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 "주체"는 우리로 하여금 몇 가지 비슷한 상태들을 어느 한 가지 토대의 결과로 믿도록 만드는 허구이지만
552 "주체"라는 것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490 나의 가설은 주체가 다수라는 것이다. 다른 주체들에게 명령하는 것이 그 권력이며 그 결과 다른 주체들은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 행동하지 못하는 상상에 지나지 않는 허구이지만, 다수이며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도 하는 "주체"
493 진리란 것은 그것이 없을 경우에 어떤 종의 생명이 보존되지 못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오류이다.
535 나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진리"가 반드시 오류의 반대를 의미하지 않지만, 진리는 단순히 다양한 오류들의 상호 관계를 의미할 뿐이다.
537 무엇이 진리인가? 타성이다. 만족을 안겨주면서 정신적 힘의 소비를 최소화하는 가설이 곧 진리인 것이다.
540 진리의 종류도 많을 것임에 틀림없으며 따라서 진리란 것은 절대로 없다.
-> 진리는 오류이면서 오류들의 관계이면서 타성이면서 가설이면서 많으면서 절대로 없는 것.
551 원인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 착각일 뿐이다.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
...인과관계로 해석하는 것은 하나의 기만이다.
498 우리의 지성도 어느 정도는 생존 조건에 따른 결과물이다.
-> 다른 철학자들이 말하는 원인과 결과는 기만이고 모든 원인과 결과는 없지만 니체가 말하는 원인과 결과는 있는 것(니힐리즘의 원인, 노예도덕의 승리원인, 노예도덕의 탄생원인, 형이상학의 원인, 그리고 결과들)
524 지성과 이성, 논리 등(이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상상 속의 가공물이며 실체이다)
480 "마음"과 이성, 사고, 의식, 영혼, 의지 또는 진리 같은 것은 절대로 없다.
523 정신 현상을 관찰하는 것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농아가 사람의 입술 움직임을 근거로 말을 예측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내면 세계에 적절한 보다 세련된 신체기관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인과 관계를 날조해낸다. 생각들과 감정들의 순서는 그것들이 의식에 보이게 되는 순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순서가 원인들의 고리와 어떤 관계가 있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569 우리의 심리학적 관점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의해 결정된다.
1)...그리하여 감각 인상들의 모호함과 혼동이 논리적으로 다듬어진다.
2)...우리가 추측하고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 정신 현상을 관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그것들의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가 없으면서 니체가 앞서 분석한 인간에 대한 심리학적 통찰은 위대한 것.
-> "사실"도 없고 "논리"도 없지만 니체의 심리학적 관점은 논리적이며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니체.
신은 죽었으나 그 자리를 니체에게 넘겨주었네.
고귀한 것은 증명되지 않나니. 그저 믿을 뿐.
주 니체 그리스도여, 아멘.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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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뤼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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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우
ㅎㅎ니체의 글을 최대한 니체가 쓴 그대로 이해하려고 했을 뿐 단 한번도 튕겨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니체의 글을 어떻게든 옹호하려고 불필요한 맥락을 추가하는 것이 튕겨내는 것 아닐까요? 니체를 니체처럼 읽는다면 그런 수고로움은 없을 듯 합니다. 니체가 말하는 강자는 외부의 지배적인 입법을 수용하지 않으니 니체의 입법을 따를 이유가 없겠지요?
니체가 논리, 진리, 이성, 원인, 결과, 정신현상 등을 없거나 알 수 없다며 다른 사람들의 이론들은 쓰레기라고 비난해놓고
정작 본인의 이론을 말할 땐 논리도 있고 원인도 있고 인과도 있는 것이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설마 니체가 틀리지는 않았겠지요. 그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이런 기적같은 힘을 가진 니체를 감히 "신"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이 많은 추종자들의 믿음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해서 남긴 글입니다.
1.
주체가 마치 과학에서의 원소처럼 더 이상 쪼갤수 없는 최소단위라는 가정이 있다면 주체가 100개로 쪼개질 경우 그것은 주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귀족정을 이루는 세포들은 다른 세포들과 달리 무언가를 결정하겠네요? 그러면 그 귀족정 세포가 주체입니까? 다시 귀족정 세포들도 분절되려나요? 그렇게 분절된 또 다른 개체를 무엇이라고 부를 작정입니까.. 이렇게 무한 퇴행이 되지 않을까요? 또, 주체는 아무것도 행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변화하는 것이 주체라는 표현도 앞뒤가 안맞죠.
2. 아포리즘484
'생각한다'고 해서 생각하는 '나'까지 입증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생각'의 존재를 밝힌 것이지 '생각'의 주체까지 밝힌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아포리즘 484에 나온 내용은 설득력이 있죠.(그리고 여기에도 '논리'와 '논박'이 존재하죠. 니체가 없다고 말한 그것들이 명백하게.)
하지만 데카르트 코키토를 비판한 아이디어는...글뤼나인님의 말씀대로 니체의 재치가 만들어낸 것인지 아니면 기존에 있었던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자신의 색각인양 마음대로 가져다 쓴 것일지는.. 조금만 찾아보면 밝혀질 것입니다.... 저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 데카르트 비판은 제가 다른 책에서 본 것인데.. 니체의 아이디어라고 언급된 부분은 없었습니다. 데카르트와 니체의 시대적 간격은 우리와 니체의 간격보다 넓습니다. 그 사이에 많은 철학자들이 존재했구요.
