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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도쿄의 블랙리스트회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장학금 블랙리스트화를 멈춰라! 학비를 무료로! 학생생활비를 보장해라! 학생에게 임금을!

이런 요구를 하면서 <블랙리스트 회>는 활동해 왔다. 이 운동체가 생긴 것은 2009년 1월이었다. 그 전달(2008년12월)에 JASSO(일본학생지원기구)가 장학금 반납[상환] 체납자를 1400개 남짓한 금융기관에 보고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그 계기였다. 이는 곧 장학금 반납 체납자를 블랙 리스트화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본의 장학금이란 무상 지급받는 것이 아니라 학자금대출(loan)을 의미한다. 일본에는 공적인 장학금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JASSO는 일본에서 가장 큰 사업규모를 가진 장학금 제도(라고 할까 학생대출)의 운영단체이다. 현재 일본 대학생(대학원생도 포함)의 약 40%가 이 기관에서 대출을 받고 있다. 대학원생의 경우, 1000만엔(약 1억 3천만원)에 가까운 빚을 진 학생도 드물지 않다. JASSO의 대출제도를 이용하는 학생수는 최근 10년 간 2.5배 증가했다. 학비는 비싸지고 부모의 연수입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 학비도 매우 비싸다고 들었다. 일본의 대학 학비도 너무나 비싸다. 국립대학의 연간 수업료는 53만엔(약 690만원)이고 첫해에는 81만엔(약 1060만원)이다. 사립학교의 경우 평균 83만엔(약 1080만원)이며 첫해에는 130만엔(약 1700만원)이다. 일본대학생 중 사립대학에 다니는 학생비율은 대략 80% 정도다. 즉 대부분의 학생이 학비에만 매년 100만엔(약 1300만원) 이상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JASSO가 장학금의 반납체납자를 블랙리스트화했던 이유는 상환되지 않은 체납금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체납금이 증가한 것은 대출받은 학생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즉 상환되지 않은 체납금이 증가했다는 것은 레토릭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편, 대학을 졸업한 청년층 고용이 가혹한 상황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JASSO 자체 조사에 따르면 대출금 상환이 연체되는 이유의 태반은 본인의 저소득과 부모의 경제적 곤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ASSO는 상환이 3개월 이상 연체된 자의 개인정보를 금융기관의 데이터 베이스화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해당되는 개인은 신용카드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JASSO는 이 대책을 ‘교육적 관점’에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블랙리스트 회는 이 같은 학생의 채무노예화를 용납할 수 없다는 뜻에서 시작되었다. 블랙리스트 회라고 자칭하는 운동은 쿄토와 도쿄에 존재하지만, 양쪽이 하나의 계통을 가진 당으로 통합되어 있지는 않다. 몇 명인가 공통의 친구를 둔 채 각각의 운동을 자발적으로 코디네이션하고 있다. 블랙리스트화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 이외에는 어떤 합의(合意)도 규약(規約)도 없다. 누구든지 멤버가 될 수 있다. 단지 블랙리스트 회라고 밝히면 된다.

지금까지 쿄토에서는 야외집회나 사운드 데모 등을 진행해 왔다. 도쿄에서는 집회나 심포지엄 개최 이외에 JASSO에 대한 이의제기, JASSO의 중역이나 문부 과학성의 관료 등이 많은 돈을 주고 강사를 불러 개최하는(입장료도 많은 돈을 내야 하는) 심포지엄에 대한 항의 행동 등을 해왔다. 블랙 리스트화를 제안했던 대학교수에게 매복했다가 인터뷰를 실시하고 그 과정을 인터넷에 공개했던 적도 있다.

블랙리스트회는 그 활동을 통해서 ‘대학’이란 어디에 있는가, ‘학생’이란 누구인가, 라는 문제를 생각해 왔다. 대학이나 학생 사회의 현상에 대해 일본에서는 특히, 전통적인 좌파들은 절망적인 담론만을 열거해왔다. 확실히 대학을 둘러싼 지금의 상황은 심각하다. 학생들은 높은 학비에 의해 빚쟁이가 되고, 입학한 해부터 ‘자기계발’을 통한 ‘캐리어 디자인’에 내몰린다. 교원은 과도한 사무작업이나 수업에 쫓길 뿐 아니라 입학생을 늘리기 위한 ‘영업’활동에도 참여해야 한다.

