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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에 대한 니체의 퍼스펙티브적 긍정

우리에게 까다로운 독일어 원문독해의 기쁨(?)을 안겨주시는 글뤼바인 덕분에, 우리세미나가 한층 깊고 풍성해지는 것 같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이 남는 글입니다.! 다비도 그러하고 글뤼바인 역시 삶에서 종교의 의미가 특별한 분들이니 만큼, 니체의 종교에 대한 퍼스펙티브(#61)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니체의 퍼스펙티비즘Perspectivism은 그 자체로서 강자의 무기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종교에 대한 니체의 퍼스펙티브적 긍정은 놀랍습니다. 특히 [힘에의 의지] 뿐 아니라 니체의 저작 모든 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처럼, '니체가 기독교적 사유에 어떻게 비판적인지'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 3장에서 퍼스펙티브적 종교관(#61)과 독단주의적 종교관(#62)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선악의 저편] #61에서 니체는 '힘에의 의지' 차이(인간유형)에 따라 종교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종교를 어떻게 긍정(활용)할 것인가를 말합니다. 글뤼바인의 종교에 대한 태도변화도 우리 신체가 갖는 '힘에의 의지'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 신체가 강할 때 종교는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만, 우리 신체가 약해지면 종교는 쉽게 우리를 지배하려 들 것입니다. 

 

2.  [선악의 저편] #61 퍼스펙티브적 종교관 

[종교 일반의 의미 :: 인류의 육성ㆍ교육수단] 자유정신의 철학은 인류의 총체적 발전에 양심을 지닌 포괄적인 책임을 진 인간이다. 자유정신의 철학은 인류의 육성사업교육사업을 위해 종교를 이용한다. 종교의 속박ㆍ보호 아래 다층적이고 다양한 인간 종류가 육성된다.

[첫째 유형, 강자에게 종교의 의미] 강한 자, 독립적인 자, 명령하도록 준비된 자에게 종교란, 저항을 극복하고 지배할 수 있는 수단 이상이다. 그것은 지배자와 예속자를 공동으로 묶는 유대의 끈이고, 예속자의 양심이며 복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속마음을 지배자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둘째 유형, 은둔자에게 종교의 의미] 만일 고귀한 혈통을 지닌 개인이 높은 정신성으로 은둔적ㆍ명상적 생활에 기울어질 경우, 종교는 조야한 지배의 소란스러움을 벗어나 안정을 취하게 하고 정치적인 더러움을 벗어나 순수하게 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브라만승려들은 종교조직에 힘입어 왕을 임명할 권한을 백성에게 부여했지만, 그들은 왕을 초월하는 과제를 지닌 인간으로 멀리 떨어져 밖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왕보다 위대하다.” (cf. 왕보다 자유로운 노예, 왕에게 휘둘리지 않는 노예)

[세째 유형, 새롭게 부상하는 계층에게 종교의 의미] 지배받는 사람에게도 언젠가 지배하고 준비하는 가르침ㆍ기회를 준다. 종교는 서서히 등장하는 계층을 위한 것이며, 그들 안에서 의지의 힘과 자기지배의 의지가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종교는 더 높은 정신성의 길을 가도록, 자기극복, 침묵 고독의 감정을 시험하는 자극을 제공한다. 천민 종족이 지배자가 되고자 한다면, 금욕주의와 청교도주의는 불가결한 교육수단이다.

[네째 유형, 평범한 사람들에게 종교의 의미] 평범한 사람들에게 종교란 모든 일상이나 총체적인 영혼의 천박함이나 반동물적인 빈곤함을 미화하며 정당화한다. 삶에 대한 종교의 중요성은 고통받는 인간들에게 태양빛을 주며, 자신의 모습을 견딜 수 있게 한다. 에피쿠로스 철학이 했던 것처럼, 고통을 이용하는 것처럼 하면서 정당화시킨다. 그리스도교나 불교의 경건함은 비천한 사람들을 높은 가상적 질서로 들어가도록 가르치고, 참혹하게 사는 현실의 질서에 만족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3. 종교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니체는 '힘에의 의지'라는 관점으로 나누어지는 인간유형에 따라 종교가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며, 그런 방식으로 종교는 인류의 육성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종교는 '고통받는 인간들에게 태양빛을 주며, 자기 모습을 견딜수 있게 한다'고 약자에게 종교가 갖는 의미를 말합니다. (즉 종교는 마취제가 필요한 사람에게 진정제와 마취제의 역할을 합니다.) 약자적 '힘에의 의지'가 우리 신체를 지배하고 그래서 우리가 고통과 절망에 빠져있을 때, 종교가 우리에게 태양빛을 주고 자신을 견디게 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약자적 신체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종교를 활용하여 그러한 약자적 상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고통과 절망을 극복할 수 없는데, 종교나 외부를 활용하지 않는 것도 자신에게 나쁜 일입니다. (극단적으로 스스로를 포기하는 사태로 갈 수도 있으니!) 반대로 우리가 충분히 힘에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데도, 외부에 의존하는 것도 자신에게 나쁜 일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스스로 믿지 못하는 것이니!) 그리고 최종적으로 니체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의 신체는 힘에의 의지의 어떤 상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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