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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의 기술로서 니체철학

덩굴나무가 두번째 세미나에 결석해서 걱정했었는데, 걱정이 무안해지는 좋은 후기입니다. 저절로 댓글이 써지는 후기야말로 다른 사람의 사유를 촉발하는 훌륭한 글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의 공부도 마찬가지겠지요 ㅎㅎ

"니체를 읽다보면, 문득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 혹은 지나치듯 보았던 어떤 일화들이 상기된다. 이렇게 여러 사건과 일들을 환기시키는 것이 니체의 힘(强度)이 아닐지. 그러므로 니체는 매력이 많은, 그 어떤 형태로든 변형이 가능한, 그리고 그 어떤 것과도 접촉이 가능한 무궁무진한 잠재태(개체화, 비개체성)의 철학자다."_덩굴나무

특히 니체에 대한 이런 감각이야말로 니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체를 삶의 기술로 활용하고 있느니까요.... ㅎㅎ 우리의 삶, 우리의 시간들은 다시(니체적으로!! ㅎㅎ) 해석되기를 기다리며 우리 앞에 놓여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해석은 새로운 생성을 낳는 법입니다!

다음은 오타에 대한 사소한 수정입니다. ㅎㅎ :: ① 플라톤주의, 기독교의 극복전략(그리스적?) ..... 그리스적 불멸성(그리스인들이 폴리스라는 집단적 기억을 통해 유한성과 허무를 극복하려고 했던 사유) ② 2부 근대적 무신론적 니힐리즘(전형적 인과론)의 극복전략(상호인과론) ...... 선형적 인과론(선형적=선형태의=직선적)

 

2. 영화 [우리들]에 대한 니체적 해석

 

선(누나) : 야, 윤! 너 바보야? 그러고 같이 놀면 어떡해?

윤(동생) : 그럼 어떡해?

 

선(누나) : 다시 때렸어야지.                                            

윤(동생) : 또?

 

선(누나) : 그래, 걔가 다시 때렸다며... 또 때렸어야지.   

윤(동생) : 그럼 언제 놀아?

 

선(누나) : 어?                                                                 

윤(동생) : 연호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호가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기억은 질병(실체적 사유)이고, 망각이 능력(생성의 사유)이다! 

영화 [우리들]은 저도 아주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초등학생 누나(선)와 동생(윤)이 나누는 이 대화는 정말 흥미롭지요 ㅎㅎ 이것은 니체가 말하는 기억이 어떻게 질병(원한 같은)이고, 망각이 어떻게 능력(새로운 생성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사례처럼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히는 것은, 상대/관계/사건을 고정된 것으로 바라보는 실체론적 사유입니다. 이렇게 상대/관계/사건을 바라볼 때, 새로운 관계의 생성이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과거의 기억은 잊으려고 할수록 더 생각난다'는 것입니다. 윤(동생)처럼 연호와 다시 놀고 싶은 욕망이 새로운 관계를 생성합니다! '과거의 기억을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현재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과거를 재배치합니다.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실체론적 시간관)이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바꾼다(생성의 시간관)!

그런 의미에서 이 역시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생성'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멋진 사례입니다. 선(누나)의 방식대로, 과거의 기억(연호가 나를 때린)에 사로잡혀 윤이 연호와 계속 싸우거나 관계를 단절할 경우, 과거는 현재를 규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끝나지 않고 '원한의 사슬'은 계속될 것이고, 나중에는 싸운 이유는 사라지고 싸운 기억만으로 싸우게 되는 일조자 발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윤(동생)의 방식대로, 놀고 싶은 욕망으로 관계의 배치를 새롭게 할 경우 '원한의 사슬'은 자연스럽게 무화될 것이며, 과거(윤과 연호의 싸움)조차 다시 생성될 것입니다. (윤과 연호는 그 싸움을 통해 상대를 더 잘 알게되었음이 틀림없으며, 이러한 이해는 둘의 관계를 더 깊게 할 것입니다.) 이때 원한의 사슬을 끊어내고 관계를 새롭게 생성하는 자(긍정하는 자, 능동적인 자)가 바로 강자입니다!! 이와 반대로 과거에 집착하여 현재를 과거의 연장으로 만드는 자(부정하는 자, 반동적인 자)는 약자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현재가 과거를 바꾼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현재를 바꾸려는 시간여행이 왜 필요할까?

이처럼 현재를 통해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시간여행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현재의 불행을 낳은 과거를 향해 되돌아가는 시간여행은 영화의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이러한 시간여행이 애초의 의도대로 과거의 변경을 통해 행복한 현재를 만들 것인지, 이것이 영화의 관전포인트입니다. 대부분 주인공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지요. 과거사건 하나를 바꾸자 모든 것이 달라져서, 현재가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ㅎㅎ 어쨌거나 이러한 시간여행은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니체적 시간관을 갖게 된다면,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뭐 있을까요? 현재가 과거를 충분히 바꿀 수 있는데 말이지요 ㅎㅎ 그런 의미에서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은 현재의 생성(현재의 생성을 통한 과거의 변경)이 불가능한 사람이, 선형적 시간에 의존하는 무능력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ㅎㅎ 정말 니체야말로 '과거에 자유!'를 주는 혁명적인 철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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