대학에서 거의 절반의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강사들은 어떠한 사회보장도 받지 못하고 200만엔(약2610만원)에도 못 미치는 연봉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연구는 ‘산학제휴’라는 이름하에 기업의 척도에 의해 평가되고, 지방의 국립대학은 예산부족으로 도서관에 책을 구비해 놓는 것도 여의치 않다. 대학직원의 비정규직화와 해고도 그칠 줄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념이나 상상력으로서의 대학이 소생하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전쟁기계로서의 대학이며, 전쟁기계로서의 학생이다. 원래 대학은 12세기에 조합(생디칼)으로서 시작했던 것이다.

왜 대학에서 무상교육이 이루어져야 할까. 단적으로 말해, 대학에서 다루는 인식이나 정동(情動, 감응, affect)은 교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은 자본주의와 적대관계에 있다. ‘인지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지금의 자본주의는 지식을 정보재(情報財)로 전환하여 착취함으로써 성립해 왔다. 그러나 본래 지식은 매매(교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강사나 교수가 수업을 한다고 해서 그가 얼마 정도의 지식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무엇인가 말할 때, 그 말은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갖는 것이다.

감응도 마찬가지이다. 교수가 말라르메의 시를 학생들 앞에서 낭독한다고 해도, 그의 감동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인식이나 감응은 단지 표현되고, 차이(誤差)를 품은 모방운동 속에서 전파될 뿐이다. 이 비물질적인 생산 프로세스를 교환의 프로세스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순수한 증여이기 때문이다.대학은 이러한 언어나 감응의 능산적인(natura naturans) 무상성(無償性)을 지향하고 있다. 대학에서 행해지는 비물질적인 행위는 시장의 교환논리로는 파악할 수 없다.

국가나 자본은 대학을 무료로 하길 주저하는 듯이 보인다. 일본의 국가 예산이나 사회적 생산력을 보자면, 학비를 무료로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재정상황’과 같은 조건은 신자유주의적인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나 자본이 대학을 무료로 하길 주저하는 이유는 교환논리를 끊어 버리는 것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우리들은 국가의 무조건적인 증여를 통해 국가의 폭력을 해제시키면서, 알고,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사랑하는 우리들의 행위를, 무상성의 지평으로 파묻어 되돌릴 것을 요구한다. 물론 대학의 무료화는 단지 하나의 방침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요한 전환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이제 각 선진국의 진학율은 50%를 넘는다. 프랑스 혁명 때 프랑스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같은 비율이었다. 그 속어를 말하는 ‘혁명적 군집’이 근대국가의 모체였으며 네이션이 되었다. 그것이 대학에 의해 변화하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야 말로 네이션의 반(反)-대학 캠페인은 공공연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이 네이션(일종의 새로운 공동체)으로 변화해 가려고 한다면, 우리들 자신이 중세의 인문학자들처럼 새로운 텍스트를 무수히 만들어, 그것을 분담해 가야만 할 것이다. 금세기의 대학이란 새로운 불량학생(골리아르)1 들의 생디칼리즘의 별칭, 그 외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 블랙리스트회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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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골리아르(Goliards): 12~13세기에 술을 좋아하는 라틴어 풍자시를 쓴 성직자 집단. 골리아르는 주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의 대학 성직자 중 방랑 학생들로, 십자군의 실패, 재정상의 악용과 같은 교회 내에 팽배한 모순에 반항하고 그것을 노래, 시, 퍼포먼스 등으로 표현했다. 『축제의 문화사』(윤선자 저, 한길사, 2008, 76면) 를 참고하면 그들은 “중세 성직자 사회의 특수한 구조 속에서 파생된 반 성직자 집단”인 클레르 중의 한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수도사들처럼 삭발을 하고 수도사복을 입고 다녔지만 성직자 집단처럼 제도화되어 있지 않았고 성사와 축성과 같은 교회 업무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그 대신 대개 주교가 위임한 법정 관계 일이나(공증인) 혹은 고리대금업을 제외한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성직자 제도 내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속상 상 주변적이고 저항적인 존재들이었다. 그 결과 그들 중 일부는 신비주의와 청빈의 계율을 추구하여 유랑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유랑생활을 하는 클레르를 특히 골리아르라고 불렀다. 그들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교회의 성직자들을 풍자하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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