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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세미나에서는 드디어 그로츠의 『몸 페미니즘을 향해』의 마지막 장인 8장을 읽고 논의를 나누었습니다. 8장에서 그로츠는 몸의 환원불가능한 특수성에 대해 논합니다. 그리고 그 특수성에 대한 설명은 체액에서 시작합니다. 체액은 몸을 갖고 있는 한 피할 수 없는 특수성을 나타내지요. 그런데 체액에서 중요한 것은 고체성과 대비되는 점액적인 성질입니다. 체액은 자기동일적인 단단한 고체성과는 거리가 멀지요. 그것은 기본적으로 액체입니다. 그래서 고체와 같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고정되어있는 것들 위를 자유로이 흘러 다닙니다.

체액의 이러한 흐르는 성질은 체액에 대한 우리의 혐오감을 일정 부분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체액은 단단하게 고정되어있지 않고, 혹은 선분성에 갇혀있지 않고, 도리어 그것들을 넘나들지요. 이런 맥락에서 체액이 질서를 교란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질서란 권력이 우리의 신체나 물리적 공간에 각인해 놓은 것에 다름 아니겠지요. 체액은 바로 그렇게 권력에 의해 각인된 질서를 허물어버리는, 그야말로 ‘불온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체액에 대해 그토록 더럽다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이렇게 체액이 우리의 신체 깊숙이 내면화된 질서를 가볍게 부정해버리는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요? 체액에게서 느끼는 ‘불결함’은 사실 질서를 거부하는 존재가 가져다주는 ‘불편함’인 것은 아닐까요?

이런 맥락에서 체액은 “몸의 안과 바깥의 경계 짓기가 아슬아슬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존재인 셈입니다. 체액의 이런 불온함은 “자율성과 자기동일성을 지향하려는 주체의 갈망에 모욕을” 던지며 동일성에 사로잡힌 질서를 무화시킵니다.(444)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체액에 대한 긍정은 권력에 의해 우리의 몸에 새겨진 각인으로부터 벗어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체액을 불결하다고, 그래서 씻어내기 바쁜 존재로 여기는 한, 자기동일성과 질서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요원할 것입니다. 체액을 불결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는 동시에 우리 몸에 새겨진 질서가 흐트러지는 상황을 불편함 없이 넘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질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불편해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질서로부터 자유롭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에 다름 아닐 테지요.

그런데 체액이 신체에 각인된 질서를 무시하는 것과는 별개로 체액 자체에도 질서가 코드화되어 있습니다. “체액들은 각기 다른 통제, 혐오감, 거부감의 지표를” 지니는데, “이런 액체들을 지배하는 속성의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것이지요.(448) 예컨대 눈물의 경우는 체액 치고는 굉장히 후한 대접을 받는 편입니다. 보통은 눈물을 더럽다고 느끼지도 않을 정도로 눈물은 깨끗한 액체로서 받아들여집니다. 당장 우리가 콧물과 침을 얼마나 지저분한 것으로 대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눈물은 거의 체액이 아닌 수준의 지위를 갖습니다. 콧물이나 침보다도 더욱 더러운 것으로 취급당하는 체액도 있습니다. 월경혈이 대표적일 텐데요, 월경혈은 마치 오염물질과 같이 다루어져왔지요.

이렇게 월경혈이 체액들의 위계질서에서 거의 밑바닥의 지위에 놓이게 된 데는 여성혐오가 한몫했을 것입니다. 생식과 연관된 체액인 월경혈과 정액을 비교해보면, 이는 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정액을 아무리 더러워한다고 해도 그것은 월경혈 정도로 혐오의 대상이지는 않지요. 물론 월경혈과 정액을 비교할 때, 그것들이 촉발하는 시각적, 후각적 효과를 따져야 한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겁니다. 월경혈이 ‘감각적으로’ 더 더럽지 않냐는 식으로 말이죠. 사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우리에게 더 익숙하기는 할 것입니다. 여기서 이런 ‘상식’에 구구절절 논박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텐데, 일단은 우리의 감각이라는 것은 상당 부분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에 주목합시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선 세미나에서 많이 다루었으니 낯선 사고는 아니지요.

사회적으로 구성된 감각이 체액들의 위계질서를 유지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예로 들었던 바와 같이, 눈물은 깨끗한 체액으로, 월경혈은 더러운 체액으로 감각되지요. 이때 ‘감각’이란 우리가 일상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듯이 막연하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수용방식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감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질문함으로써 기존의 질서로부터 벗어날 실마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런 흐름에서 우리는 지난 9주간에 걸쳐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눈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과 엘리자베스 그로스의 『몸 페미니즘을 향해』는 이러한 감각을 바꾸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저희는 지난 9차례에 걸친 세미나 동안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요, 이 과정은 단순히 이론을 학습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익숙한 감각을 흔들고, 그럼으로써 앞으로 마주치게 될 새로운 만남을 향해 감각을 열어젖히는 시간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번 세미나가 단순히 페미니즘을 공부한 수준을 넘어, 페미니즘을 통해 감각을 바꾸는 계기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세미나에는 에세이 발표를 하게 됩니다. 각자 지난주에 프로포절을 발표하며 공유했던 내용들을 잘 발전시킨 글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건강하게 이번 주 토요일(5/28)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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