칸트의 것. 흄의 것. 헤겔의 것. 아리스토텔레스의 것. 유명론자들의 논리 등등 가져다써놓고 출처를 밝히기는커녕 자기가 이제 막 주창한 듯이 서술하고 있는 정황들을 보면.. 이것이 또 니체의 강자에 어울리는 행동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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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글뤼바인님, 수업 시간에 꼭꼭 질문도 해주시고 이야기도 많이 나눠주세요!!
그리고 번역에 대한 아쉬움은 저도 커요. 독일어를 할 수 있다면, 그 세세한 맥락을 다 읽어낼 수 있을만큼 잘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해요.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열심히 읽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거 같아요. 이상한 번역?! 있으면 이야기해주세요~^^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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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뤼바인
니체의 글에 불필요한 해석을 덧대는 것이 반니체적이라는 말에는 백번 동의합니다. 니체를 억지로 해석하고 그 해석을 남에게 강요하려 한다면 각자 집에서 혼자 읽느니만 못할 것 같아요. 니체를 혼자 읽지 않고 같이 읽는 것은, 니체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것 아닐지요. 그래서 저는 매주 분량을 나누어 맡더라도 텍스트를 하나하나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니체를 읽으면서 가장 유쾌한 부분이 순영님이 지적한 "자기모순"에 있는 것 같아요. 그 많은 문헌을 읽고 종교에 탐닉하고 그 많은 생각을 하고 그 누구보다 형이상학적인 사유를 하면서 정작 다 부질없다고 하고 모든 게 생리적인 문제라고 하니까.. 유쾌하지 않나요..
그럼에도 순영님이 "니체처럼 사유하기" 위하여 니체를 "까는" 것이라면, 격하게 응원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까" 주세요~
* 아포리즘 490와 관련하여
수업시간에도 여쭤 보고 싶었는데요.. 늘 시간이 촉박하여 질문을꺼리게 되더라구요.
니체 원문에는 "나의 가설은 주체가 다수라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지 않고 "나의 가설: 다수로서의 주체"라고 되어 있어서요.. 주체가 여러개라고 오독되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저만 오독?).
니체는 주체가 100개여서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아니라, 주체는 100개의 분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주체를 100개로 가닥가닥 분절시켜 아예 해체해 버리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거든요.
니체는 하나의 주체 안에 수많은 세포가 귀족정을 벌이고 있다고 했으니까요.
그 뒤 문장을 대충 살펴 보면,
고통은 오성에 따른 것이어서 스스로 유해하다고 판단한, 이른바 투사의 산물,
원인을 밝혀내려는 감정은 시간적으로는 결과가 있고 난 뒤에 오는 것이어서 그것 역시 투사된 추론에 불과하고,
쾌락은 고통의 일종이며
결국 힘 있는 것은 "의지"일 뿐
주체는 죽어가는 영혼,
관점주의적 형식으로서 숫자(관점의 다양성이 의지를 형성한다는 말 아닐런지요).
결국 "다수로서의 주체"라는 가설은, 주체란 게 결국 "여러 세포들의 귀족정(Aristokratie)"에 불과하다는 말을 한 번 더 강조한 것이 아닐지요..
* 덧붙여 "다수로서의 주체"라는 개념이 상대적으로 많고 적은 이를테면 다수 - 소수(Mehrheit-Minderheit)의 개념인 것 같지는 않고요 그냥 숫적으로 많고 다양하다는 의미의 다수(Vielzahl)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요.. 제 생각이 틀린 것인지도 궁금하네요..
니체의 "수" 개념은 늘 헷갈려서요. 지난 챕터에서 소수가 되라는 말이 결코 소수자(약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강한 자/지배하는 자/귀족이 되라는 말인 것처럼..
(결국 이번 챕터에서 다수(Vielzahl)로서의 주체가 되라는 말은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말이고, 지난 챕터에서 소수(Minderheiten)가 되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희귀한 자"가 되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 아포리즘 484는 참 재미있는 문장인데, 번역이 모호하여 아쉽더라구요.
"생각되어진다: 고로 생각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명제를 "생각되어진다: 고로 생각이 존재한다"로 바꾸어 놓으면 생각의 실재성이나 생각의 외양(Scheinbarkeit)은 퇴각시키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논의가 가능한데, 왜 "생각하는 사람", 즉 주체를 들먹이냐는 말에서.. 니체가 참 재치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은 번역문이 니체를 오독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좀.. 아쉽네요.
니체가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결코 "무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ㅠ 니체의 (결코 명문이라 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을 탐독하는 즐거움 때문에 니체를 읽는 것이지, 어느 누구도 니체에게 "신"의 지위를 부여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물신주의에 빠져 있는 것처럼, 순영님에게도 "신"이 있겠지요. "신이 있는 걸 있다고 하지 없다고 하냐, 진리가 있는 걸 왜 없다고 하냐. 과학이 있는데 왜 없다고 하냐. 이성이 있는데 왜 없다고 하냐.." 자꾸 물으시면 니체가 관뚜껑 열고 일어날지도.. 자꾸만 튕겨내지 마시고 한 번만 양보해 주심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