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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뤼바인

너구리님이 부재한 가운데, 어제 저희는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나"(데카르트)를 죽였고, 선험적이고 생득적이라던 "인과론적 사유방식"(칸트)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었습니다. 

 

인과론을 버리자고 하니 순영님께서, 그럼 그동안 니체가 기원을 찾아가며 도덕도 무의미하고 종교도 무의미하다고 논증한 것이 인과론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논박하여 잠시 숙연해졌었는데요. 집에 와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너구리님의 질문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아서 용기내어 댓글 남깁니다.

 

인과론이란 원인과 결과 사이에 필연적인 관련이 있음을 전제로 하여, 그 필연성을 탐색하는 학문이 아닐까 합니다. 인과론에 대해서는 데이비드 흄과 같이, 원인과 결과 사이에 필연관계란 존재할 수 없고 무수히 많은 개연적인 조건들이 존재할 뿐이라고 반박한 사람도 있겠지요. 니체는 흄의 관점에서 인과론을 부정하려 한 것 같지는 않고요, 인과관계를 탐색하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점을 설파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인과론의 무용성을 논증하는 방식이 중요할텐데요. 앞에서 말한 니체의 이른바 "계보학적 사유방식"을 인과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계보학은 쉽게 말해 족보의 진위를 밝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성을 규명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대상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거칠게 비유하자면, A가 살해당했을 때 자살인지 재해사인지 중독사인지 행려병사인지 사고사인지 밝혀 나가는 검시관의 작업이 인과론이라면, A가 연쇄살인을 저질렀고, 어릴 때 범죄자들의 소굴에서 자랐으며 그의 아버지가 그를 그 곳에다 버렸고, 그의 어머니 역시 그가 태어나지 않기를 바랐으므로 그는 애시당초 태어날 운명이 아니었다(?)라고 해명한다면 이는 계보학적 사유에 가까울 것입니다. 

 

결국 인과론과 계보학은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인데요, 인과론은 원인과 결과 사이에 필연성을 찾아냄으로써 결과의 정합성을 밝혀 내는 데에 목적이 있다면, 계보학은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대상의 존재가치 그 자체를 "부정"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 같아요.

 

다시 여성학으로 돌아오면, 바로 이러한 계보학적 사유방식이 현대 여성학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미국의 여성주의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가 인간의 성-정체성을 생물학적 토대인 Sex로 규정하는 본질주의적 규정에 반대하여 성-정체성을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고 이를 Gender로 표기하자고 주장한 것 역시, 성-정체성을 사태의 기원이나 원인으로 보지 않고, 제도, 절차, 담론의 결과물로 간주하는 사유 방식, 즉 계보학적 사유방식을 차용한 덕분이라고 합니다. 버틀러의 계보학적 사유는, 푸코에서, 푸코는 다름아닌 니체에게서 계보학을 차용한 것이고요.  

 

계보학적 사유는 여성학 외에 여러 학문에 영향을 미쳤고, 지금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론들이 알고 보면 니체의 계보학적 사유방식을 통해 낡은 사고를 격파한 결과물인 경우들이 종종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러한 사유방식 외에 니체가 실제로 살면서 섹스나 젠더, 혹은 "성적 욕망이나 성적 경험"에 대해서 심도있게 고민하였느냐, 그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여자에게 가려면 채찍을 들고 가라느니, 여자들은 암소같다느니.. 여성을 향한 니체의 독설(투사적 혐오?)은 이미 유명하니까요..(동성에 대한 감정은 어땠는지 잘 모르겠어요 ^^;;)

 

"니체가 여자를 향해 퍼부은 독설은 전부 자명한 진리인 양 제시되지만, 역시나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증거로 지지되지 않으며, 여자에 관한 경험은 거의 누이동생에 국한되었다." - 버트런드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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