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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세미나에서는 엘리자베스 그로스의 『몸 페미니즘을 향해』의 1장을 읽고 논의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읽은 1장은 책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는데요, 여기서 저자가 이 책에서 전개해 나갈 논의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 방향성이란 여태껏 많은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온 여성혐오적 사상과 거리를 두면서,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페미니즘 이론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희의 논의는 우선 여성혐오(misogyny)를 주제로 출발했습니다. 여성혐오의 기원을 종교적인 측면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중세 유럽으로 대표되는) 기독교가 지배적이었던 사회에서 여성은 성녀 혹은 창녀로서만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 성녀는 성모 마리아를 원형으로 하는 어머니로서의 여성을 나타내고, 창녀는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은 좋은 어머니, 그러니까 성심성의껏 돌봄을 수행하는 어머니가 되거나, 아니면 남성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역할에 복무해야지만 가치 있는 여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적 질서에서 성녀로서의 여성과 창녀로서의 여성이 인정받는 방식은 다소 상이했겠지요. 전자가 기독교 교리에서 신성시되는 방식으로 인정받았다면, 후자는 도덕적으로는 죄악시 되었지만 사회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불가피하게 용인되는 존재로서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여성은 마녀로 규정되어 ‘사냥’의 대상으로서 탄압받았습니다.

성녀와 창녀라는 여성혐오의 구도는 현대에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 돌봄에 적합한 성으로 규정되지요. 가정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잘 돌봐야 한다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경향은 (과거에 비해서는 약해지고 있을지 몰라도) 아직까지도 건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성과 출산의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관념들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성에 대한 돌봄 요구는 비단 가정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돌봄 노동과 관련한 직업에서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은 이를 잘 알려줍니다. 한 가지 예시로, 초등학교 교사 중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반면 초등학교의 교장/교감의 경우는 여성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돌봄의 역할은 여성에게 어울린다는 사회적 무의식이 작동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망-이는 자주 ‘자연적인 본능’이라는 식으로 정당화되지요-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여성혐오 또한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탈코르셋 운동이나 반성폭력 운동 등의 페미니즘 실천들이 있어왔고 그 운동들이 거둔 성과가 분명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꾸밈의 요구라던가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세미나 첫 번째 시간에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을 읽고 저희가 나누었던 대화들을 돌이켜보아도,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여성의 신체가 성적인 매력이라는 잣대로 평가되며, 그것이 얼마나 여성들에게 쉽게 내면화되어 고통을 낳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혐오하는 것은 여전히 현재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여성혐오는 지금도 다양한 양상으로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성혐오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이분법적 사고, 즉 여성/몸과 남성/정신의 이분법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성 대 남성이라는 이분법은 여성에게는 (몸과 연결되는) 여성다움을, 남성에게는 (정신과 연결되는) 남성다움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가두어버리지요. 이러한 억압은 대칭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성/몸은 남성/정신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지요.

앞서 살펴본 여성혐오의 다양한 방식들에서 우리는 여성을 어떻게 몸과 결부시키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성을 출산의 도구나 성적 대상으로 대하는 것은 여성을 그 특수한 신체성을 통해 규정하는 현실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언급한 경우들 외에도, 학문의 오랜 역사에서 여성 학자들이 동료 학자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은 여성을 어떻게 정신성으로부터 분리시켜왔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정치권의 경우도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여성 정치인의 영향력이 적지요. 이는 국회의원이나 장관의 성비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성성이 몸과 결부된 것으로서 만들어진다면, 남성성의 경우는 반대로 신체를 지우면서 형성됩니다. 이는 남성이 자신을 남성으로 부르는 일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단적으로 나타납니다. 남성은 ‘그냥’ 사람이지, 남성이라는 특수한 신체성을 가진 사람은 아닌 것이지요. 그렇게 남성은 보편적 인간의 지위를 획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남성의 신체는 억압당함으로써 남성성에서 감정적인 것은 배제되고 정신의 합리성만 남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가 익숙히 아는 남자다움, 그러니까 울어서는 안 된다던가 계획적이고 주도적이어야 한다던가 하는 남성성이 남성들을 옥죄게 된 것이지요. 물론 이런 남성성으로 인해 남성들이 고통 받고 있다고 해서, 남성과 여성 모두 나름대로의 차별과 억압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매한가지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서는 안 될 일이지요. 여성/몸과 남성/정신의 이분법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점, 그렇기는커녕 (권력관계라고도 할 수 있을) 우열의 관계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책에서 저자 그로스도 그러한 이원론이 여성혐오적 사상이라며 비판했던 것이기도 하지요.

이분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스피노자의 일원론을 끌어옵니다. 하지만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비판하며 그와는 다른 사고를 제시하기는 했지만, 그의 일원론에도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요. 저자는 두 가지를 지적했습니다. 한 가지는 스피노자는 몸과 마음의 평행론을 제시했기에 둘 사이의 상호작용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사실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스피노자가 몸을 완전하고 통합된 체계로 이해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스피노자의 두 가지 한계를 극복하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몸 개념을 새롭게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앞으로 7장에 걸쳐 이어질 내용에서 이 작업을 어떻게 해나갈지 함께 따라가 봅시다.

이번 주는 책의 2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발제는 승환 선생님께서 맡아주셨는데요, 세미나 전날까지 기획세미나 자료실에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책의 내용이 조금 어려울 수 있는데, 튜터 선생님들이 올려주신 요약글 참고하면서 읽어 나가시면 조금이나마 수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교차가 여전히 심한데 다들 건강 잘 챙기시고, 좋은 모습으로 이번 주 토요일(4/2)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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