지는 않고요 그냥 숫적으로 많고 다양하다는 의미의 다수(Vielzahl)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요.. 제 생각이 틀린 것인지도 궁금하네요.. 

 

니체의 "수" 개념은 늘 헷갈려서요. 지난 챕터에서 소수가 되라는 말이 결코 소수자(약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강한 자/지배하는 자/귀족이 되라는 말인 것처럼.. 

 

(결국 이번 챕터에서 다수(Vielzahl)로서의 주체가 되라는 말은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말이고, 지난 챕터에서 소수(Minderheiten)가 되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희귀한 자"가 되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 아포리즘 484는 참 재미있는 문장인데, 번역이 모호하여 아쉽더라구요. 

"생각되어진다: 고로 생각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명제를 "생각되어진다: 고로 생각이 존재한다"로 바꾸어 놓으면 생각의 실재성이나 생각의 외양(Scheinbarkeit)은 퇴각시키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논의가 가능한데, 왜 "생각하는 사람", 즉 주체를 들먹이냐는 말에서.. 니체가 참 재치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은 번역문이 니체를 오독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좀.. 아쉽네요.

니체가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결코 "무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ㅠ  니체의 (결코 명문이라 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을 탐독하는 즐거움 때문에 니체를 읽는 것이지, 어느 누구도 니체에게 "신"의 지위를 부여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물신주의에 빠져 있는 것처럼, 순영님에게도 "신"이 있겠지요. "신이 있는 걸 있다고 하지 없다고 하냐, 진리가 있는 걸 왜 없다고 하냐. 과학이 있는데 왜 없다고 하냐. 이성이 있는데 왜 없다고 하냐.." 자꾸 물으시면 니체가 관뚜껑 열고 일어날지도.. 자꾸만 튕겨내지 마시고 한 번만 양보해 주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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