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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주제] 선악의 저편 : 2장 자유정신

1. (#24 p49) 허위에의 의지를 기반으로 앎에의 의지는 일어날 수 있다. 무지에의 의지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세련되게 함으로써!?

무지의 기반 위에서 비로소 학문을 일어날 수 있고, 무지몽매허위에의 의지를 기반으로 앎에의 의지는 일어날 수 있었다.

무지에의 의지에 대립이 아니라, 무지에의 의지를 세련되게 함으로써.

2. (#24 p50) 학문은 살아있는 것이며,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류를 사랑한다!?

이 최고의 학문이 얼마나 싫어하면서도 즐겨 오류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웃게 된다. 

왜냐하면 학문은 살아있는 것이며,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3. (#25~26) 니체는 철학자들에게 진리를 위해 희생하지 말고(#25), 대중 속으로 들어가라(#26)고 한다. 어째서?

4. (#29, #41) 독립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왜 강자의 특권이면서 위험인가?

(#29) 독립한다는 것은 : 강자의 특권이면서 치명적 위험이다!?

(#41) 사람들은 독립할 수 있는지 스스로 시험해보아야 한다.

적당한 시기에 이루어져야 하며, 위험한 놀이일지라도 우리 자신 앞에서 행해지는 시험에 불과할 지라도 시험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5. (#32) 도덕적 행위의 가치는 무엇이 결정하는가? 시대에 따른 계보학적 분석! 

    도덕 이전의 시기_결과에서 추론 / 도덕적인 시대_의도가 결정 / 도덕 외적인 시대_의도하지 않은 것에 있다

    (#32) 도덕을 극복한다는 것은, 도덕의 자기극복이다!?

6. (#33) 감정이 갖는 '힘에의 의지' 니체는 감정도 힘에의 의지를 갖는다고 보았다. 이런 감정은 어떤 힘을 의지하는 것인가?

(p62~63) 우리는 이웃을 위한 헌신ㆍ희생의 감정, 자기 환멸의 도덕을 법정에 세워야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라든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라든가 하는 감정에 너무 많은 매력이 있어, 이중의 의혹을 품게 된다.

‘그것은 유혹은 아닌가?’ 그것에는 감정의 즐거움이 있다.

7. (#34) 니체는 '직접적 확실성에 대한 믿음'을 비판하면서, '관점적 평가와 가상성'에 가치를 두었다!?

(p64) ‘직접적 확실성’에 대한 믿음은, 철학자들을 명예롭게 만드는 도덕적 순박함이지만, 우리를 명예롭게 만들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시민세계의 저편=긍정ㆍ부정의 저편에서, 우리의 어리석음(=직접적 확실성에 대한 불신)을 방해할 것은 없으며,

철학자는 나쁜 성격’(=직접적 확실성에 대한 불신)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방해할 것은 없다.

(p65) 관점적 평가와 가상성에 바탕을 두지 않는 한, 삶이란 존립할 수 없다.

‘가상의 세계’를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한다면, ‘진리’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참과 거짓’이라는 본질적인 대립을 가정하도록 강요하는가?

가상성의 단계가 있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으로, 다양한 색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 세계가 왜 허구여서는 안 되는가?

8. (#35) 니체는 '의지의 인과성'을 유일한 인과성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세계는 '힘에의 의지'라고 말한다!?

(p67) 우리는 의지의 인과성을 유일한 인과성으로 가정해야 한다. 모든 기계적 사건은 의지의 힘, 의지의 작용이다.

우리의 총체적인 충동의 생을 의지의 근본형태(힘에의 의지)가 형성ㆍ분화된 것으로 설명하게 된다면,

/ 유기적 기능을 모두 이러한 힘에의 의지로 환원할 수 있다면(그 힘에의 의지 안에서 생식과 영양섭취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찾아낸다면)

/ 작용하는 모든 힘을 힘에의 의지로 규정할 수 있다. 그 내부에서 보여진 세계는 ‘힘에의 의지’이며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다.

9. (#43) 미래 철학자의 진리에 대한 취향은 어떤 것인가?

(p73) “나의 진리가 온갖 사람을 위한 진리이고자 한다”면 이는 그들의 자부심이나 취향에 반하는 일이다.

반대로 “나의 판단은 나의 판단이다”는 관점이 그들의 자부심이나 취향이다.

미래의 철학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과 의견을 일치시키려는 취미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10 (#44) 유럽이나 미국의 '자유사상가'와 니체가 말하는 '자유정신의 소유자'는 어떻게 다른가?

미국, 유럽의 자유사상가 :: 무리적 평균적 스타일, 선악의 경계에 존재하는 정신

니체적 자유정신 소유자  :: 특이적 소수적 스타일, 선악의 저편이라는 위험한 형식

 

[토론주제] 선악의 저편 : 3장 종교적인 것

1. (#45) 3장 종교적인 것은 무엇을 다루고 있나?

