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우
제8장에서 니체가 기획하고 있는것은 ‘미래의 유럽인’이다. <선악의 저편>을 미래 철학, 혹은 도래하는 것에 대한 서곡으로 간주하는 니체의 태도를 상기해보았을 때 제8장은 일관된 주제를 가진 일종의 작은 변주곡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니체는 미래의 유럽인은 어떻게 등장한다고 보았을까? 그는 그 근본조건으로 민족주의의 극복을 말한다. 니체가 보기에 민족주의란 겉으로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의 정신을 협소하게 만든다. 달리말해, 하나의 집단을 민족화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착취적인 생명의 기질을 강제로 평준화하는 것이며, 취향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가 비스마르크를 우호적으로 평가하다가 종국에는 비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스마르크는 명령하는 인간으서 강력한 민족주의를 통해 애국심과 단결력을 이끌어냈지만 끝내 국민들의 영혼을 천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니체는 어떤 형태의 유럽인을 전망할까? 민족주의가 해체된 유럽은 결국에는 민주화될 것이다. 그 말은 즉, 풍토적, 지리적인 조건들이 점차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두가지 유형의 인간이 등장하는데, 바로 무리동물적 인간과(이는 민주화에 대해 니체가 일관적으로 비판한 특징이다)과 노마드적 인간이다. 노마드적 인간이란 근면하고 복종적인 무리동물적 인간 사이에서 예외적으로 등장하는 매력적인 존재이다. 이들은 민주화의 결과인 초국가적 상황을 이용해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한다. 니체는 흥미롭게도 이들이 전제적 지배자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데, 노마드적 인간이 획득한 다양한 기술과 가면은 다른 무리동물적 인간을 지배하고 이끌 수 있는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니체는 독일인과 유대인, 프랑스인, 영국인의 민족적 기질을 비교한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니체가 독일민족을 그제와 모레가 없는 민족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히 부정적인 의미는 아닌 것 같다. 나를 포함한 몇몇 회원들은 이 말이 곧 독일인을 아직까지는 일종의 야만 상태에 머물러있음을 니체가 암시한다고 해석했다. 즉 고정된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혼합되어있고, 생성중인 상태인 독일적 상태는 니체가 열거한 유럽 민족들의 특이성을 종합하는 계기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제8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고대인의 읽기 방식에 관한 니체의 통찰이었다. 그가 보기에 소리를 내서 읽는 고대인에게 읽기는 스스로에게 그 내용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토론 중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 대목은 나에게 몸과 정신의 미묘한 관계를 떠올리게 했다. 이를테면, 눈으로만 글을 읽는 현대적인 읽기는 ‘몸’이 결여된 읽기이다. 텍스트는 몸을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정신으로 향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대인인의 방식인 낭독은 스스로의 몸을 이용해(즉 입과 귀를 실천적으로 이용해) 자신의 정신에게 텍스트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대인의 읽기는 그렇다면 몸과 정신이 적극적으로 상응하는 활동이 아닌가? 어쩌면 이 대목은 육체과 생명, 혹은 본능을 중요시하는 니체의 태도를 다시한번 일깨워주는 흥미로운 통찰이 아닌가 싶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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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jule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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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맥락에다 자기 목소리도 분명히 들려와서 읽기에 좋았습니다.
특히 "독일인은 그제의 인간이면서 모레의 인간이다. ㅡ 그들에게는 아직 오늘이 없다"는 텍스트에 대해
처음에 저와 현우님의 해석이 달랐는데, 현우님의 해석에서 도움을 받았지요 ㅎㅎ
그리고 '읽기방식에 대한 니체의 통찰이 인상깊었다'니, 저는 현우님의 그런 '인상'이 좋았습니다.
니체의 '신체성'을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니까요.ㅎㅎ
니체철학에 대해 '생철학, 생리학, 생리학적'이라는 표현은 모두 니체철학의 신체성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신체성은 니체철학의 특이성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1.
니체는 여기서도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다른 맥락으로 배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지요!
유럽 민주화(정치적 과정)의 배후는 유럽인의 생성이(생리학적 과정)이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유럽인의 생성과정은 무리동물적 인간형을 형성하는 동시에, 예외적 인간을 발생시킵니다. 마찬가지로,
유럽의 민주화과정은 노예근성의 인간유형을 산출하는 동시에, 전제적 지배자를 육성합니다.
이렇게 하나의 사건에 대한 2가지 가능성을 보여주는 니체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이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종합하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일테지요.
전자와 같은 힘들의 부정적인 종합 대신에, 긍정적인 종합을 가능하게 하는 의지를 요청하는 것이겠지요!
2.
한편 이번 장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맥락이 있다고 생각해요.
민족이나 유럽통합에 대해서도, 니체의 관점은 기존의 통념과 차이가 있지요 ㅎㅎ (거리의 파토스!)
= 먼저, 독일인에 대한 통상적 해석과 니체적 해석 =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독일발전의 관점에서, '심오함과 깊이'를 독일인의 강점으로 생각하지만,
니체는 '심오함과 깊이'에 대해 계보학적으로 접근하여 허구성을 드러냅니다.
반대로 니체는 독일인의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독일적 특이성은 그 야만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민족이 자신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그 야만성(확정되지 않는 거친 잠재성)에 있다는 것이지요.
= 다음, 유럽통합에 대한 통상적 방식과 니체적 방식 =
하나의 유럽을 위해 니체는
민족의 통합이 아니라 민족의 해체를, 영토의 결합이 아니라 특이성의 결합을 제안합니다. 니체에 따르면,
하나의 유럽은 현재의 민족이 민족인 채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민족으로서는 해체해야 합니다.
또한 유럽의 통합은 영토라는 형식이 아니라, 각 민족의 특이성(미덕과 위선, 최선과 최악인)의 결합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니체는 각 민족들의 특이성을 이해하는 것이 ‘유럽’에 이르는 준비라고 하지요 ^^
독일인은 그제의 인간이면서 모레의 인간이다. ㅡ 그들에게는 아직 오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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