니체는 '종교적인 것'에 대한 첫부분에 인간을 종교적 존재로 규정하고, '인간의 영혼과 내적 체험'에 대한 연구를 말한다!

(p81) '종교적 인간의 영혼 속에서 지知와 양심의 문제가 어떤 역사를 가지게 되었는지' ...

(p82) 그런 종류의 호기심은 이제 모든 악덕 가운데 가장 기분좋은 것으로 남는다.

진리에 대한 사랑은 그 보답을 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미 지상에서도 얻게 된다.

2. (#51) 권력자들은 성자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새로운 힘(힘에의 의지)를 예감하고 새로운 공포를 배웠다!?

(p88) 강력한 인간은 자기억제와 궁극적인 부자유의 존재인 성자 앞에서 머리를 숙여왔다.

그들은 성자의 내면에서 자기억제를 통해 자신을 시험하는 탁월한 힘을, 자신의 강함과 지배자의 쾌락을 존경할 줄 알았던 의지의 강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p89) 성자가 엄청난 부정과 반자연을 욕구한 것은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힘에의 의지’이다.

세계의 권력자들은 성자 앞에서 새로운 공포를 배웠는데, 그것은 새로운 힘, 낯설고 정복되지 않은 적 ‘힘에의 의지’이다.

3. (#55) 종교적 잔인성의 3단계 (시대에 따른 계보학적 분석). 기독교신앙은 어떻게 탄생했나?

도덕이전의 시기 : 인간을 희생 / 도덕적 시기 : 자연을 희생 / 도덕 외적 시기 : 신을 희생

4. (#56) 니체는 염세주의와 선악을 넘어, 영원회귀의 사상을 말한다!? (영원회귀 :: 세계의 원리+윤리적 의지)

(p93) 생명력 넘치는 세계를 긍정하는 이상에 눈뜨게 되는 인간은 과거 존재했고 현재 존재하는 것과 타협화합하는 법을 배워왔으며,

과거에 그렇게 존재했고, 현재도 그렇게 존재하는 방식대로 세계를 긍정하는 이상을 갖고자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인생이라는 연극에 대해서, 이러한 연극이 필요한 사람에 대해서, 영원을 넘어 지치지 않고 다시한번 외치면서!

그에게는 항상 다시 자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악순환의 신이 아닌가?

5. (#57) '신' '죄'의 개념이 어떻게 어린아이의 놀이도구가 될 수 있을까?

(p94) 인간이 싸우고 고통받았던 장엄한 ‘신’이나 ‘죄’ 같은 개념은 언젠가는 중요치 않은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노인에게는 어린아이의 놀이도구나 고통이 그렇게 보이듯이.

6. (#58, #59) 니체는 학자의 종교정서를 비판하면서, 예술가의 종교정서를 긍정한다!?

- 학자적 종교정서 : 종교문제를 신앙없이 다루는 유형. 종교적 본능을 해체. 천민적 방식. 노동을 대하듯=일처리 하듯, 종교를 다루는.

- 예술가 종교정서 : 삶에 대한 위조본능, 비진리를 향한 의지

(p97) 예술가들은 삶의 모습을 위조하는 의도에서만 (삶에 대한 끈질긴 복수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는 화상당한 어린이들이다.

(p98) 경건성(‘신 안에서의 삶’)이란, 진리에 대한 두려움의 산물이며 위조에 대한 예술가의 경배이며, 진리를 전도하고자 하는 의지이자 비진리를 향한 의지이다.

경건함(*신 안에서의 삶)은 인간 자신을 미화하는 강력한 수단이며,

이 경건함을 통해 인간은 예술이 될 수 있었기에 사람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 더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7. (#60) 신을 위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신을 위해 인간을 사랑 <······> 인간을 위해 신을 사랑)

(p98) 신을 위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동물성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인간애의 성향을 체험하고 표현고자 했을 때, 그는 가장 높이 날아갔으며 가장 아름답게 길을 잃은 인간이다.

8. (#61) 종교에 대한 퍼스펙티브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나는 누구인가?

강한 자에게 종교는 :: 저항을 극복하고 지배할 수 있는 수단 이상이다.

은둔자에게 종교는 :: 조야한 지배의 소란스러움을 벗어나 안정을 취하게 하고 정치적인 더러움을 벗어나 순수하게 하는 수단이다.

서서히 등장하는 계층에게 종교는 :: 더 높은 정신성의 길을 가도록, 자기극복, 침묵 고독의 감정을 시험하는 자극을 제공한다.

평범한 사람에게 종교는 :: 모든 일상이나 총체적인 영혼의 천박함이나 반동물적인 빈곤함을 미화하며 정당화한다.

9. (#61, #62) 종교는 인류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 :: (#61) 인류의 육성수단으로서의 종교 vs (62) 절대권한으로 군림하는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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